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 물질적 체면 문화로 이어진 현실
서구 사회가 종교적 권위와 신의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자리를 실존주의적 자아로 채웠다면, 현대의 한국은 그 빈자리를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유교적 공동체 질서와 체면 문화, 그리고 물질주의로 채웠다. 내가 누구인지를 고민할 시간이 없었기에, 내가 남보다 나은지를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존재 증명이 된 것이다.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실존적 자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현대화가 진행되자 "남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를 중시하는 유교적 체면 문화가 자본주의의 '과시적 소비'와 결합하여 더욱 기형적으로 강화된 측면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은 실존철학을 '학문'으로서 수입하고 '철학과 문학'으로서 소비했으나, 사회 전체가 이를 실제의 생활 양식으로 정착시키기 전에 경제 성장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것이다. 그 결과 외형은 현대적으로 보이나 내면의 사고는 여전히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 하는 집단주의적 체면 문화와 유교주의적 사고가 가장 크게 자리 잡게 된 것이다.
한국은 근대화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고 잘 살기 위한 생존의 방식으로 '집행'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실존에 대한 고민 또한 근대화라는 효율성을 위해 생략된 공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결국 한국 현대사에서 실존적 성찰의 공백을 메운 것은 새로운 철학이 아니라, 우리 사회 깊숙이 각인되어 있던 '세속적 유교'였다. 서구 사회가 근대화를 거치며 '신'이 떠난 자리를 '개인의 실존적 주체성'으로 채웠다면, 한국은 그 자리에 과거의 관습인 유교적 체면과 현대의 욕망인 물질주의를 결합해 채워 넣은 것이다. 그 결과 형성된 것이 한국 현대인의 사고의 틀이다.
서구의 실존주의가 "나 자신에게 떳떳한가?"라는 죄책감의 문화라면, 한국의 유교적 사고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라는 수치심의 문화로 해석할 수 있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할 철학이 부재하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이 곧 모든 면에서 '의미 있는 삶'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그리고 철학이나 문화적 고귀함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과거의 체면이 '선비다운 고귀함'이었다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체면은 '강남의 고급 아파트, 수입차, 국내외 명문대'라는 외적이고 물질적인 요소로 치환되어 작동하게 된 것이다.
실존주의는 개인이 집단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서는 '단독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현대의 한국인은 여전히 자신을 어떤 유명 집단의 일원, 유명 회사의 직원 등 특정 집단의 구성원으로 규정할 때 안도감을 느낀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도 나이, 직업, 결혼 여부와 같은 사적인 질문을 통해 서로의 서열을 확인하고 관계를 설정해야 대화가 가능해지는 '유교적 관계망'이 실존적 고립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 유교적 '수신제가'의 변질, 그리고 스펙 쌓기
자아를 완성해 가는 실존적 투쟁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신을 사회적 상품으로 가공하는 '수신'의 변형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인격 수양이 아닌 '스펙 수양'에 몰두하게 됐다. 그리고 이것이 갖춰지지 않았을 때 느끼는 체면의 손상을 견디지 못한다.
"나는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남에게 보여진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결국 한국은 물질적 근대화와 정치적 민주화는 이뤘으나, '나'라는 존재를 타인으로부터 독립시키는 정신적 근대화는 유예된 상태로 보인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그 공백을 유교의 잔재인 체면 문화가 장악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체면의 굴레'는 한때 한국 사회 성장의 역동성을 만드는 동력이 됐지만, 이제는 저출산이나 세계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와 같은 위기로 이어지며 사회를 잠식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고층 빌딩 숲과 초고속 네트워크, 그리고 전 세계가 열광하는 K-콘텐츠까지 한국을 상징하는 요소는 많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형 이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감과 공허함이 흐른다. 우리는 왜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국가에 살면서도 개인의 행복지수는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가. 그 해답은 우리가 근대화 과정에서 빠뜨린 결정적인 퍼즐, 곧 '실존 철학적 성찰'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서구 사회는 '신'(神) 중심의 세계관이 붕괴하며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근원적인 질문을 통과했다. 일본 역시 메이지 유신 이후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역할을 분리하며 나름의 근대적 자아를 형성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이러한 실존철학이 개인의 삶 깊숙이 스며들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가 겪고 있는 저출산, 혐오 정치, 극심한 경쟁은 '실존의 부재'가 낳은 사회적 징후로 해석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에 종속된 삶에는 진정한 기쁨이 자리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물어야 한다.
"체면을 지키려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현대 한국인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 철학적 삶으로의 회귀다. 이는 거창한 학문적 탐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인이 설정한 기준을 벗어나 자기 삶의 의미를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결단이다.
"남들처럼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가 체면이라는 오래된 굴레를 끊어낼 수 있다.
이제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행복은 체면의 끝에서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다. 각자가 자신의 실존을 마주하는 그 고독한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4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정리 :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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