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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이달 초부터 모바일 통신 접속이 어려운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통신 장애는 지난 5일 전후부터 보고되기 시작해 보름을 넘겼다. 모스크바에서 이 정도로 장기간에 걸친 차단 조치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다른 곳에서도 지역에 따라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5년 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전사자가 계속 늘어나는 반면 전황은 교착된 상황에서 통신을 틀어막아 비판 여론을 봉쇄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분석했다. 러시아는 오는 9월에 하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안전 확보를 위한 조치”라며 제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번 통신 제한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불분명하지만, 러시아 정부가 접속을 허용하는 ‘화이트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웹사이트들은 점차 접속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에 리스트에 없는 서비스들을 실제로 차단할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목적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정부는 이미 통신 규제 강화를 위한 포석을 깔아둔 상태다. 지난달 개정된 법률에는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통신사업자에게 서비스 중단을 의무화할 수 있다는 내용이 명문화됐다.
러시아 정부의 주요 타깃은 소셜미디어(SNS)다. 지난달 10일 러시아 통신감독당국은 텔레그램에 대한 접속 제한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복수의 러시아 매체는 4월부터는 완전 차단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메타 산하 대화 앱 왓츠앱도 지난달 “러시아가 완전 차단을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텔레그램은 러시아 출신 파벨 두로프가 2013년에 만든 서비스로, 현재는 중동에 거점을 두고 있다. 암호화 기술로 비밀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며 러시아뿐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기관과 고위 관리들도 정보 발신에 활용한다.
러시아에서는 작년부터 드론(무인기) 공격에 대한 대응을 이유로 각지에서 인터넷 차단이 반복돼 왔다. 텔레그램이 러시아 법을 지키지 않고 있으며 범죄 대책도 불충분하다는 것이 당국의 공식 설명이다. 그러나 ‘안전’을 명분으로 한 차단이 남용될 우려는 여전하다.
진짜 노림수로 여겨지는 것은 정보 통제와 감시 강화다. 정권과 가까운 IT기업 VK는 지난해 대화 기능을 갖춘 국산 앱 ‘맥스’(MAX)를 출시했다. 러시아에서 널리 쓰이던 텔레그램과 왓츠앱이 제한되면서 많은 국민이 맥스로 갈아타기를 강요받고 있다.
이 앱은 통신 규제를 우회할 수 있는 가상사설망(VPN) 사용을 탐지하는 데 활용된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VPN은 차단된 해외 사이트나 반정부 성향 사이트에 접속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현재 러시아에서 VPN 사용 자체는 금지돼 있지 않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VPN이 늘고 있다는 전언이다.
모스크바에서 일하는 26세 여성은 “통신 차단 때문에 일터 사람들을 만나지 못한 적이 있다”며 “5개의 VPN을 동원해 접속을 유지하려고 시도했고, 맥스 사용이 불가피해지면 다른 스마트폰을 따로 마련해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계와의 정보가 끊겨 북한 같은 나라가 되는 건 상상도 하기 싫다”고 지적했다.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42세 여성은 “차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며 반발했다. 맥스 이용에 대해서도 “사실상 강요하는 방식이 불쾌하다”며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통신 차단에 따른 경제적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부르는 택시 앱이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음식점에서는 주문 단말기가 멈춰 섰다. 러시아 일간 코메르산트는 모스크바의 통신 차단으로 기업들이 입은 손실이 5일 동안에만 최대 50억루블(약 900억원)에 달했다는 추정치를 내놨다.
영국 조사기관 ‘탑10VPN닷컴’에 따르면 러시아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긴 3만 7166시간의 인터넷 차단이 발생했다. 이로 인한 경제 손실은 119억달러(약 18조원)로 추산된다. 의도적인 차단이 확인된 28개국의 손실(총 197억달러·약 30조원)에서 60%를 러시아가 차지한 셈이다.
조사를 이끈 사이먼 밀리아노는 “러시아의 통신 차단이 체계적으로 반복돼 왔다”며 “통신 속도를 초당 16킬로바이트 수준으로 억제해 겉보기에는 접속이 가능한 것처럼 만드는 수법이 동원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무인기 대책이라면 특정 지역·일시적인 차단에 그쳐야 하는데, 실제 양상을 보면 더 광범위한 정보 통제가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침공을 둘러싼 비판과 항의를 억눌러 온 블라디미르 푸틴 정권은 이란에서 나타난 차단 효과에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감시단체 넷블록스(NetBlocks)에 따르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있는 이란에서는 20일 이상 접속 수준이 평상시의 1%에 그치고 있다.
밀리아노는 러시아나 이란의 통신 차단 방식을 다른 권위주의 국가들이 모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이런 차단은 투자자 신뢰와 국경을 넘는 비즈니스 활동에까지 타격을 준다”며 “무시할 수 없는 경제적 대가를 수반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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