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누리 새롬초등학교 교사
교단에 선지 10년. 새 학기 새 교실 문 앞에 서는 일은 여전히 나에게도,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낯선 긴장이다. 우리는 행정적 절차에 의해 '3학년 10반'이라는 칸 안에 수동적으로 배정된 사이일 뿐이니 말이다. 아무런 사전 공감대나 약속 없이 숫자 아래 묶인 이 관계가 아이들에게 바로 소속감을 주기는 어려울 터. 나는 이 거리감을 좁히고, 아이들을 수동적인 '10반 구성원'에서 능동적인 '우리반 주인공'으로 바꾸어 줄 학급 브랜딩 방안을 고민한다.
'학급 브랜딩'이란 우리 반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정하고, 이를 문화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우리 반 하면 떠오르는 가치와 이미지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학급의 브랜드가 되고, 그것이 다시 아이들에게 소속감과 공동체 의식으로 돌아가는 과정. 이를 위해 나는 3월의 '학급 세우기 주간'을 활용했다.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일주일 가량 가진 뒤, 아이들에게 주문했다. "우리는 10반 대신, 우리만의 비밀 코드 같은 이름을 지을 거야." 스토리텔링에 몰입하는 열 살 아이들의 눈이 금세 반짝인다.
숙제로 내준 학급 이름 공모 결과, 칠판에는 저마다의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는 의미 있고 귀여운 후보작이 가득 적혔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평화로운 하늘반', '밥알처럼 뭉친 따듯한 햇반' 등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눈에 띈 이름은 '누쫀쿠'반이었다. 지난 해 디저트계를 휩쓴 '두바이 쫀득 쿠키'를 잘못 썼나 싶었지만, 그 아래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깜찍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누리 선생님과 쫀득한 쿠키들'의 줄임말이란다. '쫀'의 쌍자음과 '쿠'의 거센소리 조합이 주는 리듬감이 강렬했던 탓일까. 아이들은 자석에 이끌리듯 누쫀쿠라는 이름에 표를 던졌고, 그렇게 우리 반은 전국 어디에도 없는 3학년 '누쫀쿠반'이 되었다.
브랜딩은 마스코트 만들기 활동으로 탄력을 받았다. 누쫀쿠반의 얼굴인 마스코트 공모전을 열겠다고 하니, 열 살 아이들의 상상력은 날개를 달았다. (개성적인 우리처럼) 다양한 모양의 쿠키 상자를 든 고양이 '누쫀냥', 마시멜로우처럼 쫀득하게 붙어있는 '모찌' 등 귀여운 후보들이 쏟아졌다. 나는 생성형 AI를 활용해 아이들이 그려온 원작의 감성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깜찍한 디지털 이미지를 만들어 주었다. 삐뚤빼뚤한 선의 그림이 화면 속에서 생명력을 얻은 캐릭터로 나타난 순간, "마법 같아요!"라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AI를 교실에 들여온 이래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
최종 당선된 마스코트는 강아지 포켓몬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누쫀쿠멍'이었다. 동글동글 귀여운 쿠멍이의 모습에 아이들은 벌써 마음을 다 뺏긴 듯했다. "이 아이로 이제 뭐 해요?"라는 물음에 나는 질문의 화살표를 다시 아이들에게 돌렸다. "그건 너희의 아이디어에 달렸지!" 아이들은 저마다 빛나는 생각들을 쏟아냈다. "저희가 수업 잘 참여하면 쿠멍이한테 쿠키 점수를 주세요!", "쿠키가 많이 쌓이면 진짜 쿠키 만들기 수업을 해요!", "가방에 달 수 있는 쿠멍이 굿즈를 만들어요!" 학급은 교사 혼자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요즘 교육 현장에서는 자신만의 스타일과 교육철학으로 아이들의 잠재된 다채로운 빛깔을 발견해 내는 선생님들의 학급 브랜딩 사례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우리 반은 이런 반이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이러한 노력은 결국 학교라는 공간을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힘으로 이어진다. 새 학년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안고 교실에 온 아이들은 어느새, 재미있는 상상을 통해 주도적으로 학급을 운영하는 쫀득한 쿠키들이 되어가고 있다. 스무 명의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 갈 달콤 쫀득한 일 년이 기대된다. /김누리 새롬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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