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정부가 엔비디아에 쏠린 글로벌 인공지능(AI) 자원 권력에 맞서기 위해 향후 5년간 50조원을 투입, 국산 AI 반도체 생태계 육성에 나선다. 저전력·저비용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축으로 ‘토종 AI 반도체’ 유니콘을 키워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 의존 구조를 탈피하겠다는 구상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금융위원회는 17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산업은행, 국내 AI 반도체 기업 대표들과 함께 ‘K-엔비디아 육성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민관 합동 간담회를 열고 이 같은 계획을 공식화했다.
간담회에는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박상진 한국산업은행 회장을 비롯해 리벨리온, 퓨리오사AI, 하이퍼엑셀, 딥엑스, 모빌린트 등 국내 AI 반도체 5개사 대표들이 참석했다.
현재 글로벌 AI 시장은 엔비디아 GPU 등 소수 업체의 특정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인 구조다. 고성능 GPU의 막대한 전력 소모와 높은 운용 비용은 AI 수요 확대의 병목으로 지적돼 왔다. 정부는 이 구조를 바꾸기 위한 해법으로 국산 NPU를 앞세운 ‘투트랙’ 전략을 제시했다.
배경훈 부총리는 “엔비디아로부터 GPU 26만장을 공급받는 협력을 통해 대한민국에 ‘AI 고속도로’를 구축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았다”며 “이제 글로벌 AI 생태계에서 승부를 보기 위해 저전력·고성능의 국산 NPU를 확산시키는 투트랙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K-엔비디아 프로젝트는 과기정통부가 제안해 금융위가 선정한 1차 국민성장펀드 메가 프로젝트 7건 가운데 핵심 과제로 포함됐다. 국민성장펀드는 글로벌 첨단전략산업에 대응해 정부와 민간이 5년간 총 150조원을 조성하는 초대형 펀드로, 이 가운데 50조원이 AI 및 반도체 분야에 배정된다.
금융위는 민간 자금과 연계한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5년간 50조원의 자금을 AI 반도체 분야에 공급할 계획이다. 올해에만 약 10조원 규모의 장기 인내자본을 투입해 데이터센터 등 초기 인프라 구축부터 운영, 스케일업(고성장 단계) 투자까지 단계별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전 세계 기술 패권 경쟁의 이면은 투자 전쟁”이라며 “과기정통부와 금융위가 각각 기술과 투자를 맡는 공동 작전으로 미래 AI 산업과 한국 경제를 책임질 국산 AI 반도체를 힘 있게 밀어주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AI 분야 2차 메가 프로젝트가 발굴되면 관련 투자 심사를 조속히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정책금융기관인 한국산업은행은 그간의 투자 경험을 토대로 AI 반도체 산업 생태계 조성의 전면에 나선다. 유망 AI 반도체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와 함께 팹리스(설계), 파운드리(위탁생산), 패키징 등 밸류체인 전반을 묶어 지원하는 방식이다.
박상진 산은 회장은 “산업은행은 현재까지 국내 AI 반도체 대표 기업 5곳에 1570억원을 투자했고, AI 반도체 특허 펀드를 별도로 조성하는 등 대규모 모험 자본 공급에 앞장서 왔다”며 “앞으로도 속도감 있는 금융 지원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AI 반도체 기업 육성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AI 반도체 유니콘 기업 5개, 기술 선도 강소기업 5개를 배출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단기적으로는 독자 AI 모델과 NPU 패키지의 상용화를 통해 주요 산업 분야에서 대규모 실증 사업을 확산하고, 중장기적으로는 피지컬 AI(현실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AI) 특화 초저전력 기술을 확보해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들은 “투자 재원이 적기에 마련된다면 현재 개발 중인 차세대 NPU 제품의 양산 시점을 앞당겨 글로벌 시장 진출의 골든타임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규모 자금 지원에 기대를 나타냈다.
과기정통부는 K-엔비디아 육성을 시작으로 국가 AI 컴퓨팅센터 구축,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기반 AI 서비스 육성, 피지컬 AI 관련 프로젝트 등 후속 메가 프로젝트 투자도 잇따라 추진할 계획이다.
배 부총리는 “AI 정책과 금융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대한민국 AI 산업의 엔진이 제대로 가동될 수 있다”며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도록 과기정통부와 금융위가 원팀이 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일부 국산 NPU 기업들이 나스닥 등 미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국민성장펀드를 통한 대규모 자금 지원이 정책 취지와 부합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해외 상장 기업에 국내 공적 자금이 대거 투입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배 부총리는 간담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성장펀드는 정부가 지분 참여를 통해 기업 성장에 함께하는 구조인 만큼, 궁극적으로는 국내 기업의 경쟁력 강화가 핵심”이라며 “산업 전반의 파이프라인 측면에서 개별 기업의 상장 전략과 국민성장펀드는 분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에 뿌리를 둔 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을 활용해 성장하는 것을 막기보다, 성장 과정 전반에서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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