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연 정기 주주총회는 통상적인 의안 처리 자리를 넘어, 회사의 방향성을 시장에 명확히 제시하는 '전략 발표장'에 가까웠다. CEO와 각 사업본부장이 직접 나서 사업 구상을 설명한 형식부터 기존 주총과는 결이 달랐다. 이는 단순한 소통 강화 차원을 넘어, 경영 전략을 주주와 시장에 투명하게 공유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이번 주총에서 가장 주목되는 지점은 류재철 CEO 체제의 첫 공식 청사진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인사를 통해 CEO에 오른 류 사장은 이번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동시에 LG전자가 마주한 환경을 'AI 확산과 공급망 재편이 동시에 진행되는 전환기'로 규정하고, 이를 단순한 위기가 아닌 기회로 해석했다. 이 진단은 향후 전략의 출발점이다.
류 CEO가 제시한 방향은 명확하다. 기존 사업을 유지하는 수준이 아니라, 수익성과 성장성을 기준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시 짜겠다는 것이다. 주력사업에서는 제품 경쟁력과 원가 경쟁력을 동시에 끌어올려 프리미엄 중심 구조를 강화하고, 동시에 B2B·플랫폼·D2X와 같은 고수익 사업 비중을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2030년까지 이들 사업의 매출과 이익을 각각 약 1.7배, 2.4배 수준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는 단순한 방향 제시가 아니라 구체적인 성장 계획에 가깝다.
이 전략의 핵심은 '무엇을 더 팔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를 바꾸는 데 있다. 과거 가전 중심의 단발성 판매 구조에서 벗어나, 플랫폼·서비스·구독 등 반복 수익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webOS 기반 콘텐츠·광고 사업 확대, D2X를 통한 직접 판매 및 구독 모델 강화가 대표적 사례다. 이는 LG전자가 하드웨어 기업을 넘어 서비스와 데이터 기반 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래 사업 전략 역시 기존 역량과의 연결성이 뚜렷하다. LG전자는 로봇, AIDC(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스마트팩토리, AI홈을 4대 축으로 제시했다. 이들 사업은 각각 별개의 신사업이 아니라, LG전자가 이미 확보한 기술과 인프라를 기반으로 확장되는 구조다. 가전 모터 기술은 로봇 액추에이터로, 공조 기술은 데이터센터 냉각으로, 제조 역량은 스마트팩토리로 이어진다. 이는 신사업의 실행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특히 로봇 사업에 대한 의지는 분명하다. LG전자는 올해를 '로봇 사업 본격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를 직접 설계·생산해 글로벌 공급망에 진입하겠다는 전략은, 완제품 경쟁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미다. 이는 향후 로봇 산업 성장 과정에서 안정적인 수익 기반을 확보하려는 접근으로 해석된다.
AI 확산에 대응하는 전략도 눈에 띈다.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에서는 기존 공랭 방식뿐 아니라 액체냉각까지 라인업을 확장해 글로벌 수요 증가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스마트팩토리는 이미 전담 조직 출범 이후 단기간에 수주를 확보하며 사업성을 입증하고 있고, AI홈은 가전과 사용자 데이터를 결합해 '생활 공간 중심 AI'라는 차별화된 영역을 겨냥하고 있다. 이는 빅테크와의 정면 경쟁이 아닌, LG전자가 강점을 가진 영역에서 AI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이와 함께 LG전자는 내부 운영 방식까지 바꾸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AX(인공지능 전환)를 통해 향후 2~3년 내 생산성을 30% 개선하겠다는 목표는 단순한 기술 도입이 아니라 업무 프로세스 전반의 재설계를 의미한다. 이미 개발 효율 개선과 비용 절감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도 확보된 상태다.
주주환원 정책 역시 강화됐다. 이번 주총에서는 보통주 1,350원, 우선주 1,400원의 배당이 확정되며 전년 대비 약 35% 수준 확대됐다. 자사주 일부 소각도 함께 의결됐다. 이는 성장 투자와 주주가치 제고를 병행하겠다는 메시지다. 동시에 정관 변경을 통해 집중투표제 관련 조항을 정비하고 감사위원 선임 구조를 개선한 점은,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제도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번 주총의 의미는 분명하다. LG전자는 더 이상 '가전 중심 기업'이라는 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점을 공식화했다. 기존 사업에서 확보한 경쟁력을 기반으로 B2B, 플랫폼, 로봇, AI 인프라로 확장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 다각화가 아니라, 수익 구조와 기업 정체성 자체를 바꾸는 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주총은 의안 통과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LG전자가 어떤 기업으로 변하려 하는지를 시장에 명확히 보여준 출발점이라는 점에서다.
[폴리뉴스 정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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