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인 TSMC와 함께 일하게 돼 기쁘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6~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GTC 2026에서 대만과 관련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 말밖에 없다. 이마저도 행사 2일차에 비공개로 진행된 '프레스 & 크리에이터 Q&A'에서 나온 발언이다.
전 세계 눈이 황 CEO에게 몰린 개막 첫날 기조연설에서 그는 장장 2시간 30분 동안 대만의 '대'자도 꺼내지 않았다.
대신 등장 전부터 미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로큰롤(Rock 'n' Roll) 풍의 배경음악이 흘렀고, 특유의 검은색 '레더 아우터(Leather Outer)'를 입고 쿨하게 등장했다.
그는 연설 도중 두 팔을 번쩍 들어올려 챔피언 포즈를 취하는가 하면 30~50kg의 무게가 나가는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울트라' 기반 최신 AI 슈퍼컴퓨터 'DGX B300' 상단 랙 모듈을 번쩍 들어올린 상태로 말하기도 했다. 4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은 그에게 압도됐고, 연신 환호성이 터졌다. 그야말로 미국 마초 남성 그 자체였다.
황 CEO는 3일차 저녁에 조용히 대만 야시장 컨셉의 'Day and Night Market' 이벤트에 참석해 고향의 간식을 함께 즐겼다. 이날 황 CEO의 모습은 단순한 갑을 관계를 넘어선 '대만식 형제 경영'의 전형이었다. 그에게 대만은 굳이 드러내거나 내세우지 않아도 되는, '말하지 않아도 아는' 존재인 셈이다.
엔비디아와 대만의 깊은 관계는 앞서 말한 2일차 Q&A 세션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수백 명의 글로벌 기자, 크리에이터가 착석한 행사장에선 대만계 내지 범 중국계로 추정되는 참석자가 적지 않았다. 20개는 족히 넘는 질문 중 적지 않은 비중이 이들의 질문이었다. 일부 중국식 영어 악센트를 쓰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황 CEO에 대한 존경심마저 느껴졌다. 중간에 황 CEO에게 황금색 트로피를 건넨 '모터트렌드' 편집장 에드 로도 홍콩계 미국인으로 알려졌다.
황 CEO는 이날 대만 공급망의 중요성을 못 박는 발언도 했다.
한 기자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의 '대만 전체 반도체 공급망·생산량의 40%를 미국으로 가져오겠다'는 발언에 대한 견해를 묻자 황 CEO는 "성사되기 매우 어렵다"고 답한 것이다. 미국·유럽 팹 증설은 추가 생산과 공급망 회복력 차원이며, 대만 생태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발언이다.
기자가 실리콘밸리의 심장부인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 비공식 방문했을 때도 직원 배지를 목에 건 채 캠퍼스를 거니는 대만계 내지 범 중국계 인물들이 많이 보였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엔비디아 글로벌 인력 규모는 약 3만6000명이며, 전년 통계인 2만9600명 중 55.9%인 1만6550명은 아시아·인도계로 추정된다. 인종이나 출신으로 통계를 내지 않아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적지 않은 수인 것은 분명하다. 대만 반도체는 단지 공급망이 아닌, 엔비디아 내부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엔비디아는 대만 타이베이에 미국 산타클라라 본사와 비슷한 규모의 해외 본사를 지을 계획이다. 올해 6~7월 착공 예정으로, 컴퓨텍스(Computex) 기간 황 CEO 방문에 맞춰 기공식을 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본사 인력이 3000명 수준인데, 대만에는 3배 이상인 10000명 고용 규모를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현장에서 본 엔비디아는 사실상 대만 반도체 생태계의 정점에 있는 기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GPU 설계와 CUDA 소프트웨어만 제공할 뿐 GPU 90% 이상은 TSMC가 생산한다. 대만 ASE 등 후공정 업체(OSAT)들은 패키징을 전담하고, 폭스콘(Foxconn)과 콴타 클라우드 테크놀로지(Quanta Cloud Technology, QCT) 등은 DCX 서버 등 최종 완제품을 담당한다.
이번에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TSMC 독점이란 틈새를 비집고 엔비디아의 그록(Groq) 3 LPU 생산을 맡게 된 것은 고무적이다. 견고한 대만 카르텔을 뚫기 위해선 성능이 압도적이거나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해낸 것이다.
대만에는 파트너를 넘어 형제같은 관계라는 뜻의 '형제방(兄弟邦)'이란 말이 있다. 엔비디아와 대만은 '깐부' 치맥을 먹지 않아도 형제 그 자체다. 이러한 글로벌 반도체 질서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가 여기까지 온 것이다.
AI 산업의 판도는 아직 열려 있다. GTC 현장에서 드러난 대만의 '보이지 않는 손'은 거대했지만 한국도 기술 변곡점을 캐치해 생태계를 선점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수도 있다. 앞으로 한국 반도체가 어떤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주목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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