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락] 고환율과 소비자 물가 상승 등 경기 침체 기조가 장기화되자, 정부가 생필품과 식품 가격을 직접 겨냥한 전방위적 압박에 나섰다.
최근 정부는 설탕, 밀가루, 전분당 등 주요 원재료 시장의 담합 여부를 집중 모니터링하며 위반 기업에 과징금을 부과하데 이어 가공식품 가격인하를 권고하는 등 강도 높은 규제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의 논리는 명확하다. 국제 원재료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이를 사용하는 라면·빵·과자 등 가공식품 가격 역시 그에 맞춰 낮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민생 품목에 대한 시장 조사와 점검을 강화하며 연일 가격 안정화를 권고하고 있으며 주요 식품 기업들은 제품 가격 인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의 권고로 인해 다소 인위적인 가격 조정이 이뤄질 경우, 자율적인 시장 생태계가 파괴되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생산 원가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강행되는 가격 인하는 기업의 수익성 악화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제품의 질 하락이나 공급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뉴스락>뉴스락>은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 속 식품업계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연이은 식품가격 인하가 가져올 수 있는 시장 변동성과 잠재적 부작용에 대해 심도 있게 짚어봤다.
원가 하락 vs 고정비 압박: '울며 겨자 먹기'식 가격 인하의 이면
정부가 민생 물가 안정을 위해 전방위적인 모니터링에 나서면서 원재료 값 하락을 명분으로 한 식품업계의 가격 인하가 줄을 잇고 있다.
소비자들의 물가 부담은 덜게 됐지만, 정작 업계 내부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공식품은 인건비, 물류비, 에너지 비용 등 고정비 비중이 커 원재료값 하락만으로 가격을 내리기엔 기업의 수익성 훼손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롯데웰푸드, 빙그레, 오리온 등 주요 제과·빙과 업체들은 내달부터 본격적인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한다.
롯데웰푸드는 제과, 빙과, 양산빵 등 9개 품목의 가격을 최대 20%, 평균 4.7% 인하하기로 했다.
빙그레 역시 아이스크림 출고가를 평균 8.2% 낮추며 동참했으며, 오리온은 배배, 바이오캔디, 오리온웨하스 등 3개 제품 가격을 평균 5.5% 하향 조정했다.
국민 먹거리인 라면업계도 예외는 아니다. 농심, 오뚜기, 삼양식품, 팔도 등 주요 라면 제조사들은 일부 제품의 출고가를 40원에서 최대 100원까지 낮출 예정이다.
밥상 물가와 직결되는 라면부터 간식류까지 가격 인하가 예고되면서 소비자들의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지만,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라는 해묵은 과제 앞에서 고심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단순한 엄살이 아니다. <뉴스락> 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을 통해 주요 식품 기업의 최근 3년간 실적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 기업의 영업이익이 뚜렷한 하락세를 보였다. 뉴스락>
롯데웰푸드의 영업이익은 지난 2023년 1770억원에서 지난 2024년 1571억원, 지난해 1095억원으로 줄어들며 3년 연속 수익성이 뒷걸음질 쳤다.
빙그레는 지난 2024년 131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1122억원) 반등하는 듯했으나, 지난해 884억원으로 실적이 꺾이며 급격한 수익성 하락을 겪었다.
해태제과식품 또한 지난 2023년 710억원, 지난 2024년 675억원에 이어 지난해 572억원을 기록하며 3년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표적인 라면제조사 오뚜기도 3년 연속 영업이익이 하락곡선을 그리며 지난 2023년 2549억원, 지난 2024년 2220억원, 지난해 1773억원으로 점차 감소하며 수익성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성장세를 보이는 기업들도 속내는 복잡하다. 농심과 삼양식품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으나, 이번 가격 인하 대상에서 주력 인기 제품보다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제품들을 우선적으로 포함했다.
이는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에 부응하면서도 핵심 수익원은 지켜내려는 방어적 전략으로 풀이된다.
원재료 외에도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 압박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무분별한 전 품목 인하가 자칫 기업 경영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된 결과다.
농심 관계자는 <뉴스락>뉴스락>과의 통화에서 "라면 가격을 구성하는 요소 중 밀가루 가격은 전체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며 "오히려 거시경제 물가 상승으로 기타 원재료 가격 및 경영비용 등이 상승하고 있고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원가부담이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속되는 규제와 압박, 식품산업 지원책은 어디에
정부와 소비자들은 식품업계의 연이은 가격 인하 행보에 반색하고 있지만, 업계 내부에서는 이번 조치가 '울며 겨자 먹기'식 결정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설탕, 밀가루, 전분당 등 일부 원재료 가격이 하락세에 접어들었다고는 하나 이것이 전체 제조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가 절감 효과가 미미한 상황에서 단행된 가격 인하는 기업의 경영 부담을 가중시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정부 압박에 의한 인위적인 가격 변동이 장기화될 경우, 국내 사업의 수익성 악화가 식품 산업 전체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한다.
