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쟁으로 나프타 수급 불안에 비닐 대란 조짐
일부 마트 "종량제봉투 1인당 구매 제한에도 품절"
세탁소 "드라이클리닝 기름값도 올랐는데 비닐도 올라"
생선가게·빵집·떡집 등도 한숨…"비닐값 인상 통보받아"
(서울=연합뉴스) 이진주 인턴기자 = "쓰레기봉투 사재기한다는 소리에 어제 퇴근길에 집 근처 편의점 두 곳을 들렀는데 종량제 봉투가 모두 동났고 며칠 후에야 들어온다고 하네요."
성동구 주민 황모 씨는 25일 이렇게 말하며 황당해했다.
중동 전쟁으로 비닐 대란 조짐이 인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종량제 봉투를 비롯해 각종 비닐봉지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에 빨간불이 켜진 탓이다.
벌써 종량제 봉투 사재기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일부 마트에서는 1인당 구매 수량에 제한을 걸어뒀다.
또 각종 비닐봉지 가격 상승 예고에 미리 대량으로 확보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지난 24일 정오께 찾은 구로구 A 식자재 마트에서는 10분간 3명이 종량제 봉투 묶음을 찾았다. 대용량 봉투를 찾은 한 손님은 50ℓ와 75ℓ 사이즈가 품절이라는 안내에 아쉬워했다.
마트 직원은 "최근 종량제 봉투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분들이 많아 음식물 종량제 봉투 두 묶음, 일반 종량제 봉투 두 묶음으로 1인당 구매 제한을 두고 있다"면서 "그렇게 제한해도 품절인 사이즈가 나온다"고 놀라워했다.
손님 한영주(61) 씨는 "뉴스를 보니까 전쟁 때문에 종량제 봉투를 사기도 어려워진다고 해서 며칠 전에 마트랑 편의점에서 종량제 봉투 50ℓ 네 묶음을 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량제 봉투가 전국적으로 모자라면 정부에서 (쓰레기를 배출하는) 다른 방법을 내주겠지만 예전 코로나19 때 마스크처럼 종량제 봉투를 줄 서서 받기는 힘들 것 같아 미리 사뒀다"고 덧붙였다.
당장 음식물 쓰레기 처리가 중요한 식당도 난처해졌다.
구로구 '일품마라탕' 사장은 "종량제 봉투를 두 묶음씩도 못 사고 한 묶음만 살 수 있다고 해서 '이게 뭔 일인가' 싶었다"고 밝혔다.
편의점에서도 종량제 봉투는 '귀한 상품'이 됐다.
구로구 B 편의점 직원은 "요즘에 종량제 봉투가 확실히 많이 팔리는 게 체감된다"며 "물량은 계속 빠지는데 종량제 봉투를 들여오는 업체에서 한동안 안 와서 종량제 봉투를 두던 공간이 텅텅 비었다가 최근에야 채워 넣었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한 사람당 구매 개수 제한을 두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처럼 계속 대량으로 팔리게 된다면 점장님이 (구매 제한과) 비슷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종량제 봉투를 주문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 '종량제닷컴'에는 '주문 제한 안내' 공지창이 떠 있다. 주문량이 급증해 일부 상품 수급에 문제가 생겨 주문 접수 시간을 제한해 운영한다는 내용이다.
비닐봉지가 필요한 업종이 다양한 상황에서 이미 일부 자영업자들은 비닐 가격이 오른다는 통보를 받고 울상이다.
양천구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박동서(70) 씨는 "전쟁 때문에 물가 인상 반응이 벌써 다르다"며 "옷 드라이를 다 하고 옷에 비닐을 씌워 손님께 드리는데 비닐 가격이 너무 올라버렸다"고 말했다.
박씨는 "비닐이 1천개 들어있는 박스가 6만원이라 한 장당 60원꼴이었는데 한 박스당 1만4천원씩 올랐다"며 "유예 기간을 줘서 오르기 전에 두 박스를 사뒀지만 엊그제 업체에 물어보니 벌써 1만원이 올랐더라"고 밝혔다.
이어 "우리가 인근에서 세탁비를 가장 싸게 유지하고 있지만 가뜩이나 드라이클리닝을 할 때 사용하는 기름값도 오른 상황이라 손해 보고 장사할 수는 없어 세탁비를 올릴 수밖에 없을까 봐 걱정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구로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이모 씨도 "비닐을 묶음으로 200장 주문하면 한 장당 15원 정도 됐는데 지난 20일자 거래명세서에 비닐값이 오른다고 찍혀 있었다"며 "하루에도 수십장씩 사용하기 때문에 '그냥 올랐네'라고 여길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C씨는 "포장용 비닐 가격이 갑자기 오르더니 지금은 품절"이라며 "생각도 못한 상황이라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종이 포장지로 대체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비닐봉지를 미리 대량으로 사뒀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약사 박모 씨는 "약을 포장하거나 손님께 약을 드릴 때 비닐에 넣어 드리기 때문에 비닐값이 오르면 당연히 타격을 입는다"며 "대량으로 구매해둬 아직은 여유롭지만 또 이게 다 떨어지면 얼마나 부담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구로구 '제일수산' 사장은 "생선을 먼저 흰 비닐봉지에 담고 그것을 다시 검은 비닐봉지에 담아 손님께 건넨다"며 "새로 주문하지 않아서 지금 당장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여파가 세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인근 '종로떡집' 사장도 "전쟁 때문에 각종 가격이 안 오르는 것 없이 모두 다 오르고 있다"며 "특히 떡 포장할 때 비닐봉지를 쓰기 때문에 당연히 걱정된다"고 밝혔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은 "저도 종량제 봉투를 사러 마트 네 군데에 갔지만 품절이었다"며 "소비자들이 제품을 대거 사들이는 사재기가 심화하며 나타난 현상"이라고 짚었다.
이어 "비닐 수급이 어려워지니 종이와 같은 대체품 수요가 늘기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는 숲이 많으나 경제성 있는 수목은 솔로몬 군도(남태평양 여러 개의 섬들로 구성된 국가) 같은 곳에서 수입해온다"며 "나무 자원은 끊임없이 나오고 있지만 수요가 몰릴 경우 복잡한 약품 가공 공정 등 여러 요인에 의해 가격이 인상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j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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