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로 예정된 고려아연 정기 주주총회가 한국 자본시장의 향방을 가를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세계 1위 비철금속 제련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놓고 현 경영진과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군이 정면충돌하는 가운데, 사실상 승패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장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단순한 지분 대결을 넘어 '국가 핵심 산업의 공급망 수호'와 '주주가치 제고 및 거버넌스 개선'이라는 두 명분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양상이다.
업계에선 이번 주총에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향방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변수로 '홈플러스 사태'를 꼽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대주주인 홈플러스의 경영 악화와 기업가치 하락이 사회적 이슈로 비화하면서, MBK에 거액을 출자한 국민연금 역시 투자금 손실 우려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어서다.
실제로 홈플러스는 MBK 인수 이후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실적 부진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연금이 추구하는 '지속 가능한 책임 투자' 원칙과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국민의 소중한 노후 자금이 투기적 사모펀드의 자금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어 국민연금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최근 황명선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국민연금은 기득권 세력의 방패가 아니라 국민 전체의 자산을 지키는 공적 수탁자"라며 "약탈적 사모펀드와의 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러한 정치적 압박은 국민연금이 MBK 측의 손을 들어주는 데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반면 고려아연 현 경영진은 '경제 안보'와 '미래 성장동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핵심은 미국 테네시주에 추진 중인 대규모 핵심 광물 제련소 건설 프로젝트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핵심 광물의 안정적 확보는 한국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부상했다.
고려아연 측은 경영권이 교체될 경우 단기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중장기 전략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법원 역시 가처분 판단 과정에서 고려아연의 미국 프로젝트에 대해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한미 협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전략적 의미가 크다"고 인정한 바 있다.
업계에선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때 기업의 장기적 생존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배제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기술력과 글로벌 네트워크는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니다"며 "국민연금이 단기적인 거버넌스 논리보다 국가 핵심 산업의 경쟁력 유지라는 '대의'를 우선순위에 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현재 의결권 지분 구조를 보면 MBK·영풍 측이 약 41~42% 수준으로, 고려아연 현 경영진과 우호 지분(약 30% 후반~40%)을 근소하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7~8% 안팎의 지분을 보유한 국민연금과 국내외 기관투자자들의 표심에 따라 결과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초박빙' 상황이다.
이번 주총의 주요 안건인 이사회 구성과 정관 변경은 향후 고려아연의 경영 방향을 결정지을 핵심 쟁점이다. MBK 측은 이사회 장악을 통해 경영 효율화를 꾀한다는 전략이지만, 현 경영진은 이를 '적대적 M&A를 통한 기업 사냥'으로 규정하며 맞서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주총은 단순한 경영권 분쟁을 넘어 책임 투자 원칙과 글로벌 공급망 전략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전장"이라며 "결국 국민연금은 기업 가치의 지속 가능성과 국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가장 정교한 논리를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성대 기자 / 경제를 읽는 맑은 창 - 비즈니스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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