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전세윤 작가] 몸. 신체. 육체. 살. 고깃덩어리. 고기.
다 같은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신체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한다. 세계는 늘 우주를 초과한다. 당신은 당신의 신체를 기관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고깃덩어리로 볼 것인가.
Paul McCarthy. 몸은 생물학적 기관인가 아니면 문화적 인공물인가? 신체에서 고기. 퍼포먼스에서는 고기라는 개념이 상당히 중요하다.
고기라는 개념은 살덩어리. 즉, 인간의 몸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느낌이다. 마치 육체로부터 인간성을 보는? 몸은 우리가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문화적, 연고적 등 매우 두껍게 둘러싸여 있다.
과거의 구상 미술(실물로부터 파생된, 특히 그림과 조각). 환영주의(실제를 재현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와는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이것들을 탈피하면서도, 탈피하기 이전에도. 항상 몸과 신체는 존재했다. 다만 고깃덩어리로 보는 시선이 탈피라는 이름으로 파묘 되었을 뿐이지.
캐롤리 슈니만 (1세대 페미니스트) - 내밀한 두루마리, 1975, 8분, 고기 - 충격 요법 - 도발적 퍼포먼스.
시놉시스를 보면.
캐롤리 슈니만은 시트만 걸친 나체의 상태로 관중들에게 자신이 쓴 ‘세잔, 그녀는 위대한 화가였다’라는 책을 읽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 다음 그녀는 시트를 벗고 자신의 얼굴과 몸의 윤곽을 따라 진흙으로 굵은 선을 그었다. 그녀는 긴 탁자에 올라서서 한 손에 책을 든 채 균형을 잡고 인체 모델 자세를 취하고서 글을 읽었다. 그리고 책을 떨어뜨리고는 자신의 질 속에서 천천히 두루마리를 풀어 꺼내어 거기에 쓰여 있는 글을 읽었다. 그 글은 그녀가 이전 작업을 위해 했던 여성주의적인 글들에서 발췌한 것이었다. ‘지금 이곳의 여성들’이라는 대규모 여성 청중을 위한 회화와 퍼포먼스 작업들로 이뤄진 전시에서 처음으로 발표된 이 작품은 음문 공간과 고대의 제례의식 등에서 여신의 속성으로 쓰였던 뱀같은 형태와 관련된 슈니먼의 작업이 절정에 달한 것이었다.
아무 이유 없이 도발적 퍼포먼스를 하지는 않았다.-
신화에서 뱀은 중요하다. 용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뱀과 용은 계속해서 꼬이면서 용 됐다가 뱀 되기, 그리고 뱀 됐다가 용 되기를 반복한다. 가장 오래된 뱀 - 선악과 - 사람을 홀리게 만들어서 정상적인 사람을 비정상으로 만든다.
그 다음으로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
한나 윌키 = 해나 윌크 (7~80년대 작업) - 관객에게 껌 나누어 주고 씹어서 자신에 몸에 붙이라 한다. 그 껌으로 여성 성기 모양 만들어 밑에 붙이고 대중매체에 나오는 여자처럼 포즈를 하게 만든다.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도식적인 이미지를 보여준다.
그 다음 작가들과 작업물들. 그리고 메타포. 키워드들을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특히 작가들은 하도 유명한 작가들인지라 내가 보여주는 것보다는 스스로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 칼럼이 여러분의 찾을 권리와 발견하는 즐거움을 침해하는 방향이 아니었으면 한다. 나만의 디깅이 아닌 여러분의 디깅이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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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 시카고. / 마크 퀸 – 셀프. / 옷 - 몸에 대한 은유로 자주 활용한다. / 바바라 크루거 - 너의 몸은 전쟁터다. / 장소특정작업 - 장소 특정적 작업 Site-Specific. / 채프먼 형제 - 절단된 신체 일부 형상화. / 재닌 안토니 - 유레카(1993), 갉기(1992), 선 그리기(2003). / 곤잘레스-토레스. / 안들레스 세라노 - 시체 공시소 1992. 인간을 제거하는 작업 -> 코로나바이러스는 인간은 사과, 소나무 또는 컴퓨터와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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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본론으로 들어와 내가 현재 생각하는 ‘몸. 신체. 육체. 살. 고깃덩어리. 고기.’.
결론적으로 신체는 언제나 늘 언어를 넘어선다.
즉, 신체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한다.
- 우리가 예술작품, 미술을 하는 이유.
- 신체는 늘 언어보다 크다
- 신체>언어
- 예술 작품은 언제나 언어를 추구한다.
- 우리는 이미 우리 몸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 진짜 몸은 사유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사유를 정지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 불편하고 보기 힘들었던 어떤 것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몸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광고,매체?) 을 통해서 이득을 얻는 사람은 누구일까?
과연 나는 나의 몸을 직시할 수 있는가 -> 불가능하다.
하지만 신체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한다. 세계는 늘 우주를 초과한다. 그 신체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언어를 초과하며 우리는 늘 우주를 초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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