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전쟁이 드러낸 미국의 민낯…"수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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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이 드러낸 미국의 민낯…"수렁에 빠졌다"

이데일리 2026-03-23 09:38:24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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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작한 이란 전쟁이 4주째로 접어든 가운데 미국이 또다시 중동의 ‘수렁(quagmire)’에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2일(현지시간) 미국의 전략적 모순과 해양 공급망 취약성을 집중 조명하며 이번 전쟁이 트럼프가 그토록 비판했던 ‘영원한 전쟁(forever war)’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플로리다로 향하기 위해 백악관을 떠나면서 언론에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이란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이긴다”

FT에 따르면 미군은 3주간 이란 내 수천 개 표적을 폭격했지만, 이란 정권은 상당 부분 건재한 상태다. 미 국가정보국장 툴시 개버드는 의회에서 “이란 정권이 전쟁 종료 후 재무장·재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미군 병사 13명이 전사한 가운데 미국은 추가 병력 4500명을 해당 지역에 파견 중이며 국방부는 전비 명목으로 의회에 2000억 달러(약 300조원)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교육부·보건부·주택부 예산을 합친 금액에 맞먹는 규모다.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미국 대사를 지낸 라이언 크로커는 FT에 “이란은 살아남는 것만으로 이긴다. 그리고 그들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분명히 보여줬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전직 국가안보보좌관 존 볼턴도 “일을 끝내지 못하면 심하게 부상당했지만 곧바로 예전 행동으로 돌아가는 정권을 마주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엇갈리는 전황 발표…목표도 불분명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해군이 바다 밑에 가라앉았다”, “탄도미사일 발사가 90% 줄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이란은 미국의 F-35 전투기를 격추했다고 주장하는 등 미 방어망을 뚫었다고 맞서고 있다. 전황에 대한 백악관의 발표와 이란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전쟁 목표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바이든·오바마 행정부에서 중동 자문을 지낸 일란 골든버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스스로 불가능한 조건을 설정했다”고 지적했다. 핵 개발 영구 차단, 테러 지원 종식, 에너지 흐름 재개 등 목표가 너무 광범위하고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는 “이란이 해야 할 일은 충분한 혼란을 야기하는 것뿐”이라며 “이것이 바로 수렁의 레시피”라고 말했다.

전쟁의 출구도 보이지 않는다. 전직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인 민주당 상원의원 엘리사 슬로트킨은 FT에 “CIA 분석관이 아니어도 우리가 이기지 못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쟁의 불똥, 에너지 시장으로…유가 폭등

전쟁의 대가는 전장에서만 치러지는 게 아니다. 에너지 시장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세계 원유 수출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은 현재 사실상 봉쇄 상태다. 유가는 세계 일부 지역에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에너지 트레이더들은 ‘아마겟돈’(대재앙)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 내 연료 가격도 33% 급등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공화당 의원들의 정치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FT 칼럼니스트 “30년 동안 이 영화를 봤는데 왜 아직도 준비가 안 됐나”

FT의 라나 포루하르 글로벌 비즈니스 칼럼니스트는 이번 전쟁이 미국의 해양 공급망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고도 짚었다. 포루하르는 타임지 부편집장 출신으로, CNN 글로벌 경제 분석가를 겸임하고 있으며 공급망·금융·기술 분야의 저서를 다수 펴낸 미국 경제·산업 분야의 대표적인 논객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두바이 항구 공격, 후티 반군의 홍해 추가 공세 우려가 겹치면서 중동 지역에서 해운이 사실상 멈춰 선 상황이다. 포루하르는 1999년 대만 지진, 2011년 일본 쓰나미,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수십 년간 반복된 공급망 충격을 거치고도 미국과 국제사회 모두 여전히 대비가 안 됐다는 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운송 비용 급등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항구 간 화물 운송에 자국 선박만 허용하는 100년 된 법인 ‘존스법(Jones Act)’을 한시 면제한 것을 주목했다. 포루하르는 이를 두고 미국 조선 산업의 구조적 붕괴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분석했다.

그는 “존스법 적용을 받지 않는 해운 영역은 이미 중국 선박에 의해 장악됐다”고 지적했다. 또 세계 해운 용량의 90%를 장악한 MSC, 머스크, 코스코, 하팍로이드 등 소수 대형 해운사들이 초대형 선박 중심의 ‘효율성’을 추구해온 결과 하나의 드론 공격에도 유조선이 격침될 수 있는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졌다고 경고했다.

포루하르는 “선박이 새로운 반도체”라는 전제 아래 미국이 초대형 유조선이나 군함 대신 기동성 있는 이중 목적 선박 건조 체계를 파트너 국가들과 함께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강대국 간 갈등의 시대, 유연성이 곧 안전”이라며 호르무즈 봉쇄로 인해 북극 항로 등 새로운 해상 경로에 대한 관심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언한 가운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유조선 ‘뤄자산(Luojiashan)’호가 오만 무스카트 해역에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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