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 20세기 전쟁의 비극과 절망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유럽인들에게 깊은 허무를 안겨주었다. 합리적이라고 믿었던 과학과 이성이 대량 살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목격하며 많은 사람은 '삶에 고정된 의미가 있는가?'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게 됐다. 이 절망의 끝에서 당시 유럽의 최고 철학자들인 사르트르, 카뮈 그리고 하이데거 등이 실존주의의 체계를 세운 것이다.
그 이후 실존주의는 철학 사상을 넘어 현대 서구인의 가치관과 문화 전반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국가나 종교,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나다운 삶'을 추구하는 현대적 개인주의의 철학적 토대가 된 것이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나 거대 담론을 부정하고 개별적 맥락을 중시하는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가교 역할을 했다. 그래서 서구 사회에서는 사회 규율이나 체제, 그리고 제도가 만들어내는 규율이나 사회적 의미보다 개인의 '실존적 주체'에서 의미와 행복을 찾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실존적 개인주의로 발전하게 되었고 결국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자신의 삶과 행복을 추구하며, 다른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생각 또한 인정해 주는 토대가 된 것이다.
한국의 '보편주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볼 때 실존주의는 매우 흥미로운 대조가 된다. 한국 사회가 '평균과 체면'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다면 실존주의는 그 감옥의 창살을 깨고 "개인의 주체적인 단독성"을 회복하라는 외침과도 같다.
체면 문화가 '남의 눈'이라는 외부적 본질에 나를 맞추는 것이라면 실존주의는 그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이자 '주체적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본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실존주의가 '신도 없고 국가도 나를 책임져 주지 않는다'는 절망 속에서 받아들여졌으며, '내가 나를 선택한다'는 프랑스 철학자 사르트르의 메시지는 지식인과 청년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얻었다.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정착, 그리고 집단의 부속품이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삶의 가치를 찾으려는 경향은 실존주의적 태도의 연장선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서구 사회에서 실존 철학은 거대 담론이나 성공에 연연하지 않고 최소한의 실존에 만족하는 '실존주의적 삶의 태도'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불합리하고 물질주의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자신만의 평화와 행복을 찾는 실존적 삶의 방식을 찾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 현대 한국 사회의 유교와 자본주의의 치명적 결합
유교는 원래 도덕 공동체를 지향했다. 과거의 농경 위주의 사회와 봉건주의적 사회에서는 이것이 최고의 사회적, 문화적 시스템이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들은 오랜 시간 그 시스템 안에 살면서 이것이 무의식적으로 한국적인 것으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것은 매우 극명하게 조선시대에 중국에서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유교는 현대 한국에서는 도덕 없는 경쟁 시스템의 윤활유가 된 것이다.
한국의 과소비는 쾌락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유교적 체면 구조 위에서 체념한 개인이 선택한 생존 전략이다.
이 현상을 유교적 철학적으로 보자면 공자가 주장하는 윤리가 자본주의적 병폐와 매우 교묘하게 결합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즉 현대 한국 사회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유교적 의식에 자본주의가 접목되어 덕은 사라지고 비교만 남았으며 체념은 미덕이 되었고 소비가 그들의 체면을 보여주는 언어가 된 것이다.
한국의 '자기 과시, 체념, 과소비' 문화는 유교가 직접 만든 결과라기보다 유교적 가치가 현대 자본주의·플랫폼 사회와 결합하면서 왜곡되고 증폭된 결과물이다.
유교는 욕망을 절제하라고 가르쳤지만 동시에 비교, 위계, 체면의 구조를 남겼고 그 구조가 오늘날 극심한 과소비로 번역된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체면 문화는 '착하게 살기'에서 시작했지만 '보여주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사회'로 변형됐다.
이와는 상반되게 서구와 일본의 실존적 철학과 생활에서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는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는 다른 방식의 철학적 차이라기보다 보편적인 역사 속에서 인간들이 수천 년간의 갈등과 전쟁 등을 통해 찾아낸 실질적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한 삶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 한국의 역사에서 실존 철학적 경험은 존재했는가?
한국은 '실존 철학적 담론'을 지식인 사회에서 뜨겁게 수용하려 한 적은 있으나 그것이 시민 개개인의 삶의 양식으로 스며들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압축 성장의 가도에 올라탔다.
한국에도 '실존주의 열풍'이 있기는 하였다. 그리고 한국 역사상 실존주의가 가장 뜨거웠던 시기는 6·25 전쟁 직후였다. 이것은 마치 유럽 사회가 세계대전을 두 번 겪고 나서 실존적 자아가 더욱 중요해진 것과 비슷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속에서 '신은 죽었는가', '인간은 왜 사는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 사르트르, 카뮈, 하이데거의 철학이 한국의 지식인과 대학생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실존주의는 '나의 주체적 결단'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전쟁의 상처를 위로하거나 허무주의에 빠지는 수준에 머물렀다.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한국 근대화'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실존적 철학과 사유를 사치로 만들었다. 마치 그것은 서구의 부유한 나라의 이야기이고 우리 같은 가난한 나라에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인가 기형적인 한국적인 것이 만들어졌다.
"잘살아 보세"라는 구호 아래 개인의 내면적 가치는 국가와 집단의 경제개발 목표를 위해 유예됐다.
그리하여 교육은 '자아 발견'이 아닌 '산업 역군 양성'을 목적으로 변질되었고 이 과정에서 서구의 실존철학이 강조하는 '단독자로서의 고뇌'는 사라지고 집단의 기준에 맞춰 성과를 내는 '기능적 인간'이 엘리트가 되고 장려된 것이다.
물론 그 결과는 놀라운 경제성장이라는 결과를 만들어 내기는 하였지만 아직도 현대 한국인의 사고를 지배하는 방식은 조선 구한말 해방 전의 사고와 별다른 것이 없어 보인다.
즉 철학의 부재를 전통의 관습이 차지해 버렸다. 그리고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한 철학적·비평적 사유나 합리적 사고의 접근은 우리 "한국적"인 것에 맞지 않는다고 배격해 버리고 유예시켜 버리게 됐다.
이것이 결국 현대 한국인의 불행의 씨앗이 된 것이다.(3편에서 계속)
노석준 RPA 건축연구소 소장
▲ 메타버스 및 가상현실 전문가 ▲ 미국 컬럼비아대ㆍ오하이오주립대ㆍ뉴욕파슨스 건축학교 초빙교수 역임 ▲ 고려대 겸임교수 역임 ▲ 현대자동차그룹 서산 모빌리티 도시개발 도시 컨설팅 및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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