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오리지널 대비 40%대로 낮추고 신속등재·사후평가 체계를 도입하는 약가 개편에 착수하면서 제약산업 전반이 충돌 국면에 들어섰다. 표면상 쟁점은 약가 인하지만, 본질은 건강보험 재정과 산업 투자 기능이 분리된 ‘재정 칸막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개편은 제네릭 약가를 기존 53.55% 수준에서 40% 초중반대로 인하해 재정을 절감하고, 신약에는 신속등재와 사후평가를 결합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정부는 이를 통해 재정 효율성과 혁신 유인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동일한 재원을 전제로 ‘절감’과 ‘투자’를 병행하려는 정책 설계에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약가 인하로 확보한 재정이 산업 혁신으로 충분히 환류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비용 축소와 투자 확대를 동시에 추진하는 구상이 상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산업 현장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연홍 약가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약가 인하 영향이 현실화되면서 기업들이 R&D와 설비 투자 축소, 신규 채용 중단, 생산 축소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채산성이 낮은 의약품의 품목 허가를 자진 취소하거나 생산라인 축소를 검토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며 약가 인하가 산업 전반의 체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번 정책은 외부 변수와 맞물리며 부담을 키우는 모습이다. 중동 사태로 유가와 환율이 상승하면서 원료의약품 비용이 증가하는 가운데, 약가 인하까지 병행되며 산업 전반의 비용 압박이 확대되고 있다. 정책 변수와 대외 환경이 동시에 작용하는 양상이다.
반면 재정 측면에서도 부담이 확대되는 흐름이다. 국내 약제비 비중은 전체 의료비의 20.5%로 OECD 평균(약 14%)을 크게 웃돈다. 1인당 약제비 역시 구매력 기준 969달러로 OECD 평균보다 약 47%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약제비 구조의 비중과 수준이 모두 높은 상황에서 재정 효율화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는 가격 경쟁이 제한적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동일 성분 제네릭이 다수 존재하지만 가격 차이는 크지 않은 수준이다. 상품명 처방 중심 체계가 유지되면서 저가 의약품으로의 대체가 활성화되지 않는 영향으로 풀이된다. 0.79%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대체조제율과 달리 주요 선진국은 80% 이상을 유지, 대체조제가 사실상 활성화되지 못한 모습이다.
이에 따라 가격 인하에 앞서 제도 개선 필요성이 함께 거론된다. 상품명 처방 중심 체계로는 동일 성분 의약품 간 경쟁이 제한되는 만큼, 성분명 처방 도입을 통해 가격 경쟁을 유도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성분명 처방이 도입될 경우 연간 약 7조9000억원 수준의 약제비 절감 효과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책 설계의 또 다른 축인 ‘인센티브’ 역시 실효성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R&D 투자 비율을 기준으로 ‘준 혁신형 제약기업’에 약가 우대 도입을 검토 중이지만, 실제로는 약가 인하 폭을 일부 완화하는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약가를 덜 깎는 방식’에 가깝다는 시각도 나온다.
재정 절감과 혁신 확대를 동시에 추구하는 정책이 두 목표 모두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정 절감 효과는 기대되지만, 해당 재원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투자로 직접 이어지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 혁신 유인은 제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신약 정책이 더해지며 약가 체계 전반의 변화가 동시에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희귀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기존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단축하고, 사후 평가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정 절감과 지출 증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재정 운용 변수도 함께 커지는 상황이다.
초고가 신약의 효과 불확실성도 함께 언급된다. 킴리아주의 경우 약 3억6000만원의 치료비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약 60%에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건강보험 재정 약 766억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가 약제의 임상적 성과와 재정 효율성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정부는 실사용데이터(RWE)를 활용한 사후 평가 체계를 강화해, 실제 임상 성과에 따라 약가를 조정하거나 급여 적용 범위를 재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등재 이후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효과가 미흡한 약제에 대해 약가 인하 또는 급여 제외까지 검토하겠다는 구상이다.
반면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등 시민단체는 신속등재 확대가 경제성 평가 기준 완화와 맞물릴 경우 제약사 가격이 충분히 통제되지 않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사후 평가의 구체적 기준과 집행 방식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먼저 도입될 경우, 약가 통제 기능이 약화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정책 갈등의 배경에는 재정과 산업이 동일한 건강보험 재정 틀 안에서 맞물린 구조로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비용 통제의 대상이지만, 제약산업은 그 재정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구조인 만큼 약가를 비용 중심으로만 접근할 경우 산업 투자 여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 효율성과 산업 육성 간 균형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정책 설계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형훈 보건복지부 2차관은 “국민 보험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정책의 기본 원칙”이라면서도 “약가 제도 개편 과정에서 제약산업과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재정 효율성과 산업 육성 간 균형을 함께 고려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순한 균형이 아니라 구조 개편 필요성에 무게가 실린다. 가격 인하 정책과 혁신 유도 정책이 별도로 작동하는 한 두 목표 간 충돌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 개편 논쟁의 핵심은 단순한 가격 수준이 아니라 재정·시장·혁신이 분리된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같은 구조를 유지한 채 가격만 조정하는 방식으로는 정책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K바이오 도약의 해법 역시 가격이 아니라 구조 개편에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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