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은 왜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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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은 왜 결정적인 순간에 발을 뺄까

나만아는상담소 2026-03-20 11:04:06 신고

3줄요약

일요일 오후, 한적한 카페. 진지하게 미래를 논의하거나 관계의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려 당신이 어렵게 운을 뗀 참이다. 며칠을 고민하고, 혼자 대본까지 짜본 대화다. 긴장한 당신과 달리, 맞은편에 앉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는다.

  • -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난 네 결정에 다 따를게. 네가 좋으면 나도 다 좋아.”

상대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말씨다. 당신을 그만큼 믿는다는 뜻 같아 고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 한구석이 묵직해진다. 분명 우리 둘의 문제인데, 정신을 차려보면 나 혼자 핸들을 꽉 쥐고 안개 낀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다.

고마운 말을 들었는데 왜 외로운 걸까. 그 외로움의 정체를 한참 뒤에야 알게 된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는 존중이 아니라 회피였다는 걸.

조수석에만 앉으려는 사람

내현성 나르시시스트는 관계에서 중요한 순간이 올 때 핸들을 잡지 않는다. 데이트 코스를 정하는 가벼운 일부터 결혼이나 이직 같은 삶의 방향을 틀어야 하는 선택까지, 언제나 당신을 운전석으로 떠밀고 자신은 조수석에 올라탄다.

배려심이 깊어서가 아니다. 핸들을 잡는 순간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이 길로 가자”고 나섰다가 길이 막히거나 사고가 나면 자기 잘못이 된다.

이 사람들은 그 가능성 자체를 못 견딘다. ‘내가 틀렸다’는 결과를 감당할 만큼 자아가 튼튼하지 않은 거다.

그래서 모든 선택권을 당신에게 넘긴다. 당신을 존중하는 얼굴을 하면서, 책임이라는 무게를 당신 쪽 좌석에 슬쩍 옮겨놓는다.

여기서 하나 짚어야 할 게 있다. 이 사람들이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결정을 안 하는 것도 하나의 결정이다. “너한테 맡길게”라는 말은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아주 적극적인 선택이다.

실패했을 때 자기 탓이 안 되는 위치를 골라 앉은 거니까. 핸들을 안 잡는 게 아니라, 안 잡는 쪽을 잡은 거다.

이걸 알아채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겉모습이 너무 부드럽기 때문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난 네 판단을 믿어” —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이기적이라고 느끼기가 어렵다.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이 사람이 나를 이렇게까지 신뢰하는구나, 하고. 그래서 핸들을 잡는다. 처음에는 기꺼이. 나중에는 습관적으로. 그 다음에는 어쩔 수 없이.

내비게이션 없는 주행과 조수석의 한숨

당신이 고군분투하며 운전하는 동안 그는 조수석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 있다. 길을 알려주지도, 지도를 펼쳐보지도 않는다. 그냥 앉아 있다. 조용히 따라와 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 사람들에게는 조수석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평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여지없이 한숨을 쉰다.

  • - “네가 여기가 좋다고 해서 왔는데, 생각보다 별로네. 그래도 네가 고른 거니까 그냥 먹자.”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는다. 그저 실망스러운 기색을 비치며 은근히 당신의 선택을 탓할 뿐이다. 이 ‘은근히’가 독하다. 대놓고 욕을 하면 “그럼 니가 골라”라고 되받아칠 수 있다.

그런데 “그래도 네가 고른 거니까 그냥 먹자”는 반박할 수가 없다. 겉으로는 양보하는 말이니까. 실망했다는 뉘앙스를 깔아놓고, 그 위에 양보라는 포장을 얹는 거다.

이 한마디를 들은 뒤의 당신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다음에는 더 잘 골라야지.’ ‘이 사람이 좋아할 만한 곳을 미리 알아놔야지.’ 당신은 그의 취향을 연구하기 시작한다.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어떤 분위기를 편하게 느끼는지. 조수석에 앉은 사람의 기분을 맞추기 위해 운전석에서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쓴다.

