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 있게 지배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회장 권한의 과도한 집중과 장기 집권 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금융사의 공적 역할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라는 평가와, 관치금융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직썰> 은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형성과 변화를 짚고, 현재 논쟁의 역사적 맥락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직썰> |
[직썰 / 손성은 기자] 2020년대 한국 금융산업은 전문 경영인의 장기 재임 체제를 동력 삼아 역대 최대 실적을 잇달아 갈아치우며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다. 경영 연속성을 확보한 전략 수립은 금융지주의 몸집과 내실을 동시에 키우는 핵심 토대가 됐다.
성과 지상주의의 이면에서는 최고경영자(CEO)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흐름도 거세졌다. 특히 사모펀드 사태를 거치며 내부통제와 책임 기준이 전면 재정립됐고, 이제 금융지주 CEO는 조직 내 모든 리스크를 짊어지는 ‘무한책임 경영’의 시험대에 올랐다.
◇‘장기 연임’이 일군 압도적 실적…4대 지주 순이익 18조원 시대
2010년대부터 뿌리내린 성과 중심의 CEO 장기 연임 구조는 2020년대 들어 더욱 견고해졌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탁월한 경영 성과를 입증한 수장을 재신임하며 전략의 연속성을 극대화했다. 이러한 지배구조의 안정성은 곧장 기록적인 실적 성장으로 증명됐다. 2022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한 주요 지주들은 2023년과 2024년에도 거침없는 성장세를 이어가며 한국 금융의 위상을 높였다.
특히 2025년에는 4대 금융지주인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의 합산 순이익이 약 18조원에 달하며 정점을 찍었다. KB금융은 약 5조8000억원대의 순이익으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으며, 신한금융 역시 약 5조원에 육박하는 실적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은 4조원대 고지에 안착했고, 우리금융은 약 3조1000억원대 초반의 순이익을 거두며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이는 금리 상승기에 따른 이자이익 확대와 비은행 부문의 수익 다변화가 맞물린 결과로, 성과 중심의 장기 재임 체제가 전략의 일관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끌어올린 셈이다.
◇사모펀드 사태의 역설…성과 중심 경영에 던진 경고장
질주하던 성과 중심 경영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 사태를 시작으로, 같은 해 라임자산운용의 1조6000억원 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어 2020년에도 약 5000억원 규모의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태가 터지며 고위험 상품 판매 확대와 부실한 내부통제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시장 안팎에서는 실적에 매몰되어 리스크 관리와 소비자 보호를 뒷전으로 밀어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러한 사건들은 금융지주 경영 방식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자아냈으며, 단순히 이익을 많이 내는 것보다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결국 사모펀드 사태는 CEO가 내부통제 실패의 최종 책임을 지는 ‘무한책임 체계’ 논의를 촉발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책무구조도 도입, ‘책임경영’의 제도적 완성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실질적인 제도 변화로 이어졌다. 금융당국은 2024년 7월 시행된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통해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다. 그 중심에 있는 ‘책무구조도’는 2024년부터 은행과 금융지주 등 대형 금융사를 시작으로 단계적인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단순한 조직도를 넘어 각 업무 영역별로 누가 무엇을 책임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제도다. 이는 내부통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당 업무 책임자뿐만 아니라 CEO까지 책임 범위를 넓혀 판단할 수 있는 강력한 법적 근거가 된다. 이에 따라 금융지주 CEO는 내부통제 전반을 총괄 관리하는 최종 책임자로 위상이 변모했다. 각 금융사 또한 내부통제위원회 운영을 강화하고 준법감시 기능을 확대하는 등 전사적인 관리 체계를 재정비하며 새로운 경영 환경에 대응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2020년대 금융지주 지배구조는 외형 성장을 넘어 내부통제와 책임경영을 핵심 축으로 삼아 재편되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금융지주 체제는 단순한 수익 경쟁의 시대를 지나, CEO가 성과뿐만 아니라 리스크까지 온전히 짊어지는 진정한 의미의 무한책임 경영 단계에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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