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따른 고온·건조한 환경 조성…작은 불씨도 강풍 겹치면 급격히 번져
진화헬기 집중 투입 등 대응책 개선에도 역부족…산림체질 개선 등 병행 필요
[※ 편집자 주 = 경북 의성에서 발화해 동해안과 맞닿은 영덕까지 5개 시·군을 집어삼킨 '역대 최악' 경북 산불이 오는 22일 발생 1년을 맞습니다. 작년 3월 발생한 산불은 태풍급 속도로 번지며 여의도 면적 156배에 이르는 산지·해안을 초토화했고, 27명의 소중한 목숨도 앗아갔습니다. 3천명이 넘는 이재민들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이 잿더미로 변하는 순간을 무기력하게 지켜만 봐야 했습니다. 역대급 재난이 지나고 새봄을 맞은 현재 검게 타버린 산자락은 여전하고 피해 주민들 눈물은 아직 마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희망을 일구며 일상 복귀를 준비하려는 움직임 또한 곳곳에서 목격됩니다. 지구온난화 등 영향으로 일상이 된 초대형 산불에 더욱 체계적으로 대응하려는 정부·민간 차원의 노력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경북 산불 발생 1년을 맞아 당시 아픔을 기억하고 더 안전한 내일을 준비하기 위해 그날의 현장을 다시 찾아 집중적으로 취재한 기획 기사 5편을 송고합니다.]
(대구=연합뉴스) 황수빈 기자 = 지난 2월 21일 오후 경남 함양군 마천면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초속 20m 이상의 강한 바람을 타고 급속히 번지다가 약 44시간 만에 주불이 잡혔다.
이 기간 산림·소방 당국은 '산불 확산 대응 2단계'와 '국가소방동원령' 등을 잇달아 발령하며 진화 헬기 100여대와 장비 250대, 1천명이 넘는 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가까스로 불길 확산을 막았지만, 산불영향구역은 축구장 327개 면적에 달해 올해 발생한 첫 '대형 산불'로 기록됐다.
이번 산불을 두고 함양군 측은 "자체 인력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였으나 유관기관 지원으로 겨우 고비를 넘겼다"고 말했다.
작년 3월 '역대급 피해'를 남긴 경북 산불 이후 범정부적 차원에서 자연 재난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지만 올해 들어서도 울창한 산림과 생계 터전을 위협하는 산불은 그 시기를 가리지 않고 전국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후변화 등 영향으로 기온 상승·강수량 감소·건조한 대기 등 3가지 조건이 맞물린 환경이 조성되면서 산불이 갈수록 상시화·대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림청 조사에 따르면 올해 1월 1일부터 2월 25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은 157건, 피해 면적은 662.44㏊로 집계됐다. 이는 축구장 약 930개에 달하는 규모다.
조사 기간이 2월이 채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뤄진 것임에도 지난해 1∼2월(118건·90.22㏊)과 비교하면 발생 건수는 39건 늘었고, 피해 면적은 7배 이상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치명적인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산불 발생을 막기 위해 산림관리 등 분야에서 실질적인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 '4월의 강원도'는 옛말…'기후변화·산림 성숙화' 등이 원인
과거 국내에서 산불은 산림이 많고 강한 바람(양간지풍)이 부는 강원도에서 주로 발생했다. 이런 까닭에 '4월의 강원도'라는 말도 생겨났다.
하지만 최근 흐름을 살펴보면 이러한 공식은 깨진 지 오래다.
산림청에 따르면 2016∼2025년 발생한 대형산불(피해 면적 100㏊ 이상) 38건 가운데 강원도에서 발생한 경우는 13건(34%)으로 전체 건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대형 산불은 경북(12건), 경남(5건), 충남(3건), 전남·울산(각 2건), 대구(1건) 등에서 목격됐다.
발생 시기는 3∼4월이 28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늦겨울인 2월(5건)과 초여름인 5월(5건)에도 대형산불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가져온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꼽는다.
