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가 배우의 얼굴에서 단 하나의 진실을 찾으려 할 때, 배우는 그 기대를 기분 좋게 배신하며 비로소 찬란해진다. 익숙한 이미지를 스스로 파괴하고, 한 프레임 안에서 이질적인 자아들을 충돌시키는 과정. 그것은 배우에게 주어진 가장 가혹한 숙제인 동시에, 대중의 심장을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치트키다. 최근 안방극장은 '얼굴을 갈아끼우는' 배우들의 전성시대다. 낯선 영혼에 몸을 내어주거나,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고, 심지어 타인의 뇌를 이식받는 기묘한 설정들조차 이들의 연기를 통해 현실이 된다. 설정의 파격을 필연적인 설득력으로 치환하며, 1인 N역으로 활약한 네 배우의 활약을 모았다.
유연석 | 〈신이랑 법률사무소〉
#빙의_법정물 #유연석의_쇼타임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 스틸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 스틸
배우 유연석이 자신의 연기 내공을 무한대로 확장 중이다. SBS 금토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에서 그는 변호사라는 정적인 직업군에 ‘귀신 빙의’라는 오컬트적 활력을 불어넣으며 극 전체를 휘젓는다. 캐릭터가 법전의 논리에 갇히려 할 때마다, 그는 제삼의 존재를 제 몸으로 불러들여 프레임을 깨부순다. 첫 에피소드에서 전직 조폭 이강풍(허성태)에 빙의해 걸출한 충청도 사투리와 거친 액션을 선보이더니, 이어진 에피소드에선 아이돌 연습생 김수아(오예주)로 분해 유연한 걸그룹 댄스까지 소화하는 파격적인 변주를 보여줬다. 극단적인 캐릭터의 낙차를 이질감 없이 메우는 그의 정교한 연기는 작품을 방영 첫 주 만에 시청률 8%대 안착시키는 견인차가 됐다. 앞으로 그가 또 어떤 영혼을 빌려 우리를 놀라게 할지, 시청자들은 벌써 그의 다음 '부캐'를 기다리고 있다.
하정우 |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
#생계형_건물주 #어쩌다_납치범
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을 통해 19년 만에 안방극장으로 돌아온 하정우의 선택도 영리했다. 그가 연기하는 ‘기수종’은 번듯한 건물주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대출 이자에 허덕이는 생계형 가장. 벼랑 끝에 몰린 그가 친구 민활성(김준한)의 제안으로 얼떨결에 가짜 납치극에 가담하며 벌어지는 소동극은, 하정우 특유의 생활 연기와 맞물려 묘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 하던 선량한 건물주가 복면을 쓴 채 ‘납치범’이라는 낯선 페르소나를 수행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1인 2역의 변주다. 서툰 범죄 행각 속에서 새어 나오는 당혹감과 실시간으로 붕괴하는 내면의 도덕성은 극의 블랙코미디적 요소를 극대화한다.
서인국 | 〈월간남친〉
#디지털_페르소나 #가상_연애 #서인국_유니버스
서인국은 현실과 가상의 좌표를 유영하며 시청자의 감각을 교란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에서 그가 연기하는 ‘박경남’은 웹툰 PD 서미래(지수)의 곁을 맴도는 무심하고 까칠한 동료다. 하지만 미래가 탐닉하는 가상 연애 서비스 속으로 접속하는 순간, 그는 901번째 남친 ‘구영일’이라는 완벽한 판타지로 재탄생하며 극의 텐션을 단숨에 바꾼다. 현실의 경남과 가상의 구영일, 그 경계가 점차 희미해지는 전개는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더욱 모호해지는 현대인의 정체성이라는 화두를 로맨틱하고도 날카롭게 관통한다. 두 세계의 온도 차를 조율해내는 서인국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백서라 | 〈닥터신〉
#뇌_체인지 #피비_메디컬_스릴러
TV조선 드라마 〈닥터신〉 스틸
TV조선 드라마 〈닥터신〉 스틸
가장 기괴하고도 소름 돋는 설정은 단연 ‘피비(임성한)’ 작가의 신작 TV조선 〈닥터신〉이다. 불의의 사고로 뇌사에 빠진 톱스타 모모(백서라)를 살리기 위해 엄마 현란희(송지인)의 뇌를 이식한다는, 인류사적 금기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파격적인 서사를 택했다. 신예 백서라는 이 중심에서 ‘몸은 딸이나 영혼은 엄마’라는 난해한 정체성을 연기하며 안방극장에 서늘한 파동을 일으킨다. 인간의 비뚤어진 욕망이 빚어낸 파국을 그리는 이 작품은 사실상 메디컬 드라마를 가장한 호러에 가깝다. 특히 엄마의 영혼을 품은 채 예비 사위 신주신(정이찬)을 마주하는 모모의 위태로운 눈빛은 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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