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박강규 정치전문기자] 중동 정세 악화로 국제 원유 공급 불안이 커지자 한국과 일본이 동시에 비축유 방출과 에너지 공급 확대에 나서며 사실상 ‘에너지 비상 대응 체제’에 들어갔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되면서 동북아 에너지 안보에도 비상이 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17일 정치권과 정부에 따르면 당정은 전날 고유가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해 비축유 방출과 발전량 확대,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포함한 고강도 대응 방안을 확정했다. 더불어민주당 중동사태 경제대응 태스크포스(TF) 간사인 안도걸 의원은 국회에서 관계 부처와 2차 회의를 마친 뒤 이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이번 주 ‘국가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기존 1단계 ‘관심’에서 2단계 ‘주의’로 격상할 계획이다. 이는 단순 상황 점검을 넘어 실제 비상 대응 조치가 가동된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와 합의한 비축유 2246만 배럴을 향후 3개월 동안 시장에 공급하고, 한국석유공사가 해외에서 생산한 원유 335만 배럴을 6월까지 추가 반입하기로 했다.
국회 대응도 본격화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에너지 수급 불안에 대응하기 위해 정부의 비축유 방출과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이다. 당 관계자는 “고유가 장기화는 곧바로 민생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신속한 재정 대응이 불가피하다”며 “에너지·물가 안정 대책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야당인 국민의힘은 위기 대응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집중 점검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석탄 발전 규제 완화와 원전 가동 확대, 재정 투입 규모 등을 두고 “단기 처방에 그칠 수 있다”며 구조적인 에너지 정책 전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추경 편성 과정에서도 재정 건전성과 지원 대상의 적정성을 둘러싼 공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내 원유 비축량은 약 208일분 수준이다. 정부는 액화천연가스(LNG)도 올해 말까지 사용할 물량을 선제 확보한 상태라고 밝혔다. 전력 수급 안정 차원에서는 석탄 발전 상한제를 즉각 폐지하고 정비 중인 원전 6기의 가동을 앞당겨 원전 가동률을 현재 60% 후반대에서 80% 수준까지 끌어올릴 방침이다.
산업계 지원 대책도 함께 추진된다. 정부는 중소기업 긴급 경영안정자금 6700억 원을 공급하고 대출 만기 연장과 가산금리 면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수출 바우처 한도는 기존의 두 배로 확대하고, 중동 수출 기업에는 긴급 물류 바우처도 지원한다.
물가 안정 대책으로는 석유 최고가격제 정착을 추진하고 위반 주유소에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금융시장 안정 차원에서는 국고채 바이백(조기 상환) 카드도 거론된다. 정부는 위기 대응의 핵심 재원 확보를 위해 추가경정예산안을 이달 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일본 정부 역시 같은 날 중동발 공급 불안에 대응해 비축유 방출에 나섰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관보 고시를 통해 정유사와 상사가 의무적으로 보유해야 하는 비축유 기준을 소비량 기준 70일분에서 55일분으로 낮춰 15일분을 시장에 공급하도록 했다.
이달 하순에는 국가 비축유 추가 방출도 추진한다. 일본의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민간 비축유 15일분과 국가 비축유 1개월분을 합쳐 약 8000만 배럴을 공급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일본의 비축유 방출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4년 만이며, 현행 비축 제도 도입 이후 일곱 번째 조치다. 일본은 원유 수입의 9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지난해 말 기준 약 4억7000만 배럴의 비축유를 보유해 약 254일간 소비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동 긴장이 장기화될 경우 국제 유가 상승이 국내 물가와 산업 비용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석유화학·정유·해운 등 에너지 의존 산업을 중심으로 충격이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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