남북한이 쓰는 말이 꽤 다르다고 확인하는 건 북한 뉴스를 전하는 언론 기사문을 볼 때다. 엊그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했다는 연설에 관한 보도도 그런 예다. 지난 23일 북한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제15기 제1차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은 한국을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공인하고 가장 명백한 언사와 행동으로 철저히 배척하고 무시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연설에 쓰인 북한말은 우리가 아는 우리말과 큰 차이를 보인다.
문법과 어휘, 외래어 표기에 걸쳐 다름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온갖 반공화국 도발 책동을 '짓부셔버리기' ∼"라고 했지만, 한국에선 같은 뜻으로 "짓부수어버리기(짓부숴버리기)"를 쓴다. 기본형 '부시다'는 눈이 부신다, 그릇을 부신다(깨끗하게 씻다) 할 때 쓰는 말이다. '마구, 몹시, 함부로'를 뜻하는 접사 '짓'하고 이 '부시다'는 짝이 되기 어렵다. '부수다'는 어울리지만. "투쟁을 공세적으로 벌려나갈 것"이라는 표현도 보이는데, 이것도 한국에선 "∼ 벌여나갈 것"이라고 해야 한다. 팔은 벌리지만 판은 벌이고 행위도 벌인다고 한다. 남북이 거꾸로 쓰는 '늘이다/늘리다'와 한가지다.
연설에 쓰인 '국가테로'도 도드라진다. 외래어표기법에 따라 국가테러(terror)로 쓰는 우리와 달라서다. 북한에선 테로망, 테로분자라 하지 테러망, 테러분자라 않는다. -망, -분자까진 다르지 않은 점이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국문법에서 복잡한 적용 규정으로 악명높은 사이시옷을 북한에서는 안 쓴다. 자로 쓰는 대막대기나 나무 막대기 따위를 이르는 '잣대'를 '자대'라 하는 이유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를 판단하는 데 의거하는 기준을 빗댈 때도 쓰는 이 말이 "지난 시기의 낡은 기준, 낡은 자대에 맞추어졌던 외교관행에서 …"이라는 대목에 꼭 그렇게 쓰였다. 이 연설 기조처럼 북한이 적대 일변도로 나온다면 우리말마저 서로 더 멀어지게 생겼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통일부 북한정보포털, 남북한 언어 비교 - https://nkinfo.unikorea.go.kr/nkp/word/nskWordCompare.do
2. 발행처 연합뉴스(지은이 조순래 외), 『북한용어소사전』, 2003
3. 연합뉴스 기사, 김정은 "한국 가장 적대국으로 공인…건드리면 무자비한 대가"(종합2보) (송고 2026-03-24 19:19) - https://www.yna.co.kr/view/AKR20260324010153504
4.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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