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군림하려는 태도". 서울회생법원 판사가 건설공제조합(이하 건공)을 향해 내린 이 평가는 즉흥적 발언이 아니었다. 건공이 또 다른 건설 회생기업이 법원에 제출했던 허가신청서를 A사에 샘플로 건네며 "판사에게 가서 이 양식대로 면책 채무 추가 변제 허가를 받아오라"고 요구했고, A사가 실제로 판사를 찾아갔을 때 한 말이다. 그러나 건공의 요구는 계속됐다.
"법원 판결을 무력화한 불법 변제 강요"…법률대리인 경고· IB업계도 일침
A사 측 법률대리인은 건공의 행태가 두 가지 차원에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첫 번째 문제는 법원의 확정된 판결을 무력화하고 불법적 변제를 강제한다는 것입니다. 건공의 내부 규정은 채무자회생법이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회생계획 외 변제를 강제하는 내용으로, 상위법에 위배돼 효력 자체가 없습니다. 건공은 A사에 공문을 7회나 발송하고 이사회 의결 양식까지 제공하며 그대로 따르도록 강요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강박에 해당하며 강요죄 성립 요건을 충족합니다. 세상의 어느 기업이 법에 의해 갚지 않아도 되는 채무를 자발적으로 변제하겠다고 나서겠습니까. 자발성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번째 문제는 회생제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점이라고 했다.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은 모든 채권자에게 동등하게 적용됩니다. 건공이 추가 변제를 받는다면 같은 채권단이었던 다른 채권자들은 상대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특정 채권자 한 명의 요구에 응해 법원 판결 이상의 변제가 이뤄진다면, 회생계획 인가결정은 아무런 실행력이 없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합니다. 건공의 논리대로라면 다른 회생채권자 모두가 동일한 명분으로 추가 변제를 요구할 수 있고, 그 순간 회생제도는 흔들립니다."
IB업계 관계자는 "회생 인가를 받은 기업에 면책된 채무 변제를 강요한다면, 어떤 투자자가 기업을 인수하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건 자본시장 체제를 교란시키는 아주 나쁜 선례"라며 "기업 회생을 통한 경제 정상화라는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스스로 한 서명 스스로 뒤집었다…회생 전 경영진 빚, 인수 후 경영진에 불법 전가
앞서 본지는 지난 2월 3일 '[단독·기획 ①] 회생 판결 무력화 논란···보증 독점으로 조합원 압박하는 건설공제조합' 기사를 통해 이른바 '보증 인질화' 실태를 보도했다. 이번 기사는 그 구체적 실상이다.
당시 법원이 인가한 회생계획안은 채권단 78%의 동의로 통과됐다. 건설공제조합도 그 채권단 중 하나였다. 변제율 3.71%에 스스로 서명해놓고, 사후에 전액 변제를 요구하고 있다.
건공이 "조합 피해"라고 규정하는 채무는 A사의 회생 전 경영진 시절 발생한 것이다. 회생 전 경영진은 분식회계와 경영권 분쟁, 대규모 자금 유출로 회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회생 신청에 나선 것도 노동조합이었다. 이후 코스피 상장사 S사가 법원의 허가 아래 A사를 인수하고 2025년 6월 회생절차를 종결했다. 그런데 건공은 회생 전 경영진이 초래한 손실을 이유로, 인수 후 경영진에게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
건공은 회생계획안 인가 결정이 나온 바로 그달인 2025년 2월 공문을 발송했다. A사는 변제율 적용 납부액 2억4600만 원을 포함해 총 128억 원 이상을 2025년 3월 이미 변제 완료했다. 그럼에도 건공은 미발생 구상채권이 현실화될 때마다 전액을 청구했고, 누계 요구액은 181억 원에 달했다. A사는 강압에 못 이겨 10년에 걸쳐 181억4174만 원을 분기마다 납부하는 분할상환 계획에 서명했고, 2025년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약 5억 원을 납부했다. 이 181억 원은 현재 A사의 공식 회계보고서에 '부채'로 표시돼 있다.
건공의 압박 앞에서 A사 내부는 둘로 갈라졌다. 경영진은 보증 없이는 사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실 앞에서 건공의 강요에 못 이겨 10년 분할상환 계획에 서명했지만, 노동조합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A사 노조위원장은 "건설업에 30여 년을 몸담았고, 이 회사에서만 20년 넘게 일했습니다. 건공의 불법에 지금 우리가 타협하면, 다음 피해기업도 똑같이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압박이 와도 타협할 수 없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노조가 3회차 상환금 납부에 제동을 걸자 건공은 즉각 모든 업무거래 정지를 통보했다. A사가 대표사로 선정됐던 3,800억 원 규모의 대형 공사도 보증서 발급 불가로 백지화 위기에 몰렸다. A사 노조위원장은 "우리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협력사 가족 약 2,000명의 생계가 걸린 문제"라고 말했다.
A사 노조는 시위 첫날 조합원 50여 명이 국회 앞에서 행진 시위를 벌이며 건공의 불법 변제 강요 중단을 촉구했다. 이후 노조위원장이 2주가 넘도록 홀로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노조는 국회 청문회 참석, 국토부와 감사원 진정서 제출을 추진하며, 이후 단계로 건공 이사장 등 임원진에 대한 사기·배임·강요 혐의 형사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다. 행정소송과 헌법소원도 준비 중이다.
