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은 이번 미국·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걸프 국가들을 향한 미사일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9일(현지시간)에는 이스라엘이 세계 최대 천연가스전인 이란 사우스 파르스 가스전을 공격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카타르의 라스 라판 에너지 복합단지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카타르를 비롯한 걸프 국가들은 이란의 반복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보복을 자제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인내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무엇이 이들을 행동에 나서게 할 수 있을까.
취약성은 크지만, 이익은 제한적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대해 합동 군사 작전을 개시하자, 이란 당국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미국과 동맹인 걸프 국가들까지 겨냥하며 대응에 나섰다.
이에 바레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오만, 특히 아랍에미리트(UAE)가 공격받고 있다.
이들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은 이란이 중동 내 미군 기지뿐만 아니라 공항, 호텔, 주거 지역과 같은 민간 기반시설까지 공습하고 있으며, 심지어 에너지 시설도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걸프 국가들은 이란에 대한 자체적인 공격에는 나서지 않으며, 이번 전쟁에 직접 개입하길 꺼리는 듯하다.
미국 싱크탱크 '국제정책센터(CIP)'의 시나 투시 선임 비상주 연구원은 "걸프 국가들의 입장에서 이는 자신들의 전쟁이 아니"라면서 "보복에 나설 경우 취약한 방관자가 아닌 더 큰 표적이 될 위험이 뒤따른다. 즉 (보복은)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더 많은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이렇듯 자제하는 모습은 "높은 취약성, 전략적 계산, 이익은 제한적인 상황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또한 투시 연구원은 걸프 국가들의 경제는 에너지 기반 시설, 해운, 투자자 신뢰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란은 자신들이 이 모든 것을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란은 세계 경제의 핵심적인 해상 통로인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을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UAE 소재 '트렌즈 리서치 앤 어드바이저리'의 수석 전무이사이자 트럼프 1기 행정부 국방부 관료였던 빌랄 사브는 걸프 국가들이 계속해서 직접적인 대응을 꺼린다면 "이는 테헤란에 아무런 대가 없이도 자신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보복에 나선다면 단기적으로는 이란의 공격을 중단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미래 이란의 공격에 대한 억지력 구축이 목표일 것입니다."
다만 그는 걸프 국가들이 실제로 공격에 나선다고 해도 과연 이번 전쟁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지, 전략적으로 현명한 선택일지는 불분명하므로 이에 따르는 위험은 "상당하다"고 덧붙였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국제안보학을 가르치는 롭 가이스트 핀폴드 교수는 걸프 국가들 사이에는 이스라엘 및 이스라엘의 역내 목표에 동조하는 데 거부감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미국을 이번 전쟁에 끌어들였다는 인식이 있다"고 설명했다.
'2003년의 유령이 다시 어른거립니다'
또한 핀폴드 교수는 여전히 많은 걸프국 지도자들이 2003년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이 남긴 기억을 통해 역내 정세를 바라본다고 지적했다.
2003년 당시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빠르게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후 권력 공백이 생기면서 반군 활동과 종파간 갈등으로 수년간 이라크는 물론 중동 지역 자체가 불안정했다.
"2003년의 그 유령이 다시 어른거린다"는 표현이다.
"(걸프 국가들은) 당시 전쟁이 자신들의 문 앞까지 혼란과 불안을 대거 끌어들이고, 이란이 영향력을 키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됐죠."
핀폴드 교수는 걸프 국가들은 현재 미국이 "아무런 명확한 목표도, (전쟁을) 끝낼 구체적인 시점도 없는 사실상 무기한 작전"을 벌이고 있으며, 이 지역이 다시 "혼란 속에 남겨질"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걸프 국가들은 이번 전쟁을 시작한 미국과 이스라엘에 불만을 품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미국 군사 기지와 병력을 주둔시키는 것 외에도, 첩보 공유와 미국의 방공 시스템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많다.
걸프 국가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방공 시스템은 지금까지 이란의 미사일 공격 대부분을 요격해왔다.
핀폴드 교수는 "(걸프 국가들이) 현재 정치적 차원에서 미국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지만, 작전이나 군사적 차원에서 이들과 미국의 관계는 이미 여러 차례 시험을 거치며 위기를 번번이 극복해왔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공격을 시작한 이후, 미국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능력 파괴부터 완전한 정권 교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사 작전 목표를 제시해왔다.
하지만 핀폴드 교수는 걸프 국가 지도자들은 이번 공습을 끝낼 유일한 해법은 외교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걸프 국가들이 보기에 자신들이 공격받지 않도록 보장받을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지 합의에 도달하고, 협상을 통해 타협점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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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역내 역학
핀폴드 교수는 이란은 모든 걸프 국가들을 "동일한 열정"으로 공격하고 있지 않다며, 이는 이란이 각 국가와 맺은 관계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례로 UAE는 이번 전쟁 기간 가장 많은 공격을 받은 국가 중 하나다. 2020년, UAE와 바레인은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바 있다.
반면 이란과 서방 사이에서 오랫동안 중재자 역할을 해온 오만을 노린 공격 횟수는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핀폴드 교수는 "오만은 이란의 새로운 최고 지도자(모즈타바 하메네이)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낸 유일한 걸프 국가였다"면서 "다른 걸프 국가들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고 했다.
한편 두바이 '공공정책연구센터'의 모하메드 바하룬 소장은 "이란이 걸프 국가들을 이란에 맞서는 연합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란은 걸프 국가들을 공격함으로써 이들을 적으로 돌리고 있으며,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확전의 위험을 부채질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8일 사우디에서 열린 걸프 국가 외교장관 회의 후, 아랍 국가들은 유엔 조약 51조에 따라 자신들에게는 자위권이 있음을 재차 강조했다.
걸프 국가들의 보복을 유발할 수 있는 요인은?
영국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선임 연구원인 H. A. 헬리어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현재는 보복을 자제하고 있지만, "정치적 계산은 빠르게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 국가의 에너지 수출을 방해하는 공격이 계속되거나 확대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걸프 국가들이 보복에 나설 수 있는 주요 계기 중 하나로 에너지 시설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꼽았다.
지난 19일, 이란은 카타르의 라스 라판 에너지 복합 단지를 공격한 후, 자국 시설에 대한 공격이 계속될 경우 미국의 걸프 동맹국들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한 바 있다.
또 다른 변수는 이란의 역내 대리 세력이 걸프 국가들을 직접 공격하는 시나리오다.
핀폴드 교수는 "만약 후티가 이들 국가를 공격한다면 … 완전히 새로운 전선이 열리는 셈"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렇게 되면 걸프 국가들은 이번 분쟁을 더 이상 미국과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닌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핀폴드 교수는 어찌 됐든 걸프 국가들이 아직은 자제하고 있으나, 이란의 이 같은 전략은 "극도로 위험하다"고 본다.
"걸프 국가들과 쌓아온 모든 관계를 스스로 불태우고 있음은, 이란 당국이 이 분쟁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한편 헬리어 박사는 걸프 국가들이 언제까지 이란의 공격을 "그저 감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민간 시설 공격이 이어질 경우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또한 궁극적으로 걸프 국가들을 압박해 미국을 자제시키려는 이란의 이 같은 고위험 전략이 오히려 역효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중동 국가들이) 비록 현재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전쟁에 대해 반대하고 있지만, 이제는 자신들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란으로부터의 즉각적인 위협을 끝내고자 미국의 작전을 지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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