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지난 12일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에 대한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첫 사전심사 결과, 전원재판부에 회부된 사건은 한 건도 없었다. 헌재의 엄격한 심사 기준이 드러난 가운데, 시행 전부터 제기돼 온 소송 남발 우려를 줄일 수 있다는 평가와 함께 권리구제 취지가 약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오고 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전날 헌법재판관 3명으로 꾸려진 지정재판부 평의를 열고 지난 23일까지 접수한 재판소원 153건 중 26건을 우선 각하했다. 본안심판에 회부된 사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각하 사유별로 살펴보면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 사건이 17건으로 가장 많았다. 청구 기간이 지난 5건, 항소·상고 등 다른 절차를 거치지 않은 2건, 기타 부적법 3건 등이었다.
헌재의 본안 판단을 받기 위해서는 재판관 3명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를 먼저 통과해야 한다. 심판 청구가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지정재판부 재판관 전원이 각하 의견을 낼 시 사건은 본안 판단으로 넘어가지 못한다.
특히 이날 헌재는 ‘법원에 의한 기본권 침해’가 구체적으로 입증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단순히 판결의 부당성을 주장하거나 사실 인정 및 증거 평가를 다투는 수준에 그칠 경우에는 재판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충성 원칙 또한 엄격하게 고려됐다. ‘납북 귀환 어부 유족’ 사건은 상고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해당 사건은 동해안 납북귀환 어부 고(故) 김달수씨 유족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으로, 서울중앙지법이 피청구인이었다.
이외에도 소액사건이라는 사정 역시 예외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청구기간도 엄격히 적용돼 제도 시행 이전 사건이라 하더라도 30일을 넘어간 경우에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1호 재판소원 청구 사건인 ‘시리아 외국인 강제퇴거명령 및 보호명령 취소 사건’ 등을 비롯한 나머지 심리 사건도 각하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1호 사건은 지난 1월 8일 대법원에서 원고 패소가 확정된 바 있다. 재판소원을 청구한 이달 12일은 이미 판결 확정 이후 약 60일이 경과한 시점이었다.
실제 우리나라와 유사한 제도를 이미 시행 중인 독일에서도 최고법원 판결이 뒤집히는 비율은 1%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다.
향후 헌재는 다른 약 130건의 청구에 대해서 추가 사전심사 및 평의를 거친 뒤 판단을 내놓을 예정이다.
지난 주말 기준 헌재에 접수된 재판소원은 총 153건이다. 헌재가 20여건을 각하하며 엄격한 요건을 제시한 만큼 향후 접수 추이에 변화가 나타날지 이목이 쏠린다. 앞서 헌재는 재판소원 도입으로 인해 연간 1만건에서 최대 1만 5000건의 사건이 접수될 것으로 예측한 바 있다.
헌법재판소가 첫 심사 대상 사건을 모두 각하한 것은 제도 초기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재판소원의 남용을 차단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이로 인해 사건 부담을 줄이는 효과는 있었지만 권리구제 기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핵심은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사전심사 기준을 마련하면서도 실질적인 권리 구제가 가능하도록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다.
법무법인 바른 박성호 변호사는 전날 열린 ‘전면 시행된 재판소원 제도의 내용 및 절차에 대한 실무적 안내’ 발표회에서 “재판소원은 사실관계나 법률 해석을 다시 다투는 절차가 아니라 재판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 여부를 심사하는 보충적·예외적 권리구제 수단”이라며 “판결 확정 후 30일이라는 짧은 청구기간을 고려하면 재판 단계에서부터 기본권 침해 논리를 구조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명예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현재 나온 26건만으로 재판소원 제도의 방향성을 평가하기는 어렵다. 제도가 비교적 급하게 시행된 데다 향후 연간 최소 1만건 이상의 재판소원이 제기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26건은 매우 제한적인 수치”라며 “앞으로는 제도 시행을 염두에 두고 사전에 준비된 사건들이 본격적으로 제기되면서 양상도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앞으로 사건이 누적될 경우 사전심사만으로 이를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며 “독일 등의 국가처럼 2개의 전원재판부를 운영하는 방안 등 제도적 보완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며 업무 폭주를 막는 추가적인 대응, 제도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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