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의 작동 방식을 바꿔놓고 있다. 효율과 편리함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위험과 윤리적 과제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AI 논의의 핵심은 단순한 성능 경쟁이 아니라 올바른 사용과 책임 설계에 있다. 명확한 기준과 통제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AI는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불평등과 불신을 심화시킬 수 있다.
투데이신문의 [AI&윤리] 기획연재는 이 지점을 정면으로 다룬다. AI가 사회 곳곳에 남기는 여파와 영향력을 구체적으로 짚고 책임·공정성·투명성 등 윤리 원칙이 왜 필요한지, 현장에서 어떻게 구현돼야 하는지를 살펴본다.
【투데이신문 권신영 기자】인공지능(AI) 배우가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기용되기 시작한 가운데, 저작권과 초상권·퍼블리시티권 침해, 일자리 대체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제기되며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AI 데이터 학습과 활용을 둘러싼 법·제도의 공백을 지목하고 있다.
24일 취재에 따르면 최근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AI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배우’가 등장하며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AI 학습 과정에서 기존 창작물이 활용되며 저작권 침해 논란이 이어져 온 데다, 배우 업계에서는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는 ‘붕샹(撞脸·닮은 얼굴)’ 문제를 둘러싸고 초상권 및 퍼블리시티권 침해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다.
지난 18일 중국 미디어·엔터테인먼트 기업 야오커미디어(耀客传媒)는 AI 디지털 아티스트 친링웨(秦凌岳)와 린옌시(林汐颜)를 정식 계약했다고 발표하고 이들이 출연하는 AI 드라마도 함께 공개했다. 두 배우는 더우인(抖音)과 샤오훙수(小红书)에 공식 계정을 개설해 콘텐츠를 공유하며 대중과 소통에 나설 계획이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이들을 둘러싸고 ‘붕샹’ 논란이 제기됐다. 특정 배우의 표정과 분위기, 음성을 조합해 만든 듯한 외형이 불쾌감을 준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네티즌들은 친링웨가 남성 배우 자이쯔루(翟子路)를, 린옌시는 여성 배우 자오진마이(赵今麦), 장쯔펑(张子枫), 일부는 량제(梁洁) 등을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AI 배우가 인간 배우를 대체할 수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도 격화되고 있다. 앞서 할리우드에서는 이미 유사한 갈등이 현실화됐다. 2023년 미국배우조합은 일부 제작사들이 무명 배우의 얼굴과 신체를 스캔한 뒤 해당 데이터를 향후 제작물에 활용하려 한 시도를 단역 및 엑스트라 배우를 AI로 대체하려는 행위라며 파업에 나선 바 있다.
이 가운데 기업들은 비용과 다양한 변수가 대폭 줄어든다는 점을 유인책 삼아 영화산업 내 AI 배우 개발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다. 네덜란드 출신 배우이자 제작자인 판데르 펠덴이 이끄는 AI 제작사 파티클6 산하 스튜디오가 선보인 AI 배우 ‘틸리 노우드’는 지난 10일 4분이 넘는 뮤직비디오를 공개하며 약 22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틸리 노우드의 제작진 측은 틸리 노우드와 같은 AI 배우를 활용할 경우 제작비를 최대 90%까지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배우조합은 “틸리 노우드는 배우가 아니라 전문 연기자들의 연기를 학습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캐릭터”라며 “허락이나 보상 없이 도용된 연기를 활용해 배우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인간의 예술성을 훼손한다”고 규탄했다.
AI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성능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저작권 문제와 일자리 감소 우려는 배우 업계 이전에 음악과 미술 등 전반에 형성돼 있던 담론이다. 최근에도 기준이 까다롭기로 알려진 예술인 활동 증명을 AI 작품을 통해 통과한 사례 등이 알려지면서 예술인복지재단 등에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국내외 예술인들은 AI 학습 과정에서의 권리 침해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왔지만 AI 기술이 국가 및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충분한 공론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저작권과 초상권, 일자리 문제를 둘러싼 잇단 갈등의 배경에는 AI 데이터 학습과 관련해 기업에 적용되는 법과 제도의 공백이 자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영화 ‘폭설’으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수상한 배준원 감독은 본보와의 통화에서 AI 배우를 둘러싼 논란의 본질이 기술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초상권·퍼블리시티권 계약과 관련 법·제도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했다.
배 감독은 “기술적으로는 이미 AI 배우 구현이 가능한 수준에 이르렀지만 실제 상용화의 관건은 권리 보호 장치와 규제 정비에 달려 있다”면서 “당사자 동의와 계약이 전제된다면 AI 배우 활용 자체는 문제가 아니며 제도적 기준이 마련될 경우 창작의 폭을 넓히고 오히려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인공지능윤리협회 전창배 이사장은 본보에 “AI 학습 과정에서의 저작권 문제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제도 정비가 진행 중인 영역이지만 실존 인물의 얼굴이나 목소리를 동의 없이 구현·활용하는 문제는 현행법으로도 충분히 다툴 수 있다”며 “특정 배우나 유명인을 떠올리게 하는 AI 배우를 허락 없이 상업적으로 사용할 경우 초상권과 퍼블리시티권 침해는 물론, 경우에 따라 명예훼손 문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 인물의 특징을 섞어 만든 AI 캐릭터라고 하더라도 학습 단계에서 실제 배우의 얼굴과 음성을 무단 활용했다면 그 책임은 이용자보다 AI 기업에 더 무겁게 물을 수 있다”며 “관련 법과 제도가 아직 미비한 만큼 기업의 데이터 학습에 대한 사전 고지와 보호 장치가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이를 강제할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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