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농협중앙회(이하 중앙회)의 방만경영을 둘러싼 사회적 파장이 거세게 일고 있는 가운데 중앙회의 관리·감독을 받고 있는 지역 농협의 상황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르데스크가 지난해 결산 공시를 마친 전국 지역농협 241곳의 실적 및 재무 현황, 각종 사건·사고 현황을 분석한 결과, 61.4%에 달하는 148곳의 실적이 역성장한 것으로 파악됐다. 대출 연체율이 5%를 상회하는 부실 위험 농협도 86곳에 달했다. 일부 조합에서는 횡령과 부당대출 등 비위행위도 만연하게 발생하고 있었다.
지역농협 10곳 중 6곳 '실적 역성장' 쇼크…연체율 10% 이상 조합도 무려 13곳
22일 농협중앙회의 농·축협 경영공시에 따르면 최근 결산 공시를 마친 전국 지역농협 241곳 중 148곳(61.4%)의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10곳 중 6곳의 실적이 뒷걸음 친 셈이다. 실적 부진은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났다. 수도권 대형 조합인 경기 용인 이동농협의 경우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44.6% 급감했다. 경기 안성 대덕농협의 지난해 당기순이익 역시 2억300만원으로 전년(12억원)의 6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인천 계양농협 역시 지난해 15억1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45억400만원) 대비 66.7% 감소한 수준이다.
충청·강원 지역의 거점 농협들도 실적 부진을 피하지 못했다. 충청북도 충주시 충주축산농협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0억9100만원으로 전년(20억3300만원)보다 46.3% 감소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농협 역시 지난해 전년(23억4900만원)의 반토막 수준인 10억34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강원 평창농협의 지난해 당기순이익도 전년(15억600만원) 대비 44.8% 하락한 8억3100만원에 머물렀다.
경상·전라 지역 농협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경상남도 창녕군 부곡농협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8800만원으로 전년(7억5400만 원) 대비 무려 88.3% 급감했다.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농협은 지난해 44억2600만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하며 전년(71억300만원)보다 수익이 26억원 넘게 줄어들었다. 전라남도 여수축산농협과 여수원예농협의 당기순이익도 각각 8억300만원, 7억300만원에 그쳐 전년 대비 33.4%, 42.1% 각각 하락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동진강낙농축협은 전년(3억9000만원)과 달리 지난해 수익을 전혀 내지 못했다.
'적자' 조합들도 대거 등장했다.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남부농협은 지난해 116억59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며 전년(5억8300만원 흑자) 대비 수익이 120억원 넘게 급감했다.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농협과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원예농협도 지난해 각각 15억6500만원, 15억4600만원의 순손실을 내며 적자로 돌아섰다. 특히 전주원예농협은 경영실태평가 등급이 1년 만에 1등급에서 3등급으로 두 계단이나 하락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농협 역시 순이익이 직전해(2억200만원)에 비해 30억원 이상 줄면서 31억7000만원의 순손실로 돌아섰다.
향후 전망도 우울하다. 공시를 마친 조합 가운데 대출 연체율이 5%를 넘는 곳이 무려 86곳이나 됐다. 이 중 10%를 상회하는 조합도 13곳에 달했다. 연체율은 금융기관의 향후 실적과 자산 건전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통상 5%를 넘기면 부실 위험이 큰 것으로 간주된다. 연체율이 가장 높은 곳은 세종 연서농협으로 지난해 말 기준 14.72%에 달했다. 이어 사천농협(14.29%), 동세종농협(11.81%), 이동농협(11.62%), 남김천농협(11.29%), 고산농협(10.90%), 진접농협(10.86%) 등의 순이었다. 연체율이 1년 사이 가파르게 상승한 곳도 속출했다. 북충주농협의 연체율은 전년(1.60%) 대비 8.19%p 급등한 9.79%로 집계됐다. 삼죽농협 역시 지난해 전년(2.82%)보다 5.45%p 상승한 8.27%의 연체율을 기록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전국 지역농협의 실적이 전방위적으로 악화된 것은 고금리 등 외부 요인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역 단위 조합들의 방만한 경영와 이들을 관리·감독하는 농협중앙회의 방만한 경영이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지역농협은 농민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돈을 관리하며 이를 통한 이익을 다시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경영진의 실적 관리 실패로 손실이 발생한다면 결국 배당 감소나 교육지원 사업 축소 등 고스란히 농민 조합원들의 피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역 농협도, 중앙회도 심각한 방만 경영 빈번…"뼈 깎는 쇄신 낙수효과 외엔 답 없다"
실적·재무건전성과 더불어 방만 경영의 정도를 판가름하는 지표 중 하나인 내부통제 실패 사례도 점차 늘고 있다. 부진한 실적을 기록한 일부 조합에서는 최근까지도 횡령과 금품수수 등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례로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난 충주축산농협에서는 지난해 초 직원 2명이 금고 내 시재금을 횡령했다가 각각 징계해직과 견책 처분을 받은 적 있다.
