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선 선임기자 = 서울 성북구 천장산 자락 아래에 있는 의릉은 조선 20대 경종(1688∼1724)과 두 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1705∼1730)의 능이다. 경종은 숙종과 희빈 장씨의 아들이다. 그의 재위 기간은 4년이었다. 경종 시기에는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치열했다. 30대 후반에 세상을 떠난 그의 뒤를 이어 이복동생 영조(연잉군)가 즉위했다.
의릉은 볼거리도 많고 사연도 많다. 경종의 무덤이 조성되고 나서 6년 뒤 선의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래쪽에 왕비의 능이 만들어졌다. 현장의 안내판은 "능이 위치한 구역의 폭이 좁기 때문에 두 능을 위아래로 둬 좋은 기운이 흐르는 맥을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처럼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능을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이라고 한다. 조선왕릉 중 17대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인 여주 영릉(寧陵)과 서울 의릉에서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또한, 의릉에서 제향을 지내는 건물인 정자각은 정전 양옆에 한 칸씩 익랑(翼廊)을 추가한 모습이다.
무덤을 지키는 석물도 눈길을 끈다. 경종 능침의 무석인(무인 모습의 석물)의 뒷모습이 이채롭다.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의 조선왕릉 누리집에선 경종 능침의 무석인이 두른 표범가죽은 둥글게 말린 꼬리까지 표현돼 있다고 적고 있다. 취재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능침에 올라가 보니 실제로 꼬리가 둥글게 말린 모양이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또 하나 시선이 가는 것은 선의왕후 능침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석물인 석호다.
석호는 엄숙한 분위기의 조선왕릉에서 때로는 친근감을 갖게 하는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해학적으로 보일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무게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 선의왕후 능침의 석호는 크고 동그란 눈을 하고 입을 약간 벌린 것처럼 보인다. 다른 조선왕릉의 석호와는 달리 꼬리가 등 위까지 길게 올라와 있다.
능침이 있는 언덕은 경사가 심하지 않아 완만한 느낌을 준다. 능침 주변 뒤쪽으로 난 길을 걷다 보면 회색빛 건물이 보인다. 옛 중앙정보부 강당으로 국가등록문화유산이라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 곳이다.
의릉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싶다면 의릉 옆에 있는 역사문화관을 방문하는 것도 좋다. 의릉은 1960년대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청사가 의릉 권역 내에 세워져 상당 부분이 훼손됐다고 한다. 1995년 청사가 옮겨갔고 2003년부터 복원 공사를 해 현재의 모습이 됐다. 역사문화관에선 의릉의 역사를 연대기와 전시물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옛 중앙정보부 강당과 7·4 남북공동성명에 대한 영상물도 있다.
이곳에는 '석관동 석호와 석양이'라고 적힌 작은 코너가 있다. '석호와 석양이'는 300여년간 의릉과 성북구 석관동을 지켜온 상징물로 제작된 캐릭터라고 적혀 있다. 문화유산은 이처럼 지역과 연계되는 특성이 있다. 지난해 가을 석관동에선 제7회 의릉 문화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조선왕릉이라고 해서 그 역사가 과거에 멈추지는 않는다. 현재에 이르기까지 변화하면서 공존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지금의 모습을 통해 문화 또는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을 돌아볼 수 있는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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