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무공의 요람이 낯 뜨겁게 됐다. 전 세계 수억 명이 동경하는 중국 무술 쿵푸의 성지, 소림사(少林寺·샤오린스)의 전 주지가 결국 정식 기소됐다. 가사(袈裟) 대신 죄수복을 입게 된 그의 이름은 스융신(釋永信·60·본명 류잉청). 25년 넘게 천년 고찰 소림사를 이끌며 '불문(佛門)의 CEO'로 불렸던 인물이다.
스융신(釋永信) 전 소림사 주지 / 'BBC News 中文' 유튜브
21일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허난성 신샹시 인민검찰원이 소림사 전 주지 스융신에 대해 업무상 횡령(직무침점죄) 및 자금 유용(횡령죄), 뇌물수수·공여(비국가공무원 수뢰죄) 등의 혐의로 신샹시 중급인민법원에 공소를 제기했다고 전날 밝혔다. 혐의와 관련된 구체적인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스융신을 향한 법의 칼날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7월 27일이다. 소림사 관리처는 그날 저녁 공식 통보를 통해 스융신이 프로젝트 자금과 사원 자산을 횡령·유용한 형사범죄 혐의로 여러 부처의 합동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불교 계율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여러 여성과 장기간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혼외 자녀를 뒀다는 사실도 공식 확인됐다. 이튿날인 7월 28일 중국불교협회는 그의 승적(계첩)을 즉각 박탈했고, 협회 부회장직과 관련 정보도 공식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같은 해 11월 16일에는 신샹시 인민검찰원이 체포를 공식 승인했다.
스융신의 공개 마지막 행보는 기구하다. 그가 공개 석상에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체포되기 보름여 전인 지난해 7월 7일이었다. 소림사 전체 승려 회의에 참석해 발언까지 했지만 당시 사진 속 그의 표정은 어둡고 침울했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뒤 그는 조사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끌려 들어갔다.
스융신의 추락은 그 낙차만큼이나 극적이다. 1965년 안후이성 출신인 그는 열여섯 살이던 1981년 소림사에 입문했다. 당시 소림사는 노승 9명과 얼마 안 되는 밭이 전부인 황폐한 고찰이었다. 대웅보전은 빗물이 새고, 승방은 겨우 비바람을 막는 수준이었다. 스융신은 스승 행정(行正) 장로의 가르침 아래 무술과 불법을 익혔다. 1987년 스승이 입적하자 22살의 그가 소림사 관리위원회 주임을 맡아 사원 재건의 짐을 짊어졌고, 1999년 제30대 주지에 올랐다.
그는 절을 되살리기 위해 남다른 방법을 택했다. 무승단(武僧團)을 조직해 전국 순회공연을 펼쳤고, 1996년에는 중국 사원 최초의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1994년에는 '소림사 상표 햄' 침해 소송을 제기해 중국 종교계 최초의 명예권 소송 승소 기록을 세웠다. 1998년에는 '소림' 상표를 706개 등록하고 관련 실업회사를 설립했다. 경영학 석사(MBA) 학위까지 갖춘 그는 쿵푸 공연과 영화 촬영지 대관, 기념품 판매, 게임 브랜드 라이선스, 부동산 투자까지 사업 영역을 넓혀 나갔다. 그 결과 소림사 관련 산업 매출은 연간 10억 위안을 웃도는 수준까지 불어났다.
세계적으로 소림사 브랜드를 키워낸 공은 분명히 인정받는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상업화는 결국 스스로를 잠식했다. 문화·사업 수익의 상당 부분이 스융신이 지배하는 회사들로 흘러들어 갔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고, 비구니와의 내연관계, 사생아 의혹도 반복적으로 불거졌다. 2015년에는 그의 수제자 석연로(釋延魯)가 '석정의(釋正義)'라는 가명으로 스승의 이중호적, 사원 자산 침탈, 사생아 문제 등을 실명 폭로해 중국 전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시 조사단은 일부 혐의를 '재무 관리 불투명' 수준으로 무마했고, 스융신은 그 파도를 넘겼다. 그로부터 10년 뒤 2015년 폭로 내용은 모두 사실로 공식 확인됐다.
스융신의 몰락은 중국 불교계 전반에 파문을 일으켰다. 중국불교협회는 지난해 말 승려들의 행위를 감독하는 별도 기구 설립을 발표했다. 그가 축출된 이후 취임한 신임 주지 인러(印樂) 법사는 '고가 향 판매' 관행을 폐지하고, 방문객에게 향을 무료로 나눠주는 등 상업화 탈피에 나섰다고 중화권 매체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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