당장의 이익이 줄어들면 기업들은 가장 먼저 미래 먹거리를 위한 R&D(연구개발) 투자를 줄이거나 노후된 생산 설비 교체 주기를 늦출 수밖에 없다. 이는 결국 장기적인 품질 저하와 산업의 성장 정체라는 악순환을 초래하게 된다.
내수 시장의 손실이 심화될 경우 기업들이 해외 사업에만 치중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국내 시장 대신 글로벌 시장에 자원을 집중하게 되면 국내 소비자들을 위한 서비스 질이 떨어지거나 제품 공급의 안정성이 위협받는 등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의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물가 안정 정책에 적극 동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기 제품이 아닌 비주류 제품 위주로 가격을 인하했다는 부정적 여론이 형성되면서 이미지 타격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핵심 수익원인 인기 제품의 가격을 내리는 것이 경영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생색내기용 인하'로 받아들일 수 있어 브랜드 신뢰도에 금이 가고 있다.
이렇듯 업계 관계자들은 단순히 가격을 누르는 규제만으로는 장기적인 물가 안정을 달성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최근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포장재에 쓰이는 기초화학 원료 가격이 치솟고 공급망 불안정성이 대두되는 등 대외 환경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원재료 외에도 인건비, 물류비, 포장비 등 모든 비용이 동반 상승하는 가운데 환율과 유가까지 요동치고 있어 식품업계는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오뚜기 관계자는 <뉴스락>뉴스락>과의 통화에서 "품목마다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 함류 비중 자체가 다르나, 환율ㆍ유가ㆍ인건비 등 원가상승 압박으로 손익에는 영향이 있고 특히 환율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상승 압박이 지속된다면 이익은 감소폭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청한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정부 정책에 뜻을 모았으나, 추후 원자재 가격이 재급등했을 때 기업이 자율적으로 가격을 정상화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라며 "시장 원리가 무너진 가격 결정 구조가 고착화될까 두렵다"고 토로했다.
결국 정부의 일방적인 가격 압박보다는 기업의 원가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춰줄 수 있는 세제 지원이나 물류 인프라 개선 등 기업과 소비자가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보다 심층적이고 다각적인 해법 모색이 시급한 시점이다.
식품산업 활성화 위한 지원책 필요
정부의 민생 물가 안정 기조에 발맞춰 주요 식품 기업들이 잇따라 가격 인하에 동참하고 있으나, 이러한 흐름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기업이 감내해야 할 비용 부담이 한계치에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현재 식품업계는 물류비와 인건비 등 공통 부대비용의 상승과 더불어, 중동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원자재 수급 불안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황이 악화된 상황에서 가격 인하라는 정책적 권고까지 더해지며 기업 경영의 부담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무엇보다도 식품 산업을 향한 정책적 지원의 부재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부의 규제만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정부의 기업 지원책이 반도체, 제약, AI 등 첨단 기술 및 신산업 분야에 집중되면서, 전통 산업인 식품업계는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규모 면에서도 대형 식품사는 신성장 동력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기 일쑤고, 중소·벤처 지원 혜택은 받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소비 위축으로 내수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를 무릅쓰고 정책 기조에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생'이 기업의 일방적인 희생에만 의존할 경우, 결국 미래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가격 인하 권고라는 단기적 처방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식품 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지원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부진한 내수 시장을 극복할 수 있도록 식품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위한 수출 금융 지원이나 물류 인프라 개선, 스마트 팩토리 전환 지원 등 실질적인 상생 모델이 시급한 시점이다.
[뉴스락 미니인터뷰]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
민생 물가 안정, 장기적인 정책과 더불어 식품산업 지원책 필요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뉴스락>뉴스락>과의 통화에서 정부의 민생 물가 안정 정책이 단기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이제는 기업의 희생에 의존하는 방식을 넘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새 정부 들어 식품업계와의 소통과 담합 모니터링을 통해 작년 소비자 물가 상승률을 2.1%로 방어하며 선방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기업들이 마주한 대내외 경영 환경은 결코 녹록지 않다고 분석했다.
중동 분쟁과 기후 위기로 인한 원재료 가격 변동성, 미국의 고금리 정책에 따른 원화 가치 하락 등은 기업이 자력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 교수는 국민적 환영을 받는 저가 제품이 고환율과 내수 부진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할지는 의심스럽다고 우려를 표했다.
실제로 작년 소매판매액지수가 감소세를 보이는 등 내수 침체가 심화되면서, 탄탄한 실적을 자랑하던 식품기업들마저 영업이익 감소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교수는 식품업계가 정책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다수 식품기업이 중견기업에 속하다 보니 중소·벤처기업 대상의 성장 정책에서 제외되고 반도체나 AI 같은 첨단 전략 산업 기준에도 미치지 못해 정부 지원의 중심에서 멀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가 단순히 가격 인하를 권고하는 수준을 넘어, 물가 안정에 동참하는 기업에 실질적인 유인 체계(인센티브)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구체적으로는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식품 기업의 해외 시장 확장에 정부가 적극적인 파트너로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K-푸드 수출이 136억 달러를 돌파하며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한 만큼, 정부 간 협력을 통해 우리 식품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이러한 지원이 외화 수입과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때 기업도 정부의 민생 안정 정책에 지속 가능한 파트너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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