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중동 지정학 리스크가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겨냥하는 양상으로 확전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전반에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거점이 타격을 입으며 산업용 원자재 공급망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반도체 공정 필수 소재인 헬륨 수급 불안이 현실화될 경우 K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동 지역 내 군사적 충돌이 격화되며 LNG 생산시설의 가동 차질이 이어지고 있다. LNG는 단순 에너지원이 아니라 산업용 가스 생산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파급력이 크다.
천연가스에는 질소, 헬륨, 탄산가스, 황화수소 등 미량 가스가 포함될 수 있고 LNG 생산 공정에서는 먼지·산성가스·헬륨·물·중탄화수소 등을 제거한 뒤 액화한다. 즉 천연가스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헬륨은 반도체 공정에서 대체가 어려운 핵심 소재다.
이에 LNG 생산이 차질을 겪으면 천연가스 기반 생산 체계에 기대는 산업용 가스(헬륨 포함) 수급이 불안해질 수 있다.
▲ 헬륨 의존 구조…“공급 한번 흔들리면 대체 쉽지 않아”
헬륨은 초저온 냉각과 공정 안정성 유지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첨단 공정으로 갈수록 온도 제어와 불순물 관리 중요성이 커지면서 고순도 헬륨 의존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공급 구조가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중동 특히 카타르는 글로벌 헬륨 공급의 핵심 축으로 국내 역시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다.
현재까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은 수주 단위에 맞춘 재고를 확보하고 있어 단기적인 생산 차질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는 일시적 완충 장치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건은 사태의 지속 여부다. 업계에서는 통상 1~2개월 수준의 재고가 소진되는 시점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이 기간을 넘길 경우 생산 전략 전반의 재조정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일부 라인의 가동률 조정이나 고부가 제품 중심 생산으로의 전환 가능성도 거론된다.
▲ “전쟁 장기화 가능성”…정치 메시지와 현실 ‘괴리’
시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단기 충돌에 그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단기간 내 상황을 정리하려는 메시지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장기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정치적 메시지와 현장 상황 간 괴리가 큰 만큼 공급망 리스크도 길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제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며 “결국 변수는 이란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많고 영구적 종전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이상 충돌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시장 불안을 고려해 조기 종전 가능성을 언급하지만 실제 전황은 다르게 전개될 수 있다”며 “과거에도 시한을 제시했지만 현실과 괴리가 컸던 사례가 반복돼 왔다”고 지적했다.
가격 변수도 부담이다. 공급 불안이 장기화될 경우 헬륨 가격 급등이 불가피하며 이는 곧 반도체 원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미세 공정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소재 비용 변동성은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글로벌 시장 역시 이번 사태를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닌 공급망 리스크로 인식하고 있다. AI 반도체 수요 확대 국면에서 소재 공급 차질은 산업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내 기업들은 공급선 다변화와 전략 비축 확대 필요성을 다시 점검하는 분위기다. 일부에서는 미국과 아프리카 등 대체 공급망 확보 움직임도 감지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재 공급망 구조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정 지역 의존도가 높은 구조에서는 외부 충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이번 사태의 핵심은 ‘시간’이다. 단기 충격은 버틸 수 있지만 장기화될 경우 공급망 균열이 현실화될 수 있다. 중동 리스크가 에너지를 넘어 첨단 산업 기반까지 흔들 수 있는 변수로 부상하면서 헬륨의 수급 불안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나라 반도체 업계의 비용 부담도 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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