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경영권을 둘러싼 '18개월 전쟁'이 운명의 분수령을 맞았다. 오는 24일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에서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이 이사회 장악과 수성을 놓고 정면충돌한다. 현 경영진의 수성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MBK 측 인사가 대거 이사회에 진입하며 '불안한 동거'에 따른 경영 혼란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24일 오전 9시 제52기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다. 이번 주총의 핵심 쟁점은 단연 이사 선임안이다. 현재 15명으로 구성된 고려아연 이사회는 최 회장 측 우호 인사가 11명으로 절대다수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총에서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 6명(최 회장 측 5명, MBK 측 1명)의 빈자리를 놓고 양측의 계산법이 엇갈린다. 고려아연 측은 5명만 우선 선임하고 1명은 추후 감사위원 몫으로 남기자는 입장인 반면, MBK 측은 6명을 일괄 선임해 이사회 내 지분을 최대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선 이번 주총 이후 이사회 구도가 기존 '11대 4'에서 '9대 5' 혹은 '9대 6'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 측이 과반은 유지하겠지만, MBK 측 이사 비중이 최대 40%까지 높아지면서 경영권 수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로 변모하게 되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그동안 최 회장 측의 든든한 우군으로 분류됐던 국민연금(지분 5.2%)의 기류 변화다. 최근 국민연금 수탁자책임 전문위원회는 최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기권'하기로 결정했다. 나머지 이사 선임안에 대해서도 양측에 의결권을 절반씩 배분하기로 했다.
이는 과거 '홈플러스 사태' 등을 이유로 사모펀드인 MBK에 비판적이었던 국민연금이 사실상 '중립'으로 돌아섰음을 의미한다. 5% 이상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손을 떼면서, 최 회장 측은 우호지분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여기에 5% 지분을 보유한 현대차그룹 역시 경영 불개입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소액주주들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중립 선언은 최 회장 측에 상당한 심리적 압박이자 실질적인 위협"이라며 "현대차 등 전략적 파트너들이 침묵을 지키는 상황에서 최 회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MBK 측이 이번 주총에서 이사회 과반을 압박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고려아연이 미국 정부와 손잡고 비철금속 제련소 건설을 발표하며 반전을 꾀했다.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합작법인인 크루셔블JV에 지분 10.6%를 넘기며 MBK 측의 지분율을 희석시킨 것이다.
이같은 '미국발 백기사' 전략 덕분에 최 회장 측은 당장의 경영권 박탈 위기는 넘겼다는 평가다. 그러나 MBK와 영풍 연합의 합산 지분율이 여전히 41.1%에 달해 최 회장 측(37.9%)을 앞서고 있다는 점은 치명적인 부분이다.
특히 이번 주총에서 양측이 내놓은 정관 변경안은 모두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정관 변경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항으로,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양측의 지분이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도 독자적으로 특별결의를 통과시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곧 정관 변경을 통한 방어 기제 마련이나 공격적 경영 전략 수립이 모두 마비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에선 주총 이후 고려아연이 겪을 '포스트 주총' 진통에 더 주목하고 있다. 이사회 내 MBK 측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요 의사결정마다 충돌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사업 투자나 대규모 자금 조달 등 이사회 승인이 필수적인 사안들이 표류할 경우, 고려아연의 미래 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한국ESG평가원은 보고서를 통해 "양측이 제시한 정관 변경안이 대부분 통과되기 어려워 경영상의 주요 결정이 장기간 표류할 위험이 크다"고 경고했다. 노조 역시 국민연금의 결정을 규탄하며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고 있어 노사 갈등이라는 또 다른 변수까지 가중되는 모양새다.
비철금속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이 경영권 분쟁이라는 늪에 빠져 휘청이는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이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영권 수성'이라는 단기적 성과를 넘어, 분열된 이사회를 어떻게 통합하고 주주 가치를 제고할 것인지에 대한 최 회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4일 주총은 경영권 분쟁의 끝이 아닌, 더 치열하고 복잡한 '2라운드'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이사회 재편 결과에 따라 고려아연의 지배구조는 물론, 국내 대기업과 사모펀드 간의 경영권 분쟁 판도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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