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경북 영덕 풍력발전단지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의 '가장 아픈 단면'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80m 높이의 타워 위에서 정비를 하던 노동자 3명이 목숨을 잃은 이번 참사는 단순한 화재 사고를 넘어, 노후화된 풍력발전 설비의 안전 관리 체계와 기술적 한계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고가 발생한 영덕 풍력발전기 19호기는 타워 높이만 78m에 달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 지상 소방 장비가 상부 넛셀(발전기 핵심 장치함)까지 물을 뿌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발전기 높이가 너무 높아 소방차의 물줄기가 닿지 않는 데다, 산 정상부에 위치해 대형 사다리차 접근도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풍력발전기는 구조적 특성상 화재에 매우 취약하다. 넛셀 내부에는 기어박스 윤활유, 유압유 등 가연성 물질이 가득하고, 블레이드(날개)는 탄소섬유나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FRP)으로 제작되어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진다. 특히 강풍이 부는 지형적 특성상 불씨가 인근 산림으로 번지기 쉬워 2차 대형 산불의 위험도 상존한다. 실제로 이날 화재도 인근 산으로 옮겨붙어 진화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 중 하나로 '설비 노후화'를 지목한다. 2005년 준공된 영덕 풍력발전단지는 국내 최초의 상업용 대단지로, 총 24기 중 상당수가 설치된 지 20년을 넘겼거나 육박한 상태다. 일반적으로 풍력발전기의 설계 수명은 20년 내외로 본다.
문제는 노후 설비일수록 고장 빈도가 잦아지고 유지·보수(O&M) 수요가 폭증한다는 점이다. 영덕 단지 역시 최근 수년간 잦은 가동 중단과 부품 교체 작업이 반복되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초기 도입된 해외 제조사 모델들은 부품 수급이 어렵고 기술 지원이 끊긴 경우가 많다"며 "결국 무리한 보수 작업이 이어지며 안전사고 위험을 키우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사망한 작업자 3명이 모두 외주 유지·보수업체 소속이었다는 점은 '위험의 외주화' 논란을 다시 점화하고 있다. 풍력발전기 정비는 좁은 타워 내부를 타고 수십 미터를 올라가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다. 하지만 영세한 외주 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촉박한 일정 속에서 작업을 강행하거나, 충분한 안전 장비를 갖추지 못한 채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고용노동부와 경찰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중대재해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특히 노후 설비에 대한 안전 점검이 형식적으로 이뤄졌는지, 원청사가 안전 보건 확보 의무를 다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노후 풍력발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리파워링'(Repowering)이 꼽힌다. 리파워링은 노후화된 저효율 발전기를 철거하고, 그 자리에 최신 고효율·대형 발전기를 다시 설치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발전 효율을 2~3배 이상 높이면서 최신 소방 설비와 원격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해 안전성까지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주민 보상 문제로 리파워링이 지지부진한 실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존 부지를 활용하는 리파워링은 환경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며 "정부 차원의 인허가 간소화와 인센티브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을 활용한 예지 정비 시스템 도입도 필요하다. 센서를 통해 진동, 온도 등을 실시간 분석하여 사고 징후를 사전에 포착함으로써 작업자가 위험한 상황에서 직접 투입되는 횟수를 줄여야 한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영덕 화재 사고는 설비를 '짓는 것'보다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교훈이 됐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이번 사고를 기점으로 전국에 산재한 노후 풍력·태양광 설비에 대한 전수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신재생에너지 O&M 시장의 표준 안전 매뉴얼을 확립하고 정비 전문 인력의 국가 자격 제도화 등 인프라 구축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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