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웅익 더봄] 면목극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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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더봄] 면목극장의 추억

여성경제신문 2026-03-23 10:00:00 신고

90세가 된 명동예술극장 /그림=손웅익
90세가 된 명동예술극장 /그림=손웅익

요즈음 저녁 시간에 집에서 영화를 한 편씩 보는 습관이 생겼다. 구미에 맞는 영화를 골라가면서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보다가 재미없으면 다른 영화로 돌리고, 화장실 가느라 잠시 멈췄다가 다시 볼 수도 있으니 편리하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에 개봉된 영화를 볼 수 없어 좀 아쉬워하던 차에 천만 관객을 눈앞에 둔 영화가 있다고 해서 동네 복합 상영관을 찾게 되었다.

매진을 걱정했는데 자리 여유가 많아서 좋은 자리를 골랐다. 앞 사람 머리가 방해받지 않을 정도의 객석 경사도가 좋았고, 의자도 넓고 앞뒤 여유도 많아 아주 편안하게 영화를 즐겼다. 그러고 보니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영화광인 나도 이렇게 오랜만에 찾았으니 이제 막대한 비용이 투자된 거대 영화관은 경쟁력을 잃어버린 것 같다. 영화보다 더 재미있는 콘텐츠도 많아졌으니, 움직임도 자유롭지 못한 어두운 공간에 두 시간을 꼼짝 못 하고 앉아 있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면 인스턴트에 익숙해진 고객들이 찾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처음 영화관을 들어갔을 때의 그 놀라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좌석이 부족하면 서서 영화를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아버지 손을 잡고 어두운 공간으로 들어갔는데 아주 큰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어른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아버지는 어른들 틈에서 나를 번쩍 들어 올리셨다. 그랬더니 눈앞에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 얼굴이 나타났다. 나는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필름 영사기 /그림=손웅익
필름 영사기 /그림=손웅익

영화가 유일한 오락이었던 초등학교 시절도 생각난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면목동으로 이사했다. 1969년이었다. 그해 겨울에 면목극장이 개관했다. 지금도 면목동은 개발이 더딘 동네인데 그 당시는 완전히 촌이었다. 그런 동네에 극장이 들어왔으니 관람객이 인산인해를 이루던 기억이 난다.

영화를 볼 돈이 없던 우리 악동들은 영화를 쌔벼(몰래)보기로 했다. 덩치가 아주 작았던 우리는 영화가 끝나고 관람객들이 우르르 몰려나올 때 그 사이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가는 수법을 썼다. 몇 번 성공했는데 한 명이 잡히는 바람에 그 수법을 포기했다.

극장 주변으로 공터가 있었고 건축 자재가 쌓여 있었다. 우리는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자재를 주어 와서 높은 데 있는 극장 창문으로 들어갔다. 물론 영화를 보고 나올 때는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나왔다. 그 수법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극장 주위를 돌면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옆 건물 옥상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냈다. 그때는 옥상에서 영화 간판을 그렸다.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기다리다가 간판 그리는 아저씨가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극장 옥상으로 넘어가서 계단을 타고 극장으로 들어가는 수법이었다. 그 수법도 어느 날 간판 그리는 아저씨에게 들키는 바람에 포기해야 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극장 주위를 돌면서 연구하던 중 지하로 들어가는 좁고 어두컴컴한 공간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 좁은 공간을 살살 기어들어 갔다. 한참 들어갔더니 놀랍게도 영화관 내부 스크린 뒤쪽으로 연결되었다. 관람객들 눈치 못 채게 옆 통로로 살살 기어 들어가서 뒤쪽에서 영화를 봤다. 그 좁고 어두운 공간은 극장 환기구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그렇게 몇 번 성공했는데, 그날은 좌석도 여유가 있었고 애들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스크린에는 우리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좀 이상한 장면들이 나타났다. 성인영화였다. 상황이 난감해졌다. 영화를 보고 나서 정문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임을 깨달은 우리는 영화가 끝나기 전에 스크린 뒤쪽 그 좁고 어두운 통로로 극장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영화간판을 봤더니 제목이 <벽 속의 여자> 였다. 그날 충격이 커서 아직도 영화제목을 외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인터넷으로 그 당시 영화 포스터를 찾아보니 남진·문희·남궁원 주연이고 ‘벽 속의 여자/ 여자의 본능!, 성이 미로!’라고 되어 있다.

면목극장은 1996년에 문을 닫았다고 한다. 스크린에는 비가 내리고 가끔 필름이 끊어지기도 했지만 2편을 동시 상영하던 면목극장 덕분에 어린 시절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었으니 극장 주인에게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하다.

콘텐츠(Contents)=인터넷이나 TV를 통해 제공되는 정보나 그 내용을 말한다.
인산인해(人山人海)=사람이 산을 이루고 바다를 이룬다는 뜻으로 사람이 매우 많이 모인 상태를 비유하는 말이다.

여성경제신문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wison777@naver.com

손웅익 건축사·수필가 

한양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건축사사무소를 운영해 온 환경·생태 전시 설계 전문가로 코엑스아쿠아리움 부사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가의 여행스케치> , <건축가의 아침산책> , <작은집이야기> 등이 있으며, 일상에서 접하는 건축물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낸다. 점차 잊혀가는 마을과 도시의 풍경을 스케치와 글로 남기는 작업을 지속하며 도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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