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조 中 자금 공세에 밀린 K배터리… ‘ESS-로봇’으로 돌파 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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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조 中 자금 공세에 밀린 K배터리… ‘ESS-로봇’으로 돌파 시도

EV라운지 2026-03-21 01:4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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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에 밀려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중국 내수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무대에서도 K배터리의 시장 점유율이 쪼그라드는 반면에 중국 기업들은 주도권을 굳히고 있다. 이에 국내 배터리 업계는 전기차에 편중됐던 기존 사업 구조를 성장성 높은 에너지저장장치(ESS)나 휴머노이드 로봇 배터리 산업으로 개편하는 등 이른바 ‘밸류 시프트’(가치 재편)를 통해 생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 삼원계와 LFP의 노선 차이에 글로벌 격차 커져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 글로벌(중국 제외)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은 32.7GWh(기가와트시)로 전년 동기 대비 13.7% 늘었다. 이렇듯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에서도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갔으나,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합산 점유율은 25.5%에 그치며 전년 동기(35.9%)보다 10.4%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점유율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CATL은 전년 대비 26.5% 증가한 11.2GWh(시장 점유율 34.2%)를 기록해 국내 3사 합산 점유율을 웃돌면서 1위를 유지했다. 폭스바겐, 아우디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를 대상으로 공급망을 확대한 결과다. BYD 역시 유럽과 신흥 시장 판매망 확대에 힘입어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3위에 올랐다.

국내 배터리 업계의 점유율 하락은 양극재 기술에 대한 전략 차이와 중국의 대규모 산업 지원 정책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상용화 초기에 한국은 에너지 밀도가 높아 1회 충전 주행거리가 긴 니켈·코발트·망간(NCM) 기반의 ‘삼원계 배터리’에 역량을 집중했다. 반면 중국은 무겁고 주행거리가 짧지만 원가가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기술 고도화에 주력했다.

초기에는 주행거리가 주요 경쟁력이었으나 점차 시장 상황이 변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장기화와 전기차 보조금 축소로 완성차 업체 간 가격 인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원가 절감을 위해 가성비가 높은 LFP 배터리를 채택하는 비중이 급증했다. 셀투팩(Cell to Pack·CTP) 등 패키징 기술 발전으로 LFP의 고질적 단점인 낮은 에너지 밀도가 개선된 점도 채택을 앞당겼다.

SNE리서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양극재 적재량 기준 34%에 불과했던 LFP 비중은 꾸준히 늘어 2025년 62%까지 확대되며 시장 주류로 자리 잡았다. 반면 2021년 66%였던 삼원계 비중은 2025년 38%로 축소됐다.

● 中 320조 원 규모 산업 지원

중국 기업들이 단기간에 LFP 기술을 끌어올려 시장 점유율을 확대한 배경에는 자국 정부의 전폭적인 자금 지원이 자리한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중국 정부가 2009년부터 2023년까지 배터리 및 전기차 산업에 투입한 자금을 총 2309억 달러(약 320조 원)로 추산했다. 이는 구매자 리베이트, 판매세 면제, 연구개발(R&D) 지원 등 정량화가 가능한 수치만 합산한 것으로, 토지 지원이나 전력 보조 등을 더하면 실제 규모는 훨씬 크다.

중국은 2012년 ‘에너지 절감과 신에너지차 산업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전기차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2015년에는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제도를 도입해 자국 배터리 제조사의 제품을 장착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우선 배분하는 방식으로 자국 산업을 보호했다.

대규모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지방정부가 공장을 지어 무상으로 임대했고, 토지도 무상으로 사용토록 했다. 총 설비투자(CAPEX)의 20∼40%에 달하는 비용을 보조했고, 과세 전에 R&D 비용을 최대 100∼200%까지 추가로 차감해주기도 했다. 해외 투자 시 중국수출입은행에서 15∼20년 만기의 2% 저리 대출까지 지원해줬다.

