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닥쳤다. 봄. 다가올 많은 일들이 옷도 입지 않은 채 약속 시간이 온 것처럼 분주하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린다. 학창 시절 들길 지나 냇물 건너며 학교 가던 생각이 떠오른다.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라는 동요도 생각나고 하얀 칼라의 세라복을 입고 앞서가던 윗마을 여학생들도 생각난다. 구령을 붙인 것도 아닌데 팔과 발을 맞춰 걷는 게 신기했다. 인사동에 개인전을 잡아 놓아 쫓기는 기분이다.
일전엔 큰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했다. 지난해 600만명이 관람해 입장객 수 세계 4위를 기록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 보고 인사동의 지인 개인전도 봤다. 오랜만에 만난 서울 친구와 식사하고 막걸리도 축였으니 긴 겨울 깨어난 새싹 같은 외출이었다.
예전의 골목 찻집은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귀천(歸天),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사건의 고문에 만신창이가 된 후 그를 간호하고 아내로 나선 문순옥 여사의 전통찻집이다. 예술인들이 들락거리던 그 집은 부부가 하늘 간 후 사라졌지만 문 여사의 조카가 다시 이룬 찻집이다.
천상병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 이상 순수가 뭔지 모르겠다. 코끝 찡하게 하늘을 본다. 봄날 하늘 가신 부모님이 세월 가며 더욱 그립다. 인생이 소풍일까.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천상병 ‘귀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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