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씻는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외출하고 돌아와서도 씻는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상이 전 세계 어디서나 당연한 건 아니다. 숫자로 들여다보면 한국인의 위생 습관은 세계적으로도 꽤 이례적인 수준이다.
글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AI 툴로 만든 사진.
소비재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가 세계 16개국을 대상으로 머리 감는 횟수를 조사했더니 글로벌 평균은 주당 3.5회였다. 이틀에 한 번꼴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 4회로 그나마 평균을 웃돌았고, 호주는 주 3회, 중국과 프랑스는 주 2.5회에 그쳤다. 조사 대상 16개국 가운데 한국은 아예 포함되지 않았는데, 국내 통계를 보면 그 이유가 어렴풋이 짐작된다.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두잇서베이가 2020년 전국 4,58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58.2%가 하루에 한 번 머리를 감는다고 답했다. 하루에 두 번 이상이라는 응답도 10.9%였다. 최소 이틀에 한 번 이상 감는다는 비율은 91.9%에 달했다. 글로벌 평균인 이틀에 한 번과 비교하면, 한국은 사실상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샤워 빈도도 마찬가지다. 2018년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하루 1회 샤워한다는 응답이 45%였고, 이틀에 한 번 이하라는 응답은 39% 수준이었다. 반면 서울·경기 지역 3040 남성을 대상으로 한 2016년 논문에서는 하루 1회 샤워가 82.5%로 압도적이었다. 표본과 조건에 따라 수치는 다소 다르지만, 하루 한 번 샤워가 한국인의 기본값에 가깝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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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차이를 만드는 요인은 단순하지 않다. 먼저 모발 구조 자체가 다르다. 동양인은 피지 분비가 많고 직모가 대부분이어서 하루만 지나도 두피가 금세 기름지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서구권은 모발이 얇고 피지 분비가 적어 매일 감으면 오히려 두피가 건조해질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석회 성분이 포함된 경수(硬水) 수질도 잦은 세발을 꺼리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한국인이 유럽 유학이나 여행 중 매일 머리를 감다가 모발이 푸석해지는 경험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기후 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여름은 고온다습하고 계절을 가리지 않는 미세먼지 노출도 일상화돼 있다. 외출 후 샤워와 세발을 '기본'으로 여기는 인식이 자리 잡은 배경이다. 실제로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귀가 후 바로 샤워하라는 권고가 공식 기관에서도 나올 정도다.
주거 구조도 한몫한다. 한국은 바닥에 앉거나 눕는 좌식 생활 문화가 뿌리 깊어, 바닥 청결에 대한 기준이 서구권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발을 벗고 생활하기 때문에 바닥은 '원래 더러운 곳'이 아니라 '가장 깨끗해야 할 공간'으로 여겨진다. 일본 역시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문화를 공유하며 위생 수준이 높다고 평가받는데, 한일 양국이 세계적으로 세정 빈도가 높은 나라로 손꼽히는 건 우연이 아닌 셈이다.
해외에서 지내본 한국인들의 경험담은 이 간극을 더 생생하게 보여준다. "매일 머리를 감는다고 했더니 외국 동료가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홈스테이 가정에서 일주일에 한 번 샤워를 허락받았다"는 이야기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끊임없이 공유된다. 반대로 외국인들이 한국이나 일본을 방문한 뒤 현지인들의 세정 빈도에 놀라는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자주 씻는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적정 세정 빈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은 두피의 기름샘 활동이다. 기름진 직모는 1, 2일에 한 번 세발이 적합하지만 건조하거나 곱슬머리는 너무 자주 감으면 오히려 모발이 약해질 수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두피를 잘 감지 않으면 죽은 피부와 기름이 쌓여 염증이나 탈모를 유발할 수 있지만 과도한 샴푸는 모발을 지나치게 건조하게 만든다. 결국 정답은 하루 몇 번이냐가 아니라 두피 상태와 모발 유형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숫자는 말한다.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틀에 한 번 머리를 감는 동안, 한국인 열 명 중 여섯 명은 오늘도 어김없이 샤워기 앞에 선다. 이 습관이 기후 때문인지, 문화 때문인지, 아니면 찝찝함을 못 참는 한국인 특유의 기질 때문인지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한국인에게 씻는다는 건 단순한 위생 행위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하나의 리추얼에 가깝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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