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가 채우는 EV 빈자리…K-배터리, 판이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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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가 채우는 EV 빈자리…K-배터리, 판이 바뀐다

한스경제 2026-03-25 07:3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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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배터리 산업 전문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6'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월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배터리 산업 전문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6'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 서울=한스경제 김창수 기자 | 글로벌 전기차(EV) 시장이 숨고르기에 들어가며 국내 2차전지 산업 무게 중심도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한때 전기차 증산에 맞춰 설비 경쟁을 벌이던 배터리 업계는 이제 에너지저장장치(ESS),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로봇, 드론 등으로 범위를 넓히며 성장을 모색하고 있다. 산업계에선 올해를 기점으로 배터리 산업 성격이 ‘차량용 부품 산업’에서 ‘전력 인프라 산업’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성장세 꺾이는 전기차 시장…배터리 업계, ESS·AI 데이터센터 등으로 방향 전환

로이터에 따르면 올해 2월 글로벌 전기차 판매는 약 110만대로 전년 동월 대비 11% 감소했다. 중국 판매는 32% 줄어 50만대 아래로 내려왔고 북미 시장 판매는 전년 대비 36% 감소했다. 유럽이 21%, 기타 지역이 78% 늘었지만 중국과 북미 부진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내 업계가 체감하는 시장 부진도 다르지 않다. 증권가 분석에 따르면 국내 전기차용 리튬이온전지 수출은 예년 고점 대비 낮은 수준에 머문 반면 ESS용 배터리 수출은 반등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기차라는 한 축에 기대던 시장이 정지형 전력 저장 수요로 중심을 옮기고 있는 흐름을 보여준다.

지난 11~1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2026’에서 이런 변화는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전시장 곳곳에는 더 이상 전기차만 서 있지 않았다. 행사 주관 측은 이번 전시를 배터리 산업의 전환과 혁신, 글로벌 확장의 장으로 규정했다. 삼성SDI는 AI 데이터센터용 무정전 전원 장치(UPS)·배터리 백업 장치(BBU), ESS 화재 예방 소프트웨어, 물리 AI용 전고체 배터리를 전면에 배치했다. LG에너지솔루션도 AI 데이터센터와 로봇을 앞세워 배터리 기업에서 에너지 플랫폼 기업으로의 확장을 강조했다. SK온 역시 ESS와 로보틱스 중심 포트폴리오를 내세웠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올해 인터배터리 핵심 변화를 ‘에너지 인프라로의 대전환’으로 짚으며 전기차보다 AI 데이터센터, ESS, 로봇, 도심항공교통(UAM)이 전시 중심에 섰다고 분석했다. 

주요 기업 전략도 이에 맞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미시간에서 43억달러 규모 LFP 각형 배터리 생산 프로젝트를 통해 테슬라 메가팩3용 ESS 배터리 공급에 나섰다. 아울러 GM과의 테네시 합작공장도 EV용에서 ESS용 LFP 생산으로 전환하고 있다. 

삼성SDI는 물리 AI용 파우치형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공개하며 2027년 하반기 양산 목표를 분명히 했다. SK온은 인터배터리에서 고에너지밀도 LFP 파우치 셀 기반 ESS와 로봇용 배터리를 전면에 세우며 전기차 외 시장 확대를 공식화했다. 결국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ESS 현지 생산, 삼성SDI는 고부가 전고체·AI 전력 솔루션, SK온은 ESS와 신규 응용처 확장으로 각기 다른 방식의 시장 재편에 나선 셈이다.

▲ 美·EU 정책 변화도 배터리업계 변화 재촉…“안정적 전력 공급 역량 변수로”

대외 환경도 업계의 이런 전환 흐름을 재촉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는 최근 중국산 활성 음극재(AAM)에 대해 미국 산업 설립 저해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반덤핑·상계관세 명령을 부결했다. 그러나 이는 특정 품목 판단일 뿐 미국의 탈중국 공급망 기조가 후퇴했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실제 미 정부 대중 견제는 핵심광물과 비(非)전기차용 리튬배터리 등으로 계속 확장되는 양상이다. 

유럽연합(EU)도 앞서 산업가속화법(Industrial Accelerator Act) 초안을 내놓고 공공조달과 지원제도에 ‘메이드 인 EU’ 또는 저탄소 요건을 넣겠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구동용 배터리에 최소 3개, 더 높은 기준에선 셀·양극활물질·BMS를 포함한 5개 주요 부품 역내 조달을 요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배터리 기업 입장에선 기술 경쟁에 더해 생산 거점, 원재료 조달, 재활용 체계까지 묶어 대응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전환이 마냥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다는 데 있다. 국내 소재 업계는 여전히 양극재, 동박, 분리막, 전해액 전반에서 수익성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전기차 성장세 둔화 후폭풍도 완전히 지나가지 않았다. 

다만 산업 방향 자체는 이전보다 명확해졌다는 평가다. 전기차가 유일한 성장 엔진이던 시기는 지나가고 앞으로는 전력망 안정화, AI 데이터센터 백업 전원, 로봇·드론용 고안전성 배터리, 지역별 공급망 내재화 역량 등이 경쟁력을 가를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K-배터리 3사 및 국내 소재기업들이 겪는 변화는 단순한 업황 부진 대응이 아닌 배터리 산업 정의 자체가 바뀌는 과정”이라며 “시장은 이제 어디에 어떤 전력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느냐에 대한 답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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