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의 길을 밝혀 주신 이상희 장군님 영전에,
사랑하는 훈육관님, 제자 류제승입니다.
오늘은 하늘이 유난히 청아합니다.
“제승아, 잘하였다. 역시 제승이구나.” 하시며 저의 부족함에도 언제나 감싸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신 스승님의 다정한 음성이 벌써 그립습니다.
48년 전, 육군사관학교 생도대에서 처음 뵌 이상희 소령님은 저희 모두에게 군인의 참된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하급자에게도 예의를 갖출 줄 알아야 한다.”, “꿈을 먹는 소대장이길 바란다.” 그 따뜻한 가르침과 힘찬 축원을 마음 깊이 새기며 기억하는 제자들이 많습니다. 그 시절 청년 사관생도들은 각고의 노력 없이는 훈육관님의 뜻과 기개를 따를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합동참모본부 의장님으로 취임하시던 날, 저녁 어스름이 깔리던 무렵 의장님은 서둘러 과장급 이상 직위자들을 대회의실에 모으셨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의장님의 복무 중점에 관해 장엄한 어조로 명령을 하달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군의 모든 지휘제대는 적과 싸울 준비를 갖췄다. 그러나 합참만은 예외다. 이 순간부터 우리는 싸워서 이기는 전쟁 지휘 체계를 세워 나가자.” 이처럼 의장님은 군인으로서 본연의 임무에 어떻게 헌신해야 하는지 몸과 마음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상희 장관님은 뼈부터 군인이셨고, 뼈까지 군인이셨습니다. 군인 이상희님의 생각과 일의 기준은 늘 국가였습니다. 칠성부대에서 7년 동안 최전선에서 북한군의 끊임없는 책동을 밤낮으로 막아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상희 중령님은 단지 몽당연필 하나만으로도 탁월한 실전 대책을 세워내셨습니다. 스승님의 놀라운 창의적 논리와 고행이 깃든 실천력은 때로 우리에게 식은땀을 흘리게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일을 제대로 배우며 더 높은 차원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음을 기뻐했습니다.
스승님은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의장까지 오른 것은 내게 운명처럼 주어진 군인의 길이었지만, 장관을 맡았던 일은 후회로 남는다.” 그 말씀 속에는 평생 몸에 배어 있던 군인의 가치와 원칙이 정치적 요구와 부당한 압력 앞에서 흔들리며 맞서야 했던 고뇌가 담겨 있습니다. 장관의 자리에서 홀로 감내하신 그 무거운 시간들을 우리는 깊이 헤아릴 수 있습니다.
군인 이상희님은 군사 전문직업주의의 고유한 의식과 가치를 지켜내는 데 앞장서셨으며, 군사와 정치가 국가 안보의 가치에 걸맞게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도록 힘쓰셨습니다. 우리 군의 정치적 중립 원칙을 끝까지 존중하며 실천하셨고, 어떤 경우에도 군사 고유 영역에 대한 정치 권력의 부당한 간섭은 단호히 거부하셨습니다.
군인 이상희님은 격랑의 시대에 몰아치는 거센 도전에 오롯이 맞서면서 우리나라와 군대의 정기를 바로 세우셨습니다. 그 숭고한 사상과 고귀한 업적은 역사의 파도 위에 영원히 우뚝 서 있을 것이며, 저희 제자들은 그 뜻을 마음에 새기고 정성을 다해 이어가겠습니다.
이제 스승님은 의로운 군인으로서 엄격한 가르침과 따뜻한 추억을 남기신 채 저희 곁을 떠나 영원의 여행길에 오르십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이 나라의 안위와 우리 군의 굳건한 모습을 굽어보시며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불멸의 호국 혼으로 계시길, 저희 모두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군문을 떠나신 뒤에도 이곳에서 좋아하셨던 골프 라운딩을, 천국에서는 호국영령들과 함께 예약 걱정 없이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이제 모든 심려와 노고를 내려놓으시고 천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여기 남아 있는 저희는 스승님 영혼의 안식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2026년 3월 12일
제자 군인 류제승 올림.
Copyright ⓒ 아주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본 콘텐츠는 뉴스픽 파트너스에서 공유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