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웅 칼럼]중동전쟁과 '착시회복'…한국경제, 더블딥 문턱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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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칼럼]중동전쟁과 '착시회복'…한국경제, 더블딥 문턱에 서다

비즈니스플러스 2026-03-23 08:40: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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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웅 주필
이용웅 주필

한국 경제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겉으로는 반도체 중심의 수출이 버티고 있지만, 내수와 금융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른바 '착시회복'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표상으로는 회복처럼 보이지만, 실제 체감경기는 다시 꺾이는 이 현상은 우리 경제를 '더블딥'(double-dip, 경기 재침체)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경기가 회복하는 듯 하더니 실제로는 다시 침체에 빠지는 현상, 마치 건강해 보이는 얼굴 뒤에 병든 몸이 숨어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을 우리는 '착시회복'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란 전쟁 등 단순한 외부 충격이 아니다. 고유가·고환율·고금리라는 이른바 '3고(高)'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경기의 체력을 서서히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겉으로는 반도체가 경제를 끌어올리는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아래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연간 폐업자 100만명 시대를 맞이한 자영업계와, 물가 상승분을 따라잡지 못해 실질 임금 증가율이 0%대에 갇힌 가계가 공존한다. 건설업뿐만 아니라 민생의 모세혈관인 소매업(폐업률 16.7%)과 음식업(15.8%)까지 궤멸적 수준의 위기에 노출되며 '내수 고사'는 이미 임계점을 넘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번 위기의 출발점은 물론 매일 위아래로 출렁거리는 유가이다. 배럴당 100달러 선에서 공방을 거듭하는 국제유가는 기업의 생산비를 끌어올리고, 이는 곧 투자 위축으로 이어진다. 석유시장 전문가들은 설령 갑자기 전쟁이 중단된다고 해도 이미 위기감을 느낀 소비국들이 석유확보전쟁에 나서 유가 불안은 지속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물가를 자극해 소비자 물가를 밀어 올린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물가를 잡기 위한 금리인상 압력이 다시 커지면서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결국 비용 상승이 소비 위축을 유발한 데 이어 투자 감소라는 전형적인 경기 하강 경로가 작동하게 된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건설과 금융의 연결고리다. 건설경기는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인 20개월 연속 건설기성 감소라는 기록적인 침체를 겪고 있다. 

이 문제가 건설업에만 그친다면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PF(프로젝트파이낸싱)는 금융권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부실이 현실화될 경우 은행 건전성까지 흔들 수 있는 '전이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전쟁추경'을 서둘러 편성하면서도 물가 통제에 주력을 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고위 협의회를 열고 추가경정예산안을 25조원 규모로 편성하기로 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의 선전으로 세수는 넉넉해 국채 발행 없이 추경이 편성될 전망이다. 

이번 추경은 고유가 대응을 위한 물류비·유류비 부담을 완화하고, 경영 위기에 직면한 수출기업을 지원하는 용도에 주력하고 특히 취약계층에 지역화폐를 지급해 소상공인과 지역 상권 매출로 이어지도록 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국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 / 사진=연합뉴스
한국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 / 사진=연합뉴스

◇25조 '전쟁추경'에 매파적 성향의 신현송 한은 총재 지명자의 금리정책도 변수 

경기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금리인하 분위기는 전쟁여파로 싹 사라졌다. 대신 미국, 유럽, 영국, 일본의 중앙은행이 일제히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통화긴축 신호가 불거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 역시 하반기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블룸버그 권효성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9일 금융투자협회 '호르무즈 위기 긴급 세미나'에서 유가 108달러 이상, 원/달러 환율 1500원대 진입을 전제로 "한은이 인플레이션 기대를 억제하기 위해 이르면 3분기부터 금리인상을 단행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국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지명된 신현송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이 그동안 인플레이션 대응에 선제적 금리인상을 지지해왔던 점도 변수이다. 이에 따라 최근 고유가 상황과 맞물려 신 국장이 한은 총재로 올 경우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인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고금리 여파로 은행건전성에 경고등 켜지고 건설경기 회복도 미지수 

시장 금리는 이미 상승세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지난 20일 연 3.410%로 전 거래일보다 8.1bp(1bp=0.01%포인트) 올랐다. 국제유가 급등과 환율 상승으로 물가가 오르는 상황에서 금리인상까지 겹치면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 동반 위축이 불가피하다. 뿐만 아니라 무리하게 대출받아 주식, 부동산 등에 투자한 '영끌·빚투' 족이나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침체국면에서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는 건설시장이 더 큰 위기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내수 회복에 직격탄을 가할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건설업은 GDP(국내총생산)의 약 1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파트이다.   

