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를 앞두고 다자무역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고강도 개혁 보고서를 발표했다. 특히,한국을 포함한 주요 경제국들의 개발도상국(개도국) 지위 유지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하며, 2026년 현재의 글로벌 경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특혜 제도를 전면 개편하라고 압박하고 나섰다.
"선진국-개도국 이분법은 구시대 유물"… SDT 전면 개편 촉구
미 무역대표부(USTR)는 23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26~29일 카메룬 야운데에서 열리는 제14차 WTO 각료회의(MC-14)를 겨냥한 개혁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의 발언을 인용해 "WTO가 감독하는 현행 국제무역 질서는 더 이상 옹호될 수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고 규정하며 강력한 변화를 예고했다.
미국이 제기한 개혁의 핵심은 '개발도상국 특혜(SDT)' 자격 요건의 현실화다. WTO가 여전히 선진국과 개도국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적 구조에 갇혀 있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나 상당한 경제 발전을 이룬 국가들이 개도국 지위를 주장하며 특혜를 누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다.
한국·싱가포르 등 4개국 지목… 중국 향한 '불신'도 명시
보고서는 특히 한국, 싱가포르, 브라질, 코스타리카 등 4개국을 실명으로 거론했다. 이들 국가가 과거 WTO 협상에서 SDT 조항을 적용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식적인 개도국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은 것이다.
이는 2019년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한국이 '개도국 특혜 미주장'이라는 절충안을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지위 자체의 포기'를 압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에 대한 견제 수위도 높았다. 지난해 9월 중국이 WTO 협상에서 개도국 특혜를 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 보고서는 "미국의 개혁 제안에 대한 반응으로 보이지만,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이행 약속에 의문이 제기된다"며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놨다.
상호주의 원칙 강화… WTO 존립 기로
미국은 구체적인 개혁 방안으로 ▲통지 의무 준수국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 ▲적격성 판정을 위한 객관적 기준 마련 ▲최혜국대우(MFN)와 상호주의 간의 관계 재정립 등을 제시했다. 그리어 USTR 대표는 "국제무역 체제가 균형과 상호주의 중심으로 전환되는 가운데, WTO가 관련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기조 속에 WTO의 분쟁 해결 기능 등이 사실상 마비된 상황에서, 이번 각료회의는 다자무역 체제의 존립을 결정짓는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강화된 개도국 지위 포기 압박에 대응해야 하는 새로운 통상 과제를 안게 됐다.
[폴리뉴스 차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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