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22대 국회 후반기 원(院) 구성을 앞두고 여의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책임 정치 구현을 명분으로 17개 상임위원장 전석을 차지하겠다는 ‘상임위 100% 독식’을 공식 선언하면서다. 그러자 국민의힘은 “일당 독재이자 의회 폭거”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어,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착된 국회 협치 관행이 벼랑 끝에 몰렸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지난 23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후반기 상임위 구성과 운영을 100% 민주당이 맡아 책임지겠다”고 선언했다.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소속 윤한홍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무위원회의 법안 통과율이 17.6%에 불과한 점을 거론하며 “환율안정 3법, 자본시장법, 상법 등 시급한 민생 법안 처리가 지연될수록 피해는 오롯이 국민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국무회의에서 “야당이 위원장이라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고 정무위를 직접 거론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읽힌다. 청와대와 여당이 사실상 동시에 야당 소관 상임위의 입법 지연을 겨냥하면서, 후반기 원 구성에서의 상임위 독식에 대한 명분 쌓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정 대표는 앞선 의원총회에서도 미국의 승자독식 모델을 언급하며 “우리도 미국식으로 전 상임위를 독식해 책임지고 일하겠다”고 공언했던 바 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상임위원장 여야 배분 문제를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할 것”이라며 “여당 간사 중심의 단독 회의 추진은 물론, 일하지 않는 위원장의 권한을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회 상임위는 2년 전 상반기 원 구성 협상에 따라 민주당은 10곳, 국민의힘은 7곳의 상임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 국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 38년간 여야가 의석 비율에 따라 상임위원장을 배분해 온 관행이 있다. 특히 법제사법위원장을 원내 제2당이 맡아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견제하는 구조는 한국 의회정치의 핵심 안전장치로 여겨져 왔다. 이를 전면 폐기하겠다는 선언인 만큼, 논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행보를 ‘국회 장악 음모’로 규정하고 총력 저지에 나섰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 의석수에 따른 상임위원장 배분의 전통은 87년 민주화 이후 13대 국회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며 “상임위원장 100% 독점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87년 민주화의 성취에 침을 뱉는 행위”라고 일갈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현재 17개 상임위 중 민주당이 이미 10곳을 맡고 있음에도 전부를 독식하겠다는 것은 국회를 특정 정당의 일방 통치 기구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최 수석은 “이 대통령이 공개 비판한 직후 여당 대표가 화답하듯 나선 것은 입법부를 행정부의 하부 기관으로 만들려는 노골적인 권력 일체화 시도”라며 날을 세웠다.
나경원 의원도 추미애 민주당 의원의 법사위원장 사퇴 이후 공석인 법사위원장직의 반환을 재차 요구하며 “사법 파괴의 선봉장이 내던지고 간 그 자리를 민주당이 계속 틀어쥐겠다는 것은 입법 독재를 멈추지 않겠다는 대국민 선전포고”라고 맞섰다.
앞서 추 의원은 경기도지사 출마를 위해 지난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법사위원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오는 31일 본회의에서 추 의원에 대한 법사위원장 사임안을 처리하는 것과 연계해 후임 법사위원장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거대 여당의 상임위 독식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1대 국회 전반기인 2020년 민주당은 180석의 압도적 과반을 바탕으로 18개 상임위원장을 단독 차지한 바 있다.
그러나 약 1년2개월간의 독식 체제 속에서 ‘임대차 3법’ 등 졸속 입법 논란이 잇따랐고, 2021년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재협상을 통해 법사위원장직을 야당에 넘겨줘야 했다.
이르면 오는 5월 말 여당 출신 국회의장 선출 이후 본격적인 원 구성 협상이 시작되면, 상임위 배분을 둘러싼 여야 충돌이 정국의 핵심 뇌관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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