진접농협에서도 지난해 1월 직원 1명이 업무 마감 후 출납 과잉금을 횡령해 정직 1개월 처분을 받았다. 수안보농협에서는 지난해 3월 직원 1명이 여신거래 고객에게 금전 대여를 부탁하는 등 '사적 금전 대차'를 했다가 감봉 1개월에 처분을 받았다. 사적 금전 대차는 금융사 임직원이 직무와 관련해 고객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행위로 대가성이 개입될 가능성이 큰 대표적인 비위 행위다.
경상남도 사천농협에서는 지난해 8월 직원 12명이 기업 시설 및 운전자금 대출을 부당하게 취급했다가 무더기 제재를 받았다. 적발된 직원들은 채무자 자격 제한자에게 대출을 실행하거나 자금 용도의 타당성 및 여신 지원 적정성 검토를 소홀히 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재 수위는 정직 5개월(1명), 감봉 2개월(1명), 견책(5명), 변상(3명) 등이었다. 충청남도 성환농협에서도 지난해 1월 직원 3명이 기업 시설자금 대출을 부당 처리해 감봉 3개월과 1개월, 견책 등의 처분을 받았다. 성환농협은 지난해 16억8800만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전년(4억1200만원) 대비 적자로 전환한 상태다.
농협 안팎에선 이러한 지역 농협의 방만한 경영 행태가 관리·감독을 책임진 중앙회의 방만 경영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거세다. 중앙회 내부에서 조차 비위 행위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사당국, 정부 등에 따르면 '청렴 농협'을 기치로 내걸고 2024년 3월 취임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은 취임 이후 금품 수수 의혹 등에 휩싸여 조사를 받고 있다. 정부합동 특별감사 결과, 강 회장은 2024년부터 지난해까지 농협재단 핵심 간부 A씨를 통해 재단 사업비를 유용하고 중앙회장 선거 당시 도움을 준 조합장과 조합원, 임직원 등에게 제공할 4억9000만원 규모의 답례품을 조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 회장은 이와 별개로 지난해 2월 조합장들로부터 취임 1주년 기념 명목으로 황금열쇠(10돈)를 수수해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핵심 간부들의 전횡 사례도 다수 드러났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강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타 협동조합 대비 최소 3배 이상 많은 퇴임 공로금을 수령하고 기준을 초과한 고가의 업무용 사택을 제공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일부 조합장과 임원들은 각종 수당과 선물을 챙기고 중앙회·자회사 임원들이 퇴직 시 황금열쇠나 전별금을 받는 등 이른바 '나눠먹기식' 예산 집행이 관행적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또한 한 간부는 재단 사업비와 포상금을 전용해 개인 사택의 가구와 사치품을 구매하는 등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가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취임 초 '청렴 농협'을 내걸었던 강 회장의 혁신 의지가 시험대에 오른 만큼 중앙회 차원의 고강도 자정 노력과 실효성 있는 부실 조합 정비 대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대표는 "윗물부터 흐린데 아랫물의 혁신이 가능하겠느냐"며 "농협의 폐쇄적인 지배구조와 온정주의 문화가 고착화하면서 내부 감시망이 무력화됐다"고 비판했다. 이어 "중앙회장부터 각종 의혹에 휩싸여 리더십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하부 조직의 비위를 엄단하고 경영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꼬집었다.
김계수 세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의 각 지역농협들의 위기는 단순한 개별 조합의 문제를 넘어 농협이라는 거대 조직의 시스템적 정체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루 빨리 중앙회 스스로 내부 쇄신을 단행한 후 부실 조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비위 행위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철저히 적용하는 등 강력한 쇄신 정책을 펼쳐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외부 감시망을 대폭 강화하고 경영 공시의 투명성을 높이는 등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뒤따라야만 농협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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