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비늘을 번뜩이며 거친 물살을 가르는 바다의 전령사가 돌아왔다. 한때는 이름값도 제대로 못 하고 천대받던 생선이었지만 지금은 맛과 가격을 모두 잡은 ‘끝판왕 횟감’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숭어회.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저렴한 가격 덕분에 대중적인 횟감으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흥미로운 서사와 반전의 역사가 숨어 있다. 지금 이 순간, 가장 정직한 맛과 뛰어난 가성비를 동시에 보여주는 바다의 선물이다. 유튜브 채널 ‘생선선생 미스터S’에서는 이러한 숭어에 대해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달했다.
숭어 이름 뜻.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이름의 유래부터 남다르다. 숭어의 ‘숭(崇)’자에는 맛이 뛰어나다는 의미를 담아 숭상하거나 숭배한다는 뜻의 글자가 붙었으며, 조선시대 문헌에는 빼어나다는 뜻을 가진 ‘수어(秀魚)’로 기록됐다. 하지만 오늘날 이 오리지널 숭어는 개숭어나 보리숭어라는 천대받는 이름으로 불리는 처지다. 오히려 가짜라는 뜻의 접두사가 붙은 사촌격인 가숭어가 시장에서는 ‘참숭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는 기묘한 명칭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이름에 얽힌 억울한 사연은 서양 고전 음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슈베르트의 유명한 연주곡 ‘송어(Die Forelle)’가 일제강점기 시절 번역 오류로 인해 수십 년간 숭어로 잘못 불렸던 해프닝이 대표적이다. 숭어 입장에서는 명의 도용에 번역 오류까지 겹친 셈이다.
숭어와 가숭어 구분법.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가숭어와 숭어를 구분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눈의 색을 살피는 것이다. 눈의 공막이 하얀색이면 숭어이며, 황달기가 있는 것처럼 노란색을 띠면 가숭어다. 꼬리지느러미 역시 숭어는 V자로 날렵하게 파였으나 가숭어는 뭉툭한 일자형에 가깝다. 생존 습성에서도 두 어종은 확연히 갈린다. 가숭어는 환경 적응력이 뛰어나고 연안에서 알을 낳는 특성이 있어 하동군 등에서 대량 양식이 이뤄진다. 반면 오리지널 숭어는 깊고 먼 바다에서 산란하는 습성 탓에 인공적인 산란 유도가 어려워 양식이 불가능하다.
맛있는 숭어 고르는 법.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우리가 시장에서 만나는 숭어는 모두 자연산인 셈이다. 특히 보리가 익는 계절인 5~6월에 잡히는 숭어를 ‘보리숭어’라 부르는데, 이때는 산란을 준비하며 살이 꽉 차올라 맛이 절정에 달한다. 맛있는 숭어를 고르려면 눈꺼풀에 뿌연 지방이 덮인 개체를 찾는 것이 요령이다.
비슷하게 생겨서 많이 혼동하는 '가숭어회'와 '참돔회'.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맛의 측면에서 제철 숭어는 찰진 식감과 산뜻한 지방감을 동시에 제공한다. 선홍빛 혈압육의 생김새가 도미와 비슷해 과거에는 고가의 도미로 둔갑해 팔리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숭어 소화기관 '위'. / 유튜브 ‘생선선생 미스터S’
회를 즐길 때 반드시 챙겨야 할 별미는 ‘밤’이라 불리는 소화기관인 위다. 뻘을 삼키고 뱉으며 유기물을 걸러 먹는 습성 때문에 발달한 이 부위는 닭똥집과 흡사한 꼬득꼬득한 식감을 내며, 소금기름장에 찍어 먹으면 그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숭어는 세계적으로도 귀한 식재료로 통한다. 가숭어의 알은 한국에서 고가의 ‘어란’ 재료가 되지만, 일본의 3대 진미인 가라스미나 유럽의 보타르가는 오리지널 숭어의 알로 만든다. 한국에서는 포 뜬 살을 피로 활용한 숭어만두나 거제도의 숭어국찜, 북한 대동강의 숭어국 등 다채로운 향토 음식으로 이 생선을 즐겨왔다. 일본에서도 숭어는 성장에 따라 이름이 변하는 ‘출세어’로 불리며 에도시대에는 최고급 생선으로 대접받았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부침을 겪기도 했다. 일본에서 한때 전갱이, 고등어와 더불어 가장 즐겨 먹는 생선이었던 숭어는 메이지 시대 이후 도시화로 인한 수질 오염 때문에 악취가 나는 개체가 늘어나며 가치가 급락했다. 이는 한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감성돔이 일본 일부 지역에서 ‘똥고기’라 불리며 취급받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지저분한 물에서 잡힌 숭어는 냄새가 나서 못 먹는다는 인식은 한일 양국이 공통적이다. 다행히 최근에는 수질이 개선되어 다시 다양한 방식으로 숭어를 즐기는 추세다. 특히 일본에서는 숭어의 정소인 ‘시라고’를 복어의 그것처럼 구워 먹거나 튀겨 먹는 독특한 문화가 있다.
치솟는 물가 속에서 숭어만큼 뛰어난 맛과 합리적인 가격을 동시에 잡은 생선는 드물다. 쫀득한 식감 뒤에 숨겨진 풍부한 이야기와 함께 이번 주말에는 숭어 한 접시로 봄의 미각을 깨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숭어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곁을 지키는 가장 친근하고도 고마운 국민 생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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