최근 체코 원전 수주 및 미국의 SMR(소형모듈원전) 파트너십 강화 등 현대건설과 대우건설 등이 글로벌 에너지 인프라 시장에서 거둔 성과가  반영되어 주가가 급등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내 건설시장이 나아진다는 신호는 아니다. 

작년 초의 위기설이 '급격한 자금경색'에 의한 파산 공포였다면, 지금은 만기 연장으로 간신히 버텨온 사업장들이 '한계상황'에 도달한 상태이다. 특히 지방 중소 건설사들은 '준공 후 미분양' 누적으로 인해 도산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최근 정부의 거듭되는 부동산시장 압박이 건설업 전반에 비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고 있음도 부인할 수는 없다. 

건설투자 부진이 지속될 경우 연간 경제성장률이 0.1~0.2%포인트 하락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가령 건설업 취업자는 전년 대비 약 3% 이상 감소했는데 건설업은 일용직과 숙련공 등 서민층 일자리 비중이 높아, 건설 경기 부진은 곧바로 가계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추이(%)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3년 만기 국고채 금리 추이(%) /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더블딥' 경고 속에…재정·통화 정책의 위험한 엇박자 피해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과 별도로 시중 금리가 이미 빠르게 오르면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부채로 버텨온 자영업자와 중소기업, 그리고 부동산 PF 대출 현장에는 다시금 위기 징후가 짙어지고 있다. 5대 은행의 연체율이 두 달 사이 0.1%포인트 급등하며 은행 건전성에도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한은의 기준금리 결정과 별도로 시중 금리가 이미 빠르게 오르면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수년간 많은 대출을 끌어 쓴 자영업자·중소기업 등 취약 차주(대출자)는 물론 PF를 비롯한 건설·부동산 관련 대출에서도 다시 위기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월 말 기준 전체 원화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연체) 평균값(이하 단순평균)은 0.46%인데 작년 12월 말(0.36%)과 비교하면 두 달 사이 0.1%포인트 올랐다. 은행 건전성에 비상등이 켜진 셈이다. 

정부는 작년 두 차례의 추경 편성 등을 바탕으로 소비 중심의 내수 회복 진단을 유지해 왔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다. 전쟁 여파로 수출에도 부정적인 기류가 퍼지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재정경제부도 지난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3월호에서 중동 상황을 언급하며 8개월 만에 경기하방 위험을 꺼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인 '2.0%'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NH금융연구소는 '조기종전' 시나리오에서도 경제 충격은 1개월 이상 이어지며 성장률이 연간 0.1∼0.2%포인트 하락한다고 봤다. 전쟁이 3개월 지속되면 성장률은 0.3%포인트 낮아지고, 1년간 지속될 경우 올해 연간 성장률이 0%대까지 내려갈 것으로 추정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0%로 예측할 때 국제유가는 배럴당 62~64달러일 것이라는 게 전제 조건이었다. 현재와 같은 고유가가 지속되면 성장률 전망을 수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정책의 충돌이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25조원을 시장에 풀 때, 매파적 성향의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가 물가와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를 올리거나 긴축 기조를 유지한다면 재정 투입의 효과는 상쇄되고 시장의 혼란만 가중될 수 있다. 

다만 그가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기계적인 매파는 아니라는 점을 스스로 강조한 점이 눈에 띄기는 한다. 신 후보자는 "만약 충격이 공급 측면에서 발생했고 일시적이라면 금리로 기계적 대응을 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봐야(look through)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수출과 내수의 격차가 벌어지는 '착시형 더블딥'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의 미세한 맞춤형 지원과 한국은행의 선별적 유동성 공급이 정교하게 맞물려야 한다. 전쟁이라는 외부 변수는 통제할 수 없으나, 내부 정책의 엇박자로 위기를 키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전쟁은 외부 변수지만, 위기의 깊이는 내부 구조가 결정한다. 한국 경제가 더블딥을 피할 수 있을지, 이제는 정부와 금융권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이용웅 주필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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