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K리그는 기술 위주이고, J리그는 피지컬적인 걸 중시한다.”
양국을 모두 경험한 축구인의 말이 아니라면 ‘헷갈렸나 보다’ 싶을 정도로 통념과 반대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일본에서 1년 뛴 뒤 올해 K리그로 넘어온 브라질 수비수 패트릭(부천)은 헷갈린 게 아니라고 재차 확인해줬다. “고정관념과 다를 수도 있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분명 일본에서 피지컬적인 걸 중시하고 K리그는 기술 위주다.”
보통 일본 축구가 훨씬 기술적이라는 게 축구계의 통념이다. 한국 선수가 일본에 비해 선 굵은 플레이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맞대결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게 오랜 상식이었다. 이 전통은 축구가 처음 소개된 일제시대부터 시작돼, 역사상 첫 한일전이었던 1954년 월드컵 예선에서 한국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을 딛고 대승을 거둔 날부터 수십년간 이어졌다.
패트릭의 말은 한일 축구의 오랜 구도가 최근 들어 바뀌고 있음을 방증한다. 지난 시즌 강원FC 분석 코치로서 일본팀을 분석 및 상대했고, 이번 시즌에도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에서 K리그 대 J리그 경기들을 중계한 장영훈 해설위원은 “패트릭 선수가 말한 맥락을 다 알 수는 없지만 현재 J리그의 피지컬이 K리그를 앞서고 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피지컬의 현대적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과거에도 J리그의 기술축구 사이에서 선 굵은 축구를 시도한 일부 이단아는 있었다. 윤정환 현 인천 감독이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사간도스 돌풍을 일으켰던 것이 좋은 예다. 최근 달라진 건 일부 구단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리그 전체에 경합 강도를 중시하는 양상이 보인다는 것이다. 2024년 1부 승격한 마치다젤비아가 3위를 차지하면서 돌풍을 일으키자, 지난해부터 빠르고 강한 축구를 추구하는 팀들이 부쩍 늘어났다. 이제 ACLE에서 K리그를 상대하는 일본팀이 패스만 돌리다가 패배하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일본의 일부 구단이 아니라 리그의 흐름이 더 피지컬적인 축구로 향하는 건 자국 내 유행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일본 대표팀부터 순간적인 압박을 통한 공 탈취, 역습의 속도를 중시하는 축구로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을 잡은 바 있다. 이정효 수원삼성 감독은 “강도”를 강조하며 유럽이 매우 앞서나가고 일본이 이를 따라가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적으로 봐도 지난해 유럽 최강팀이었던 파리생제르맹(PSG)은 경기장 전반에 걸친 일대일 압박, 기동력의 우위를 활용한 실수 유발과 빠른 공격전환을 핵심 전략으로 삼았다.
“일단 전방으로 공을 보내서 상대진영의 혼돈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공을 따내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 요즘 J리그의 유행이다. 혼돈이라는 말이 운에 맡기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 편이 따낼 확률을 높이고 이후 어떻게 활용할지 전략이 세워져 있다. 예를 들어 오른쪽 측면을 통해 긴 패스를 연결하는 팀은 반대쪽 풀백을 은근히 상대 진영으로 올려 놓는다. 우리 공격수와 상대 수비수가 경합하다가 흘러나오는 공을 이 풀백이 잡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는 장 위원은, J리그가 단순히 롱 패스를 남발하는 게 아니라 신체경합이 격렬하면서도 전략적인 축구를 한다고 설명했다.
단적인 예가 J1리그의 롱 스로인 유행이다. 2024년 마치다의 소마 유키가 스로인을 전담하면서 큰 효과를 봤다. 산프레체히로시마는 나카노 슈토에게 스로인을 전담시켜 지난해 J리그컵 정상에 올랐다. 우승 후 나카노는 “야구 선수처럼 어깨에 얼음찜질을 한다. 어렸을 때 야구선수를 꿈꿨다. 내 어깨에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축구에서 쓸 일 없던 표현인 강견(强肩)이 이젠 한 팀에 한 명 정도 필요한 능력으로 간주되고 있다. 장 위원은 “중앙선을 조금만 넘으면 거기서 바로 롱 스로인하는 일본 팀들이 있다”고 설명한다. 일본 ‘스포츠닛폰’에 따르면 ‘대표팀도 롱 스로인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엔도 와타루, 마치노 슈토 등 유럽파면서 비거리가 긴 선수들에게 주목하는 상태’다.
▲ 피지컬은 덩치가 아니다, 비티냐가 세계 최고 수비형 MF인 이유
여기서 중요한 건 J리그팀이 피지컬과 경합을 중시한다고 해서 K리그보다 평균적인 체격이 커진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경기장 전체를 뛰어다니며 공을 따내기 위해서는 기동력과 빠른 판단력이 더 중요하며, 체격이 작아도 부딪쳤을 때 밀리지 않는 선수라면 축구에 필요한 피지컬은 다 갖춘 셈이다. 현재 세계 최고 수비형 미드필더 비티냐의 신장은 172cm, 그 전 세대 세계 최고였던 은골로 캉테의 신장은 168cm에 불과하다. 이들의 공통점은 스피드, 지구력, 판단력을 겸비했으며 더 큰 선수와 경합했을 때 낮은 무게중심을 활용해 밀리지 않는 요령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국제 무대에서 통하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여럿 배출하고 있는데, 176cm 사노 가이슈(마인츠05)가 가장 앞서나가고 있으며 178cm 이와타 도모키(버밍엄시티)와 180cm 다나카 아오(리즈유나이티드)는 다소 고전 중이지만 빅 리그에 도전할 정도 기량은 보여주고 있다. 최소한 분데스리가나 잉글랜드 2부 수준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플레이가 통한다. 기동력과 빠른 판단, 경합 시 적극적인 자세를 통해 덩치의 열세를 지운다.
▲ 소득 없는 기술축구, K리그의 모습은 '일본의 과거'를 닮았다
일본이 강한 경합 위주로 축구한다고 하면, 구식 축구로 회귀한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술에 천착하던 지난 20여 년의 노력을 깡그리 무시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꾸준히 향상시킨 기본기와 기술적 역량 역시 일본 선수들의 경쟁력에 밑바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장 위원은 “해외 리그에 진출한 일본 선수들의 양상을 보면, 과거 나카타 히데토시처럼 천재적인 선수 몇 명은 여전히 배출한다. 달라진 건 그 아래 수준에서 유럽 경쟁력 있는 선수들이 양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과 강한 경합 능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최전방과 중앙 미드필더 위치에서 다수 추가됐다는 게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고 설명한다.
이 점에 주목해 보면, 한국이 “기술 위주”라고 말한 패트릭의 말은 마치 일본의 10여 년 전을 묘사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K리그 상위권 구단들은 뛰어난 발기술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상대 진영으로 공을 찔러넣지 못해 ‘U자 빌드업’을 하다가 답답한 마음으로 경기를 마치는 경우가 많다. 일본은 그 단계를 이미 지나, 기술에 격렬함을 추가하는 단계로 돌입했다. 최근 ACLE에서 한국팀은 일본팀 상대로 고전했는데 리그 스테이지에서 2승 2무 5패로 상대전적 열세였고, 16강에서 맞대결한 두 한국팀 모두 탈락했다. 경기 양상은 ‘K리그 팀이 경기운영과 기술적으로 밀리지 않는 듯 보였으나 문전에서의 위력과 경기 막판 지구력에 밀리며 탈락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과거 K리그 팀이 일본 상대로 강세를 보이던 양상을 그대로 뒤집은 듯하다.
사진= 풋볼리스트,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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