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이 드문 산등성이에 오르면 주변 소음이 잦아들고 고요가 감돈다. 찬 바람이 성벽의 거친 돌 사이를 스쳐 지나갈 때면 이곳에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느껴진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성곽길은 전란을 견뎌낸 선조들의 의지와 삶의 자취를 품고 있다. 도심을 벗어나 자연과 역사가 어우러진 이 길을 걷다 보면 마음도 한층 차분해진다.
가산산성 진남문 / 한국관광공사 (촬영 : 박성근)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차례의 큰 전란을 겪은 뒤, 외세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축조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포곡식 석축산성이다. 인조 18년(1640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의 주도로 처음 축성을 시작했다. 이후 효종 2년(1651년)에 성을 보수 및 확장했고, 숙종 27년(1701년)에는 외성을, 영조 17년(1741년)에는 내성 중앙에 중성벽을 추가로 쌓았다. 이로써 내성·중성·외성을 모두 갖춘 국내 보기 드문 독특한 삼중 구조의 성곽이 완성됐다.
가산산성 진남문 전경 / 경상북도 칠곡군-공공누리
산성의 규모는 둘레 11.1km, 면적 2.2㎢에 이를 만큼 장대하다. 험준한 능선을 따라 이어진 성벽을 걷다 보면 동문과 남문 같은 성문은 물론, 암문과 수문, 포루 등 당시의 군사시설 100여 개가 남아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산산성은 단순한 방어 시설에 그치지 않았다. 성안에는 칠곡도호부의 읍치가 자리했고, 관아와 군영, 창고, 마을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1960년 집중 폭우로 일부 시설이 유실되기도 했으나, 지금도 조선 후기의 정교한 축성 기법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국가유산으로 평가된다.
성곽길의 백미로 꼽히는 곳은 서북쪽에 자리한 가산바위다. 가암 또는 개산암으로도 불리는 이 거대한 바위는 사면이 가파르게 솟아 있고, 정상부에는 수백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탄한 공간이 펼쳐져 있다. 바위 위에 서면 대구광역시 일대가 한눈에 들어와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다. 정상에 깊이 파인 구멍에는 신라 시대 도선국사가 지기(地氣)를 누르기 위해 철로 만든 소와 말을 묻었다는 전설도 전해 내려와, 이곳에 신비로운 이야깃거리를 더한다.
가산바위 / ⓒ한국관광 콘텐츠랩
주변 자연경관도 눈길을 끈다. 명승으로 지정된 가산바위를 비롯해 삼층암, 복수초 군락지, 두 나무가 하나로 이어진 혼인목 등 다양한 볼거리가 산성과 어우러져 있다. 산성 아래 조성된 가산산성마을은 해발 300m에 자리한 청정 지역으로, 주민들의 소박한 정서와 무공해 농산물을 만날 수 있는 쉼터다. 한티순교성지와 송림사 등 주변 명소와도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가산산성은 상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팔공산 가산산성지구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동문과 가산봉을 지나 가산바위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는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여정으로 꼽힌다. 성벽을 따라 걷는 길에서는 산성의 구조와 풍경을 차례로 만날 수 있고,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는 산의 표정도 즐거움을 더한다.
가산산성 / ⓒ한국관광 콘텐츠랩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래된 성벽 위를 걸어보는 일은 생각보다 깊은 여운을 남긴다. 가산산성의 성곽 끝에서 마주하는 탁 트인 풍경은 복잡한 마음을 덜어내고,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자연 속에서 역사와 마주하는 시간, 그것이 가산산성 여행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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