국토부, 독과점은 인정하고 개입은 주저했다
국회 국토위 의원실이 '건공의 회생기업 인수업체에 대한 부당 공제 요구'에 대한 질의서를 국토부와 건공에 발송하자, 양측은 세 가지 논리로 답변서를 보내왔다. 첫째 "사적 자치의 영역", 둘째 "대체 보증기관이 있어 독점이 아니다", 셋째 "직권남용 소지가 있어 개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가지 모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다.
첫째, '사적자치' 논리에 대해 건공은 '건설산업기본법 제54조'에 의해 설립된 특수법인으로, 설립 자체가 국가의 법률에 의해 강제된 기관이다. 건설업 등록을 위해 출자가 사실상 의무화돼 있고, 법령상 필수 보증서류를 발급하는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
'건산법 제67조'는 공제조합이 보증 규정과 약관을 제정하거나 변경할 때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사전에 보고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감독기관으로서 국토부가 보고를 받고도 문제를 방치한 것은 그 자체로 감독 책임의 공백이다. 사적자치는 선택의 자유가 전제될 때 성립한다. 건설사들에게 건공과의 거래는 선택이 아닌 사실상의 의무다.
둘째, '대체기관 존재' 논리에 대해 건공 채권관리본부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서울보증보험, 전문건설공제조합 등 대체 보증기관이 있어 독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현장 조사에서 서울보증보험 측 참고인은 "회생업체를 집중업체로 분류해 보증서 발급이 본부 심사를 통해 까다롭게 이뤄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전문건설공제조합은 전문건설면허 보유 업체만 이용할 수 있어 A사·C사 같은 종합건설면허 보유 기업은 법적으로 이용 자체가 불가능하다. 기자가 국토부 건설정책과 담당자에게 발주처들이 건공 보증서를 명시적으로 요구하는 현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그건 발주처가 불공정거래를 강요하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에 피해는 고스란히 건설사 몫이 되었다.
또 다른 회생 건설기업 C사의 경우, 기업회생 개시 결정이 났음에도 건공으로부터 보증금의 50~100%에 달하는 담보를 요구받아 자금 조달이 막혔다고 밝혔다. 조합이 추천하는 보험 상품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행태도 자행되고 있다고 했다. 수수료 환급 권리는 일부 우량 건설사에게만 은밀히 안내하면서 "다른 회사에는 알리지 말라"는 내부 지침도 운용하고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특히 건공 측은 C사에 "청산 · 파산으로 가면 조합은 더 업무가 수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셋째, '직권남용 소지' 논리에 대해 국토부가 국회 국토위 의원실에 제출한 내부 검토 문건은 "현행 조합 내규 자체로 채무자회생법 위반이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다고 결론 내리면서도, "개입하는 것은 직권남용 소지가 있어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건산법 제67조'는 공제조합의 보증약관 변경 시 국토교통부장관에게 사전 보고를 의무화하고 있다. 보고를 받는 위치에 있는 감독기관이 개입하기를 주저하는 것은 법이 부여한 감독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A사 노조는 불법 변제 요구 중단, 불법 변제금 약 5억 원 반환, 관련자 처벌, 내규 수정, 관리감독 책임을 국토부에서 금융위원회로 이관할 것을 공식 요구했다. 국회 국토위 의원실은 이 사안을 국토교통위원회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법원이 확정한 채권 관계 위에 건공의 내부 규정이 별도 조건으로 작동하면서, 회생제도를 신뢰하고 기업을 인수한 투자자가 예상치 못한 부담을 지게 되는 구조적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가 건공과 피해기업 사이의 합리적 해법으로 귀결될 수 있을지, 국회와 국토부 관계 당국의 역할이 주목된다.
지난 27년간 그 누구도 공룡의 발톱을 꺾지 못했다. 1999년 금융감독원이 공제조합 감독 일원화를 추진했으나 법안은 끝내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8년 공정위가 하도급 불공정 약관에 시정 권고를 내렸지만 건공은 약관을 수정해 다시 고수했다. 2014년 보증 끼워팔기 갑질이 보도됐을 때 국토부는 "제재 권한이 없다"고 했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서 건공 채권관리팀이 작성한 출장복명서의 '향후 처리 전망' 항목에는 "향후 조합의 피해 복구 조건부 거래허용이 부당한 거래거절인지 여부 등에 대한 조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됨"이라고 적혀 있었다. 피조사 기관 스스로가 반쪽 조사임을 인정했지만, 그 조사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위는 2019년 10월 무혐의로 결론 냈다.
또한, 제19대 국회에서 거래 거부 · 조건 차별 금지 법안이 두 차례 발의됐으나 법무부 반대로 상임위 심의에서 삭제됐다. 2021년 58년 만의 운영 제도 개편이 이뤄졌지만 회생기업에 대한 문제는 계속됐다.
건설산업의 보증 독점 권력이 법의 사각지대에 머무는 한, 발밑에서 짓눌리는 것은 회생을 꿈꾸는 건설사들과 대한민국 건설산업 노동자들이다. 이 문제의 합리적 해법을 찾는 데 국회, 국토부 등 관련기관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