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국보가 된 고려의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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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국보가 된 고려의 질서

뉴스컬처 2026-03-20 15:45:4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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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충청남도 서산 운산면의 산자락에 자리한 보원사지는 한국 불교문화의 흐름을 응축한 역사 공간으로 평가된다. 이곳 중심에 서 있는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고려 전기 석탑 양식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 유산으로 꼽힌다. 오랜 세월 풍화와 복원을 거쳤음에도 당시의 조형 감각과 종교적 상징성은 또렷하게 남아 있으며, 사찰의 중심축을 이루는 구조물로서 공간 전체의 의미를 형성해 왔다.

이 석탑은 조성 시기를 비교적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법인국사 탄문이 활동하던 시기와 광종 대의 불사 기록이 맞물리며 10세기 중엽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왕실의 발원과 승려의 수행이 결합된 불사라는 성격은 고려 초기 불교 정책과 국가 이념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 사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탄문에 의해 중창이 이루어지면서 사세를 확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사지에는 법인국사보승탑과 탑비, 당간지주, 석조 등이 남아 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와 위상을 짐작하게 하며, 교학과 의례가 함께 이루어지던 복합적 문화 공간의 성격을 드러낸다.

오층석탑의 기단부는 이중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층 기단에는 사자상이 부조 기법으로 조각돼 각기 다른 방향과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은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섬세한 조각 기술과 생동감 있는 표현력을 보여주는 요소로 평가된다. 정적인 석조 구조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장치로서 조각의 입체감과 세부 묘사가 돋보인다.

상층 기단에는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다. 불교의 여덟 수호신을 형상화한 이 조각은 균형감 있는 배치와 유려한 선이 특징이며, 통일신라 조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 특유의 세련된 표현을 보여준다. 장식 요소를 넘어 불교적 세계관을 전달하는 시각적 상징으로 기능한다.

탑신부는 5층 구조로 위로 갈수록 체감이 줄어드는 비례를 취해 안정된 외형과 상승감을 동시에 구현하고 있다. 1층 탑신에는 문비가 새겨져 있어 내부 공간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사리를 봉안한 공간에 대한 신성성을 강조한다. 나머지 층에는 기둥 형태의 조각이 더해져 구조적 균형과 시각적 안정감을 유지한다.

옥개석은 낮고 넓게 퍼진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하부에는 4단의 받침이 조각돼 있다. 이러한 구성은 고려시대 치석 기법의 특징을 보여주며 넓게 펼쳐진 지붕선에서는 백제계 석탑의 영향이 읽힌다. 반면 받침부는 고려 양식을 따르고 있어 서로 다른 전통이 한 구조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양상을 보여준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전체 구조는 목탑에서 석탑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반영하고 있으며 부재의 구성 방식에서도 과도기적 특징이 확인된다. 일부 층은 여러 판석을 조합해 제작됐고 일부는 단일 석재로 구성됐다. 이러한 혼재 양식은 당시 건축 기술의 변화와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평가된다.

석탑은 백제계와 신라계 양식이 함께 나타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부드러운 선과 안정된 구조가 동시에 구현돼 있으며 서산 지역이 다양한 문화적 영향을 받아 형성된 공간임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전통이 융합된 결과로서 문화사적 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1968년과 2003년에 진행된 해체·보수 과정에서는 사리 내갑과 외갑, 사리병, 납석 소탑 등이 출토됐다. 이들 유물은 당시 불교 의례와 장엄 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으며, 석탑이 실제 धार्मिक 기능을 수행했던 공간이었음을 입증한다.

석탑은 1963년 보물로 지정돼 현재까지 관리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국보로 승격됐다. 이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흐름 속에서 그 위상이 다시 조명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려 전기 석탑의 기준작으로서 학술적 중요성은 이미 확고하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 사진=국가유산청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고려의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낸 전환기의 산물이다. 석조 건축의 변화 과정과 시대적 흐름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되며 한국 석탑사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역 사회와의 연결성 역시 주목된다. 서산시와 주민들은 국보 승격을 기념하여 문화유산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하려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문화재가 과거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연결되는 살아있는 자산임을 보여준다.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은 시간과 신앙, 권력과 예술이 결합된 상징적 구조물이다. 왕실의 발원과 승려의 수행, 장인의 기술과 지역의 기억이 함께 축적돼 있으며 이러한 복합적 의미가 한국 석조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로 평가된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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