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평가부터 사후관리까지”···모두 뚫린 조종사 관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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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평가부터 사후관리까지”···모두 뚫린 조종사 관리 체계

이뉴스투데이 2026-03-23 15:15: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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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항공당국과 항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가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Flight Safety Foundation]
현직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항공당국과 항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가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 Flight Safety Foundation]

[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지난 17일 부산에서 전직 항공사 부기장이 과거 함께 근무했던 기장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비행 자격과 평가 과정에서의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정신적 요인 가능성까지 거론되면서 현장에서 사전에 감지됐을 수 있는 ‘위험 신호’를 왜 걸러내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치료하면 못 난다?…병력 숨기는 현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직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항공당국과 항공사의 정신건강 관리 체계가 문제를 드러내기보다 숨기게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현직 기장은 “정신적인 문제는 애초에 선별하기도 어렵지만, 더 큰 문제는 이후 관리 방식”이라며 “정신과 치료 이력이 문제가 되는 순간부터는 병력을 숨기게 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우울증 상담을 이유로 비행에서 배제되는 사례가 생기면, 조종사들은 치료를 기피하고 문제를 감추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는 항공 안전 측면에서 오히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치료를 받으면 자격이 제한되고, 숨기면 상태가 악화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은 개인 문제를 넘어 구조적인 문제”라며 “관리 방식이 잘못되면 위험을 더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조종사가 사전에 식별되는 경우도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 한 기장은 “현장에서 근무하다 보면 우려스러운 조종사가 어느 정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적절히 관리되지 못하는 사례가 반복된다는 것이 현장의 지적이다.

선발·평가·사후관리…단계별로 모두 흔들린다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조종사 관리 체계가 선발, 평가, 사후관리 전 단계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전직 조종사에 따르면 선발 단계에서 진행하는 심리검사는 비용과 방식에 따라 편차가 있어 초기 단계에서 위험 인력이 충분히 걸러지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선발 단계에서 우려가 있는 조종사를 걸러낼 수 있다는 전제가 현실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평가 단계 역시 이상 징후를 점검하는 기능은 있지만, 실제로는 문제가 드러난 이후에 대응하는 절차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특히 사후관리의 취약성이 반복적으로 지적된다. 한 현직 기장은 “입사 이후에도 체계적인 정신건강 관리가 미흡해 문제가 누적된 뒤에야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며 “빡빡한 비행 일정과 수면 부족, 각종 평가 등이 겹치면서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쌓이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력 부족과 운영 부담으로 선발 기준이 완화되는 경우가 있다”면서 “결국 선발과 관리가 동시에 느슨해지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현장에서 위험 신호가 보였는데도 걸러지지 않았다면,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라는 것이다.

해외는 ‘배제’ 아닌 ‘관리’…구조 자체가 다르다

해외 주요 국가들은 조종사 정신건강을 배제 대상이 아닌 관리 대상으로 보고 있다. 유럽항공안전청(EASA)과 미 연방항공청(FAA)은 조종사의 정신건강과 피로를 포함한 통합 관리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가 ‘피어 서포트 프로그램(PSP)’이다. 이는 조종사가 동료 조종사와의 상담을 통해 정신건강이나 스트레스 문제를 비공개로 공유하고, 필요 시 전문가 상담으로 연계하는 지원 체계다. 유럽에서는 상업용 조종사에게 이러한 지원 프로그램 접근을 의무화하는 등 예방 중심 관리 체계로 자리 잡고 있다.

이 제도의 계기는 2015년 독일 저먼윙스 추락사고 이후 확대됐다. 당시 우울증을 앓았던 부기장이 정신질환을 숨긴 채 비행에 나서 고의로 추락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후 ‘병력을 숨기게 만드는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정책이 전환됐다.

이와 함께 ‘피로관리시스템(FRMS)’도 조종사의 근무, 수면, 스트레스를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제도로 자리 잡고 있다. 한 현직 조종사는 “유럽과 미국은 병력이 드러나도 바로 배제하지 않고 관리 체계 안에서 다룬다”며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는 이러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0일 감사원은 ‘항공안전 취약분야 관리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하고, 항공신체검사 시 정신질환 등을 신고하지 않은 채 운항하는데도 국토교통부가 확인 절차를 마련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항공신체검사 매뉴얼’에 따르면 조종사·관제사는 우울증, 행동장애 등 정신질환에 대한 과거력이 있는 경우 항공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고, 항공신체 검사에서 정신질환에 대한 정보를 항공전문의사에 알리지 않으면 자격증명을 취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토부는 조종사와 관제사의 동의를 전제로 정신질환 유무를 전문의가 직접 확인하는 체계를 구축하고, 허위 신고자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등 관련 법·제도 개선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정신건강 관리 강화가 자칫 신고 기피나 은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설계 과정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도 “국내 조종사 정신건강 관리 체계의 구조적 한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면서 “징벌적 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벗어나 글로벌 표준에 부합하는 치료와 복귀 중심의 관리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종사 정신 건강…구조적 문제

전문가들은 조종사 정신건강을 개인적인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려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조종사가 수백 명의 승객을 책임지는 직군인 만큼 정신건강 문제는 곧 안전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선발 단계 정밀 검사, 치료 이력 보호, 사후 정신건강 관리 체계, 항공사와 정부 역할 재정립 등이 주요 과제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들도 조종사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에게 맡겨두면 해결이 어려운 만큼 항공사와 정부가 함께 관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분위기다. 이러한 지적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조종사 관리 체계가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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