기온 상승 및 건조한 대기 등 영향으로 국내 산림이 쉽게 불에 붙고 불길이 빠르게 확산하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국내 연평균 기온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3년은 1973년 이후 역대 가장 더웠던 해 1∼3위로 기록됐다.
또 겨울철에 비가 내리는 날의 평균값은 과거보다 줄어들어 대기가 건조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기온이 오르면 땅속이나 나무 등이 머금고 있던 수분이 줄어들어 작은 불씨가 대형 산불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다. 여기에 강풍까지 더해지면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확산한다.
경북 산불 당시에도 의성군 한 야산에서 피어오른 불은 고온 건조한 날씨에 바싹 마른 나무와 낙엽 등을 연료 삼아 화세를 키웠고, 초속 10m 넘게 불어닥친 강풍은 몸집을 부풀린 '괴물 산불'을 80㎞ 떨어진 동해안까지 밀어붙였다.
최근 들어 산불이 지역과 시기를 가리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는 '산림의 성숙화'를 들 수 있다.
나무는 일정 세월이 흐르면 커지기 때문에 산림은 평균 나이가 성숙해질수록 불에 탈 수 있는 연료량이 많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0년 조사에서는 국내 산림의 경우 고령목으로 분류되는 41∼60살 나무가 전체의 38%(241만3천㏊)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10년 새 8%p가량 오른 수준이다.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대형산불이 과거와는 달리 경남, 경북 등 전국에 걸쳐 발생하고 있다"며 "산림도 성숙해지면서 전국이 대형산불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 경북산불 계기로 대응체계 개선됐지만 여전히 '역부족'
정부는 작년 3월 경북 산불 발생을 기점으로 대형산불 대응 체계를 손질해 초기 주불 진화에 초점을 두는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이에 산림청은 바뀐 대응 기조에 따라 지난달부터 산불 대응 단계를 기존 4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했고, 대응 단계가 간소화되면서 산불 1단계부터 인접 기관 지상 자원 절반을 산불 현장에 투입할 수 있게 됐다.
소방 당국 또한 산불이 확산할 때만 내리던 국가소방동원령을 진화 초기 단계부터 적극 발령하고 있다.
올해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또 다른 모습의 하나는 이전과 비교해 진화 헬기가 산불 발생 초기부터 집중적으로 투입되고 있는 것이다.
진화 헬기는 대용량 담수가 가능하고 험준한 산악지형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 초기 산불 진화에 필요한 핵심 장비로 꼽힌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올해 운용할 수 있는 진화 헬기는 기존 216대에서 325대로 대폭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또 올해 1∼2월 산불 한건당 투입된 헬기는 4.7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2.5대)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났으며 이에 따라 피해 면적당 주불 진화 소요 시간은 69% 단축되는 효과를 보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진화 헬기가 상황에 따라 효과를 충분히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한계점도 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지난달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에서 발생한 산불의 경우 강풍과 더불어 송전탑 등 시설물로 인해 헬기 기동이 어려웠던 탓에 불은 20시간 만에 겨우 꺼졌다.
전문가들은 상시화·대형화하는 산불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대응 시스템 개선뿐만 아니라 예방 활동 강화, 장기적인 산림 체질 개선 등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난 10년간 발생한 산불 가운데 62.7%는 입사자 실화나 논·밭두렁 소각과 같이 사소한 부주의에서 비롯된 것인 만큼 적극적인 예방 홍보 등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내 산림 절반 이상이 불에 잘 옮겨붙고 오래 타는 소나무로 이뤄져 활엽수 위주의 숲으로 가꾸는 체질 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해마다 징검다리식으로 산불이 번지는 사례가 반복하는데 이를 차단하기 위해 산림의 연료원을 바꿔야 한다"며 "국내 산림을 산불 차단에 효과적인 활엽수 위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내 산림 특성상 사유림이 많기 때문에 산주들이 활엽수 위주 조림을 선택할 수 있도록 유인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hsb@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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