지원 규모는 산업 생태계가 안착한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했다. CSIS 데이터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10억 달러 미만이던 지원 규모는 2018∼2020년 연평균 16억4000만 달러로 증가했고, 2021∼2023년에는 연평균 40억 달러 이상으로 확대됐다. 점유율 1위 업체인 CATL의 경우에도 2018년부터 2023년까지 받은 정부 지원금만 18억 달러에 이른다. 이 외에도 중국의 경우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주요 광물 수급의 자국 의존도가 높은 반면에 한국의 경우 전구체나 리튬 등 핵심 광물의 해외 의존도가 70∼90%에 달하는 상황이다. 막대한 내수 시장까지 갖고 있는 중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과 생산 규모를 따라잡기 어려운 상황이다.

● ESS용 배터리 사업으로의 다변화

국내 배터리 업계는 생존의 분수령을 맞았다. 중국의 거대 내수와 지원금에 밀려 주도권을 내준 화학·철강·디스플레이의 전철을 피하고, 압도적 기술력과 신시장 개척으로 시장을 선도하는 반도체·자동차·조선 등의 길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를 마주한 것이다. 이를 위해 배터리 업계는 선제적인 사업 구조 다변화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일단 첫 번째 대안으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충과 함께 전력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ESS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늘리고 있으나, 기존 전력망 연결 및 송전 인프라 구축에는 통상 7∼11년이 소요된다. 이를 단축하기 위해 데이터센터 부지 내 전력 설비를 직접 구축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전력 수급의 불균형을 제어하기 위해 대규모 ESS 결합이 필수가 됐다. 글로벌 ESS 시장 규모는 2024년 372억3000만 달러(약 55조 원)에서 2030년 1059억 달러(약 155조 원·예상)로 지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견제로 인해 중국 기업의 진입이 제한된 북미 ESS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기존 10%대였던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점유율이 30%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미시간주 공장과 캐나다 넥스트스타 에너지 공장, 혼다 합작법인 등을 통해 북미 지역 내 LFP ESS 대규모 생산 체제를 선제적으로 확보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테슬라와 6조 원 규모의 ESS 배터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삼성SDI도 비중국계 각형 배터리를 강점으로 앞세워 지난해 미국 에너지 인프라 기업과 2조 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계약을 따낸 데 이어 이번 달에도 미국 메이저 에너지 기업과 1조5000억 원가량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SK온 역시 지난해 미국 재생에너지 개발사 플랫아이언과 2조 원 규모의 배터리를 공급하는 계약을 맺으며 북미 대형 ESS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 고밀도 삼원계 선호하는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

고밀도 배터리 기술력이 요구되는 미래 산업인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도 주시하고 있다. 인간과 동일한 환경에서 동작해야 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은 한정된 신체 구조와 좁은 관절 내에 동력원을 탑재해야 한다. 공간적 제약이 크기 때문에 배터리 셀의 단위 중량당 에너지 밀도가 로봇의 작동 시간과 성능을 결정하는 핵심 지표가 된다.

이 분야에서는 무겁고 에너지 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철 기반의 LFP 배터리(평균 kg당 90∼170Wh)가 채택되기 어렵다. 반면 국내 배터리 업계가 주도해온 삼원계 배터리는 평균 kg당 200∼300Wh의 고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 부피를 최소화하면서도 출력을 높여야 하는 로봇 산업에 최적화된 기술로 평가받는다. 평균 전압에서도 LFP(3.2V)는 삼원계(3.6∼3.8V)보다 낮아 용량 확장에 물리적 한계가 있다.

국내 기업들은 로봇 배터리 생태계 확보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주요 로봇 제조사에 하이니켈 2170 원통형 배터리 등을 우선 공급하며 데이터를 축적하는 한편, 차세대 기술인 ‘무음극계 전고체 배터리’의 2030년 상용화를 목표로 R&D에 집중하고 있다. 음극재 없이 집전체만을 활용하는 무음극계 방식은 가연성 전해액을 고체로 대체해 화재 위험을 낮추고, 이론적인 에너지 밀도를 대폭 끌어올릴 수 있어 차세대 모빌리티 및 로봇 산업의 표준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북미 ESS 시장 진출 확대와 차세대 로봇 시장 선점 등 포트폴리오 다변화 전략이 향후 국내 배터리 업계의 중장기적 실적 개선과 시장 점유율 방어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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