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를 통한 에너지 교역에 의지하는 국가가 호르무즈 해협 안보를 책임져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며 동맹국을 다시 압박하고 나섰다.
한국과 일본 등 동맹국들이 호르무즈 해협 상선 호위 동참에 선을 긋거나 확답을 하지 않자 '책임론'을 들고 나선 것이다.
이런 가운데 19일(이하 현지시간)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워싱턴DC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미일정상회담을 갖고 호르무즈 해협 대응 등 중동 문제와 경제 협력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하기로 해 어떤 결론이 나올지 관심이 모아진다. 만일 일본이 어떤 형태로든 호르무즈 해협에 자위대를 파견한다면 우리 정부도 이를 피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국내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 "호르무즈 해협, 이용 국가가 책임지게 하면 어떨까"
트럼프 대통령은 18일 자신의 SNS에 "우리가 테러국가 이란의 잔재를 제거해버리고 그 해협의 책임을 이용 국가가 지도록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다"며 "그러면 반응 없는 동맹 중 일부가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적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일본 등 7개국을 대상으로 호르무즈 해협 상선 호위에 군함 파견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럽 동맹국은 대부분 반대 입장을 밝혔고, 한국과 일본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전날에는 "도움이 필요없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게시물에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해제하는데 관여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이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는 상당 부분 한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 국가로 수입되고 미국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작다. 즉,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낮으니 의존도가 높은 나라들끼리 해협의 통행 안전을 책임지라는 취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동맹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돕는 데 나서야 한다'는 뉴욕포스트의 사설을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올리기도 했다.
결국 '나는 손해볼 것 없다'는 무책임한 태도로 동맹국을 향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다카이치 정상회담…전세계 美동맹국 이목집중
이런 가운데 19일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다카이치 총리의 미일정상회담에 미국의 동맹국들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일본이 미국의 지원 요구에 어떤 대응 카드를 내놓느냐가 기준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호르무즈 해협 통과 원유 의존도와 주일미군 주둔 등 미국의 안보 기여를 거론하며 자위대 파견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로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일본의 '평화헌법'을 앞세워 전투가 진행 중인 지역에 자위대를 파견하는 것에는 법적 장벽이 있는 만큼 '후방 지원'을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조사·연구 목적의 자위대 함정 파견이나 이란전 종료 뒤 호르무즈 해협의 기뢰 제거 활동 등을 제안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전쟁 가능국가'를 지향하고 있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 기회를 빌미로 자위대를 적극적으로 파견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다.
美전문가 "한일, 트럼프 파병 요구에 '노' 하기 어려울 것"
미국 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트럼프 대통령의 호위함 파견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기업연구소(AEI) 잭 쿠퍼 선임연구원은 18일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팟캐스트에 출연해 "유감스럽게도 일본과 한국이 그냥 '노(No)'라고 말할 위치에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 국가들이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 않느냐"라면서 "일본과 한국이 일정한 기여를 제공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다만 주한미군과 주일미군 전력이 중동으로 차출되고 있는 상황이라 한국과 일본의 지원 결정이 정치적으로 어려운 문제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크리스티 고벨라 CSIS 선임 고문도 19일 백악관에서 열리는 미일 정상회담을 거론하면서 "이란 사태로 의제가 바뀌고 있고 이제 논의는 일본이 무엇을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며 "어떤 의미에서 충성심을 알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벨라 고문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일본에 대해 미국의 차세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인 골든돔에 참여하거나 이란 전쟁에서 소진된 재고 보충을 위한 미사일 생산에 기여하는 방안 등을 거론했다.
이기헌-김병주-김준형 "파병 절대 안돼"…국힘 일각선 "파병 찬성"
국내 정치권은 '파병 불가' 목소리가 높다.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16일 페이스북에 '파병 반대' 입장문을 올린데 이어 16일과 17일에는 주한 미국대사관 앞에서 1인 시위를 했다.
이 의원은 18일에도 페이스북에 "외부의 압박이 아닌 오로지 '국민의 안전'과 '우리의 실질적 국익'만을 기준으로 자율적이고, 냉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같은 당 김병주 의원은 18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 에 출연해 '일본이 자위대 파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와 관련해 "일본이 파병을 한다면 우리에게 대단한 압박히 가해지겠지만, 우리는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시그널>
김 의원은 "미국이 일본에 원하는 건 기뢰를 제거하는 소해함이다"며 "자위대의 소해함이 가더라도 위험한 지역에 있지 않고 아덴만 같은 안전한 지역에 있다가 기뢰가 설치된 후에 투입돼도 된다"고 설명했다.
반면 우리가 파병을 해야 할 경우 호르무즈와 가까운 아덴만 일대에서 해적소탕 작전을 하고 있는 청해부대가 투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청해부대는 해적 소탕에 최적화된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호르무즈에 들어가면 새로운 위협"이라면서 "드론이나, 기뢰 위험, 해상 테러에 대비한 무기체계가 돼 있는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래서 일본의 결정은 참고만해야 한다"면서 "전쟁은 어렵고 힘든 것이다. 우리가 가급적 발을 넣어서 안 된고,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의원은 19일 시사IN 유튜브 〈김은지의 뉴스IN〉에서 "이재명 정부를 도우려면 민주당이 더 세게 반대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지금 호르무즈 해협에 우리나라 국적의 선박 40척 정도가 있는데 한두 달 후에도 전쟁이 계속됐을 때 이란하고 협상을 해야 된다"며 "지금은 우리가 파병을 할 게 아니라 이란하고 협상 통로를 계속 열어놔야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의힘 내에서는 파병 찬성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19일 국회에서 중동 사태 관련 '정유업계 대표 정책간담회'에서 "이재명 정부는 중국 등 주변국과 국내 반미 세력의 눈치를 그만 보고 선제적으로 우리 군이 우리 배를, 우리 국민을 호위하겠다는 선언을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안철수 의원 역시 적극적 파병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냈다.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파병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경우, 이는 경제·통상 분야의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파병 요청을 안보 전략자산 확보의 기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썼다.
안 의원은 "적극적 참여를 조건으로, 신속한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명시적 확답을 받아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660개 시민단체들, 시민 1715명 공동시국선언 "파병은 전쟁 동참이자 헌법 위반"
시민사회단체들의 파병 반대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18일에는 660개 단체와 시민 1715명이 공동시국선언에 나섰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자주통일평화연대, 정의당 등이 나섰다.
이들은 공동시국선언문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은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이란 침공은 타국의 영토적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무력으로 위협하지 못하게 한 유엔 헌장 제2조 4항을 철저히 유린하는 불법 행위이며 국제사회가 형성해 온 최소한의 규범마저 짓밟은 전쟁범죄"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호르무즈 해협에 해군을 파견한다면 이는 명백한 전쟁 동참으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못 박은 헌법 5조 1항에 위배되는 위헌행위"라며 "정부는 군인과 교민의 생명을 앗아가고 국제 관계의 악화는 물론 경제적 파국으로까지 이어질 파병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권영국 대표는 파병 요청에 대해 "평화를 위한 협력 요청이 아니라 국제법을 위반한 침략 전쟁에 동참하라는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전쟁의 공범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최정민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도 "이미 이 전쟁은 끝없는 장기전에 들어갔다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이 장기전의 늪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도 낮 12시 종로구 옛 주한일본대사관 인근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제1744차 수요시위에서 "최소한 전쟁 기간에는 무기 수출을 중단해야 하고, 더욱이 중동에 군함을 파견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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