그런데 아무리 연구해도 정답이 없다. 이 사람의 기준은 상황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좋아한 식당을 다시 가면 “맨날 같은 데만 가냐”고 하고, 새로운 곳을 가면 “굳이 모험을 하냐”고 한다.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의 선택을 평가할 수 있는 위치에 서는 것 자체가 목적인 거다.

결정적인 교차로에서 발을 빼는 순간

연애가 깊어지고 결혼이나 동거처럼 삶의 방향을 크게 틀어야 하는 교차로가 나타나면, 이 사람의 조수석 고집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당신이 확신을 요구하며 결정을 재촉하면, 그는 갑자기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 - “나는 아직 잘 모르겠어.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맞춰갈 수는 있는데, 나한테 확신을 줘 봐.”

이 문장을 천천히 뜯어봐야 한다. “맞춰갈 수는 있는데”라는 말은 ‘내가 원해서 가는 게 아니라 네가 끌고 가니까 따라가는 거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나한테 확신을 줘 봐”는 더 기묘하다.

둘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확신을 당신 혼자 만들어서 가져오라는 소리다. 확신이라는 건 두 사람이 같이 달리면서 생기는 건데, 조수석에 앉아서 “내가 안심할 수 있게 니가 잘 몰아봐”라고 하는 거다.

관계라는 차를 여기까지 몰고 온 건 두 사람인데, 직진할지 내릴지 결정하는 몫은 당신에게만 남겨진다.

만약 이 관계가 잘못되면 그는 “네가 밀어붙여서 끌려왔을 뿐”이라며 언제든 가벼운 몸으로 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사람은 처음부터 안전벨트를 느슨하게 매고 탄 거다.

당신은 그 빈약한 확신마저 채워주기 위해 혼자 엑셀을 밟으며 애를 쓴다. 핸들을 쥔 손끝은 하얗게 질려가는데, 조수석의 그는 여전히 당신의 운전 실력을 채점하고 있을 뿐이다.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올라온다. 이 사람은 왜 떠나지 않을까. 조수석이 불편하면 내리면 되는데, 왜 앉아 있을까. 답은 간단하다. 조수석이 편하니까.

책임은 안 져도 되고, 결과가 좋으면 같이 누리면 되고, 결과가 나쁘면 “내 탓이 아니다”라고 할 수 있으니까. 이 관계에서 손해 보는 구조가 아닌 거다. 손해 보는 건 운전석에 앉은 당신뿐이다.

운전석에서 내리는 것도 선택이다

관계는 두 사람이 번갈아 핸들을 잡고 달리는 과정이다. 한 사람은 땀 흘리며 페달을 밟고, 다른 한 사람은 조수석에 앉아 풍경이나 감상하며 한숨을 쉬는 건 동행이 아니다.

그런데 당신이 이 관계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오래 운전석에 앉아 있으면, 핸들을 놓는 게 무책임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내가 놓으면 이 차는 어떻게 되지?’ ‘내가 여기까지 몰고 왔는데 이제 와서 세울 수 있나?’ 이미 쏟아부은 에너지가 아까워서 더 달리는 거다. 그리고 그 아까움이 당신을 운전석에 묶어둔다.

한 가지만 생각해 보자. 당신이 핸들을 놓으면 그가 잡을까. 아니다. 이 사람은 핸들을 잡느니 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다른 차의 조수석에 탄다. 당신이 아무리 오래 운전해도, 이 사람이 운전석으로 넘어오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뒤로 빠지는 사람의 핸들을 억지로 쥐여주려 애쓸 필요 없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부드러운 말에 속아 혼자 관계의 무게를 싣고 달리는 일은, 여기서 멈추면 된다.

차를 세우고 그를 내려주는 게 낫다. 빈 조수석을 곁에 두고 당신이 원하는 곳을 향해 달리는 게 훨씬 가볍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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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진 소장 저 | 북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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