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약국 /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뜨거운 뚝배기 국물이 허벅지에 쏟아졌다. 병원에선 드레싱만 해줬다. 너무 아파 밤새 끙끙거렸다. 다음 날 아버지가 수소문 끝에 사 온 분홍색 통에 담긴 연고. 바르자 거짓말처럼 통증이 가셨다. 두 통을 다 쓰고 나니 심했던 발목 화상이 흉터 하나 없이 말끔히 나았다. 30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연고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지금도 생생하다.
선약국 화상 연고 / 스레드
SBS 예능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꼬꼬무')가 서울 왕십리 행당시장에 있던 선약국과 이 약국에서 판매한 화상연고를 취재 중이다. 방영 예고 소식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연고를 기억하는 이들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쏟아지고 있다.
선약국은 서울 무학여고 앞에 있었던 약국이다. 약사가 직접 조제한 화상연고로 명성을 얻었다. 분홍색 혹은 하얀색 통에 담긴 이 연고는 당시 왕십리 일대 식당 종사자와 어린 자녀를 둔 가정에서 하나씩 구비해둘 만큼 입소문이 자자했다. 왕십리 근처에 곱창집, 고깃집이 많아 불판에 화상을 입는 사람들이 많았고, 약국이 그 인근에 있었던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온라인에는 직접 체험담을 쏟아내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다. "1991년쯤 펄펄 끓던 뚝배기 된장찌개가 발목과 허벅지에 엎어졌는데 약 2통을 쓰고 나니 흉터도 없이 나았다. 진짜 기적의 연고", "기름이 튀거나 화상을 입었을 때 쓰라리고 아프고 화상 부위가 부풀어 오르려 할 때도 저 연고를 바르면 통증도 없고 언제 그랬냐는 듯 싹 낫는다. 화상 통증이 없어지는 게 제일 신기했다" 등 생생한 경험담이 잇따르고 있다.
SBS 예능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가 올린 게시물.
언니가 오토바이 배기통에 종아리가 닿아 크게 데었는데 연고를 두둑이 바르고 흉터도 없이 나았다는 사연도 있다. "요리하다 기름이 튀어서 얼얼한 곳에 약을 올리자 얼얼한 느낌이 싹 가라앉고 회복도 빨랐다. 분홍색 작은 통, 흰색 큰 통을 펑펑 써대던 지난날이 후회된다"는 글도 올라왔다.
극적인 사연도 있다. 현재 나이 47세라고 밝힌 한 누리꾼은 자신이 어릴 때 할머니가 끓여 놓은 미역국을 엎어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 아버지가 구해온 왕십리 선약국 연고 덕분에 화상 흉터가 하나도 없이 나았다고 했다. 이 누리꾼은 결혼 전 남편과 포천 일동 근처 유원지에서 물놀이 중 아이들이 주운 탄피 같은 것이 폭발해 남편이 한쪽 팔에 화상을 입은 일도 전했다. 병원 치료 후 수소문 끝에 파주로 이사한 선약국을 찾아가 연고를 받아 남편 팔 전체에 발라줬더니 흉터 하나 없이 완치됐다는 것이다. 그는 "이게 석고처럼 화상 부위에 도포하면 화기를 빼주는 원리 같았다"고 회상했다.
전신 화상 사연도 나왔다. 친척 동생이 밥솥을 잘못 열어 증기와 쌀밥 때문에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어머니가 선약국에서 연고 몇 통을 사다가 발라줬더니 회복 속도가 거짓말처럼 빠르고 흉터도 생기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누리꾼은 "제약사들이 압박을 가하고 연고 만드는 방법을 달라고 했다는데 어느 순간 사라지셨다. 저만큼 좋은 화상연고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연고를 아직 손에 쥐고 있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냉장고에 아직 2개 남아 있는데 가족끼리 우스갯소리로 가보처럼 간직해야 한다고 한다. 더 구할 수 없어서"라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우리 집 보물 중 하나인데 딱 하나 남아 있다. 제보할까 고민된다"는 반응도 나왔다. "왕십리 살았으면 집에 핑크색 통에 담긴 이 연고 하나쯤은 다 있었을 것"이라는 말에는 "우리 부모님은 이거 더 못 사놨다고 항상 아쉬워하신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의약분업 시행 직전 연고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많다. "의약분업 시작하기 직전에 이거 사려고 줄을 섰던 게 생각난다"는 글이 올라오자 "우리 엄마도 그때 두 개 사셔서 지금도 냉장고에 있다"는 답글이 달렸다.
선약국 화상연고가 더 이상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된 것은 2000년 의약분업 때문이었다. 약사가 처방전 없이 독자적으로 약을 조제해 판매하는 것이 금지되면서 선약국은 법 적용을 받지 않는 지방으로 이전을 거듭했다. 경기 양주, 파주 등을 거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결국 폐업했다. "약국이 양주로 이사했을 때 엄마가 약을 구하러 가셨는데 허허벌판에 약국 하나 달랑 있었고 이제 안 한다고 하더라"는 목격담도 남아 있다.
약사의 행방에 대해서는 경기도 이전 후 중국으로 건너갔다는 이야기,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 이야기가 온라인에 떠돌 뿐 정확한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딸도 약사였지만 더 이상 약국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블로그 댓글도 남아 있다.
Copyright ⓒ 위키트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