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3년 반 동안 2천400건 신고했는데…지역·수사관마다 고무줄 처분
"경찰이 재량권 일탈·남용"…경찰 "담당자 현장 판단 존중해야"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1. 서울 강서구 과해동에 있는 편도 4차선 도로. 바뀐 신호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차량 우측 편으로 4차선에서 1차선까지 단번에 차선을 변경해온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SUV)가 끼어들어 온다.
이는 도로교통법상 진로변경 방법을 위반한으로 과태료가 차종에 따라 3만∼4만원 부과될 수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경찰은 SUV 운전자에게 경고만 줬다.
#2.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한 어린이보호구역 앞. 신호 대기 중이던 흰색 트럭이 갑자기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달려 나간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이 없긴 했지만, 신호는 트럭이 교차로로 완전히 들어선 뒤에야 녹색으로 바뀐다.
적색 신호에 비보호 좌회전을 하는 것은 신호 위반으로 차종에 따라 5만∼8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사례 역시 운전자는 경고만 받고 넘어갔다.
교통법규 위반 현장을 목격하고 공익 신고를 해도, 관할 지역이나 담당 경찰관이 누구냐에 따라 과태료 처분 결과가 이른바 '복불복'으로 갈려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자신을 공익신고자라고 소개한 최모(37)씨는 22일 연합뉴스에 2022년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안전신문고를 통해 직접 제보한 교통법규 위반 의심 사례 2천372건의 처리 결과를 공개했다.
최씨의 신고는 모두 차량 블랙박스 등 영상 증거가 있는 건들이다. 이 가운데 401건(16.9%)은 중앙선 침범과 신호·지시 위반 등 가벼이 넘길 수 없는 '12대 중과실'에 해당했다.
최씨가 신고 건수 30건 이상인 지역을 추려 분석한 결과, 관할 경찰서에 따라 과태료 처분율은 최저 28.4%(경기북부 A 경찰서)에서 최고 84.1%(경기남부 B경찰서)까지 극심한 격차를 보였다.
담당 경찰관 개인별로 보면 차이는 더 벌어졌다. 서울 C 경찰서의 경우, 한 수사관은 229건 중 15.3%에 불과한 35건에만 과태료를 부과했다. 반면 다른 담당자는 86건 중 80.1%에 달하는 25건에 대해 과태료 처분을 내렸다.
최씨는 동일한 잣대가 적용되지 않는 점을 들어 담당자들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재량권을 박탈해달라는 목적으로 제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재량권이 납득 가능한 범주 내에서 행사되길 바란다"며 "지금의 경찰행정은 공익 신고를 무력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처분율 차이가 재량권 행사 결과라는 입장이다. '도로 안전 확보'라는 대원칙 아래, 위험성이 크면 과태료를 물리고 필요성이 작으면 계도 처분을 내린다는 것이다.
단순 신고 내용뿐만 아니라 도로 형태, 당시의 교통 상황, 운전자의 고의성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처분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자의 영상에는 당시 도로 상황의 일부분만 담겨 있어 피신고자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담당자 재량과 현장 판단을 존중한다는 게 저희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폭주하는 신고 물량 부담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지난 한 해 경찰이 안전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는 347만 건에 달한다. 이를 전담 처리하는 인력은 전국 663명에 불과하다.
이들이 영상 판독과 민원 응대 등을 병행하며 하루 14건 이상의 신고를 매일 쳐내야 하는 셈이라, 획일적인 단속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honk0216@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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