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대학 입학 정원이 많이 늘어나기 전인 1979년, 필자는 동인천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다.
그때 대학입시가 인문계 고교의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학교에 주는 압박은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러했기에 어느 학교든 고3 학생들의 소풍은 생각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는 꽃 피는 4월 봄날에, 지금은 없어진 청학풀장으로 소풍을 갔다. 당시 교장선생님이 “고3이라고 왜 소풍을 안 가느냐”라며 우리를 풀어준 덕분이다. 지금 학생들은 무엇인지도 모를 교련복을 입고, 기타를 치며 친구들과 신바람이 났던 당시의 사진들을 갖고 있다.
그날 하루 소풍 때문에 우리의 대학입시에 엄청난 피해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그날의 기억은 지금도 동창들을 만나면 거듭 얘기가 나올 만큼 좋게 남아 있다. 그 교장선생님은 이 가치를 알고, 추진할 만큼 확고한 신념과 의지를 갖추셨던 듯하다.
그 소풍은 꽤 예외였지만 그 시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소풍과 수학여행, 체육대회 등의 바깥 활동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돌이켜 보면 그것들은 휴식을 넘어 함께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는 중요한 교육과정이었다. 간혹 사고나 문제도 있었지만 그 가치나 순기능을 덮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활동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사고라도 날까 봐 체육대회를 안 하고 소풍이나 수학여행도 꺼린다. 어쩌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학부모의 험악한 항의는 물론 교육청의 감사가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기야 군대에 가서 훈련받고 병생활관 생활을 하는 것까지 부모들의 온갖 민원과 항의가 들어오는 판에 학교가 온전하기를 바라는 건 무리일 듯도 하다.
급기야 이제는 안전사고 위험에 더해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상(賞)을 주는 것의 ‘불공정함’을 따지는 학부모들 때문에 졸업식마저 제대로 못 하는 학교가 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과연 이런 현상을 ‘시대 흐름’이라는 말로 그냥 덮고 넘어가도 되는 것일까.
학교는 서로 경쟁도 하고 협력도 하면서 공동체의 삶을 배우는 예비 사회다. 교과서 공부로 지식을 넘겨받기만 하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지금의 눈으로는 예전의 학교생활이 인권 침해와 불공정·불합리의 범벅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물론 문제가 무척 많았다. 하지만 그 시절을 겪어내며 공동체를 배우고, 바로잡고, 지켜낸 사람들이 보란 듯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우리의 학교에서 소풍과 체육대회, 수학여행, 동아리 모임 같은 여러 교과서 밖의 활동이 활발하게 살아났으면 한다. 이는 학교 교육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 ‘교육철학’의 문제다. 거기서 생기는 문제들조차 함께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또 하나의 좋은 교육의 장(場)으로 만들 수 있다. 가뜩이나 학생들이 휴대폰과 컴퓨터에 찌들어 갈수록 사회성과 공동체 의식을 잃어가고 있지 않은가.
겨울이 가고 다시 새봄, 새 학기다.
인천의 선생님들과 교육 행정가들만이라도 고3을 소풍 보낸 그 교장선생님처럼, 학생들의 건강한 바깥 활동을 적극 지지하고 지원하는 소신과 철학을 보여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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