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포의 창] 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운동가 김만겸 선생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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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의 창] 광주 고려인마을, 독립운동가 김만겸 선생 재조명

연합뉴스 2026-03-24 08:49: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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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언론·사상으로 항일투쟁 이끈 실천적 지식인…후손 발굴·기억 복원 추진

김만겸 선생 김만겸 선생

[독립기념관 제공]

(서울=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광주 고려인마을이 연해주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만겸 선생(1886~1938)의 삶을 재조명하며, 잊힌 독립운동의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에 나섰다.

고려인마을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행되는 고려신문과 함께 추진 중인 '연해주 고려인 독립유공자 후손 발굴·지원 사업'을 통해 열네 번째 인물로 김만겸 선생을 선정했다고 24일 밝혔다.

함경북도 경원 출신인 선생은 어린 시절 서당에서 한학을 익힌 뒤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근대 교육을 받았다. 이후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시대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어 항일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1905년 러시아 혁명에 참여하고, 1910년 국권 피탈에 항거하는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며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나섰다. 러시아 신문 '달료카야 오크라이나'의 서울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일제 침략을 비판하다 강제 추방을 당하는 등 탄압을 겪기도 했다.

선생은 연해주 신한촌 한민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민족교육에 헌신했고, '청구신보'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한인 사회의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독립선언서를 러시아어로 번역·보급해 국제사회에 독립의 정당성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

이후 대한국민의회 부의장으로 선출돼 상해로 파견된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학무총장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 조직과 사상 정립에 기여했다. 또한 고려공산당 조직과 잡지 '공산', '신생활' 발간 등에 참여하며 다양한 노선을 통해 민족 해방의 길을 모색했다.

그의 활동은 무장투쟁에 국한되지 않았다. 교육과 언론, 사상을 통해 민족의 미래를 준비한 실천적 지식인이자 혁명가로 평가된다. 연해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고려사범대학 설립과 한인 학교 확산에 힘쓰며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정체성 유지에 기여했다.

그러나 그의 생애는 비극으로 끝났다. 1937년 고려인 강제이주로 카자흐스탄으로 옮긴 뒤, 1938년 '반소 활동' 혐의로 체포돼 같은 해 10월 7일 알마타주 내무인민위원회 트로이카 결정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았고, 다음 날 형이 집행됐다. 묘지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후 1958년 투르크스탄군관구 군사법정에서 복권됐으며, 정부는 200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고려인마을 관계자는 "김만겸 선생은 교육과 언론, 사상을 통해 독립을 준비한 인물"이라며 "그의 삶을 기억하는 일은 우리가 어떤 역사를 살아왔는지를 되묻는 일"이라고 말했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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