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열린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단순한 인물 검증의 장을 넘어섰다. 이날의 화두는 당면한 추가경정예산(추경)의 필요성을 넘어 불평등 해소, 인구 구조 변화 대응, AI 시대의 노동 개편 등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체질을 바꾸는 ‘국가 전략’으로 확장됐다. 그동안 개별적으로 다뤄지던 현안들이 하나의 유기적인 설계도 위에서 논의됐다는 점에서, 재정정책의 시야가 단기 처방에서 장기적 구조 개혁으로 대전환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날 청문회에서 김영환 위원과 임이자 위원장은 불평등과 인구 구조, 노동시장 변화가 따로 움직이는 문제가 아니라고 짚었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가 커질수록 혼인과 출산, 청년의 노동시장 진입, 노후 빈곤 문제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진단은 무거웠지만, 청문회의 의미는 오히려 여기서 시작됐다. 국가 재정이 단순히 경기 하강을 막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 삶의 균열을 줄이고 성장의 사다리를 복원하는 데 더 적극적으로 쓰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홍근 기획처 장관 후보자도 이 지점을 수용했다. 그는 "한국 경제가 대기업과 수도권, 특정 산업에 편중된 구조를 안고 있고, 노동시장 역시 이중구조가 고착된 상태"라며 "재정의 역할을 단기 부양이 아니라 20년, 30년을 내다보는 전략 투자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성장과 분배를 따로 놓고 보는 시대는 지났고, 양극화를 줄이는 일이 곧 성장 기반을 다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청문회 전반을 관통했다.
특히 눈에 띈 대목은 청년과 미래세대를 바라보는 방식이었다. 김태년 위원은 출생 시점부터 기본 자산을 형성해 주는 방안을 제안했다. 국민연금과 연계해 자산을 장기 운용하고, 성년이 됐을 때 교육·창업·주거·노후 준비에 쓸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단순한 현금 지원이 아니라 생애주기 전체를 고려한 자산 형성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자산 격차가 세습되기 쉬운 구조에서, 국가가 최소한의 출발선을 보완해 주자는 취지다.
박홍근 후보자도 이런 방향성에 공감을 표했다. 청년 정책이 소비 지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산 형성과 미래 준비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셈이다. AI 시대 노동시장에 대한 언급도 긍정적으로 읽힌다. 청문회에서는 로봇과 AI 확산으로 노동의 형태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거론됐다.
박 후보자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와 함께 유연성 문제도 시대 변화 속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는 앞으로 사라질 일자리와 새로 생길 일자리 사이의 간극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산업정책, 교육정책, 노동정책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다.
박성훈 위원과의 질의에서는 추경과 재정 건전성을 둘러싼 공방도 있었다. 그러나 이 역시 정책 방향을 좁히는 과정으로 분석된다. 재정 확대의 필요성과 시장 부담 사이에서 어디까지가 적정선인지, 국채와 금리, 물가와 성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지가 공개적으로 논의됐기 때문이다. 박 후보자는 "이번 추경을 긴급 수요에 대한 대응이라고 설명하면서도, 적재적소에 재정을 투입하고 균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청문회의 가장 큰 수확은 한국 경제의 문제를 더 이상 개별 현안으로 보지 않았다는 데 있다. 불평등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고, 저출생은 인구의 문제만도 아니다. 청년 자산은 금융정책에만 갇히지 않고, AI는 기술 산업만의 이슈로 끝나지 않는다. 이를 국가가 하나의 프레임 안에서 다루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국가 전략 컨트롤타워로서 '기획'예산처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도 바로 여기서 커졌다.
청문회장은 때로 날카로웠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단기 경기 대응을 넘어 구조를 바꾸는 재정, 현금 지원을 넘어 출발선을 보완하는 자산 정책, 과거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 노동으로 옮겨가는 전환 전략이 그것이다. 한국 경제가 지금 필요한 것은 비관이 아니라 설계다. 이날 청문회는 그 설계의 첫 문장을 꺼내 든 자리였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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