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울산 일가족 사망사건으로 인해 ‘신청’을 전제로 작동하는 현행 복지체계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에 보건복지부 정은경 장관이 나서 지방자치단체가 위기를 파악하면 기초생활보장 직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0일 울산 울주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후 4시 48분께 울주군 온산읍 소재 빌라에서 30대 아버지 A씨와 미성년 자녀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자녀는 초등학교 1학년 딸(7)을 비롯해 5세, 3세 딸, 생후 5개월 아들이다. 첫째가 지난 16일부터 등교하지 않자 담임교사가 집을 찾았다가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연합뉴스 등 보도를 보면 전날 해당 일가족은 지난해 3월부터 복지 사각지대 발굴 명단에 포함됐고 이에 따라 지속적인 모니터링 대상이었다.
A씨는 당시 직접 행정복지센터를 방문해 생활고를 호소했고 이후 긴급 생계·주거 지원금 806만원과 생필품 등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12월을 기점으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드러났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A씨가 네 자녀를 홀로 책임지게 되면서 생계와 돌봄 부담이 한꺼번에 가중됐다. 일용직 일자리마저 이어가지 못해 사실상 소득이 끊겼고 아동수당과 부모급여 등 월 140만원이 유일한 수입원이 됐다. 다섯 식구의 식비와 월 60만원의 임대료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었다.
임대료와 기본적인 생활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A씨는 인근 편의점에서 외상으로 식료품을 마련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여기에 건강보험료까지 100만원 이상 체납되면서 생계 전반이 사실상 한계에 다다르게 됐다.
이에 최근 두 달간 경찰과 지자체 공무원이 해당 가정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올해 1월 초 첫째 딸이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불참하면서 학교 측 신고로 경찰이 가정을 방문했으며 2월에는 지자체 측이 두 차례 A씨 자택을 찾았다. 이달 초에는 딸이 무단결석하자 경찰과 지자체가 재차 방문했지만 비극을 막지 못했다. 방문 당시 가정과 아이들 상태가 양호하고 학대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경찰과 지자체 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행정복지센터는 지난달부터 수차례 가정을 찾아 기초생활수급과 한부모가족 지원 신청을 안내·권유하기도 했다. A씨는 생필품 등 일부 지원은 수용했지만 수급 신청에는 끝내 응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 복지제도가 ‘신청주의’를 전제로 운영되는 만큼 당사자의 동의와 신청이 없이는 제도적 지원으로 이어질 수 없다.
결국 복지망이 위기 신호를 포착하고도 실질적인 보호로 이어지지 못한 채 비극으로 이어지면서 현행 제도의 한계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울산 일가족 사망 사건과 같은 사례가 이어지면서 명확한 위기 상황이 확인된다면 당사자의 신청 여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공공이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군산·임실 등 지역에서도 생활고를 겪던 일가족의 비극이 반복되자 시민단체는 복지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북희망나눔재단은 전날 성명을 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선택이 개인의 문제가 아닌 가족 전체의 비극으로 확대되는 현실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는 우리 복지제도가 여전히 신청 중심, 경제 기준 중심에 머물러 있으며 실제 위기를 사전에 발견하고 개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부담 없이 도움을 요청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분명히 방향을 바꿔야 한다”며 “복지는 기다리는 제도가 아니라 먼저 찾아가고, 먼저 연결하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심각성을 고려해 정 장관은 이날 울산광역시 울주군청에 찾아 울주군 일가족 사망 사건 관련 발생 경위와 지방자치단체의 조치 사항을 파악하고 개선 대책 마련을 위해 의견을 청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정 장관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위기를 파악하면 기초생활보장 직권 신청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정부는 공무원이 위기 징후를 포착할 경우 금융정보 제공에 대한 당사자 서면동의가 없어도 기초생활 보장급여를 직권신청 할 수 있도록 하고 해당 공무원은 적극행정을 통해 면책하는 방안을 검토해 나갈 예정이다.
직권신청 도입을 넘어 급여 기준과 돌봄·생활지원 전반을 포함한 제도 개선과 지원 거부 배경까지 아우르는 다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는 본보에 “그간 신청주의 한계가 지적될 때마다 위기가구 ‘발굴’ 확대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이는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며 “선정 기준과 급여 수준 등 제도 자체의 개선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이어 “단순히 ‘직권 신청’ 도입에 그칠 것이 아니라 생계급여를 넘어 돌봄·양육·생활지원 서비스 전반을 포괄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울산 사례처럼 생활고가 이미 포착된 경우에도 당사자가 지원을 거부했다면 단순한 신청 여부보다 ‘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를 들여다보고 복지 접근성을 저해하는 요인을 다층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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